▲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지난 6월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일본의 지진피해 현장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소프트뱅크의 미래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상(政商)이냐, 혁명가냐.’ 지난 7월말 <뉴스위크 일본판>에서 손정의 사장과 관련된 논란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정상’이란 정치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이권을 얻는 상인을 말한다. ‘혁명가’는 손정의 회장이 현재 일본의 원자력 기반 에너지 공급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탈원전을 주장을 하며, 자연에너지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점을 빗댄 말이다.
3월 원전 사태 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에 방문해 주민 대피를 주장하기도 했던 손정의 사장. 그가 지난 4월 말 자사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장장 한 시간 동안 힘찬 어조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방사능 누출 등 사고의 막대한 영향을 인식해 이미 30년 이상 노후화된 원전 사용을 중지하고, 이제는 인식을 바꿔 태양광 등 자연에너지에 눈을 돌리자는 게 요지였다. ‘메가 솔라(Mega Solar)’ 계획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의 부흥비전검토 회의에 참가한 손정의 사장은 “안전대책 등에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이 결코 싸지 않다”고 누차 강조했다. 또 “일본의 휴경지 54㏊에 태양광 판을 설치하면, 오는 2020년에는 무려 2.7억㎾에 이르는 발전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최근 원전을 모두 폐쇄키로 결정한 독일 정부처럼 향후 20년간 태양광 발전전력 전량을 일본 정부가 사들이는 전량매수제도를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투자를 끌어오기 위해 투자 리스크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대목에서 보수 언론이 물고 늘어졌다. 다름 아닌 자사의 전력사업 참여에 유리하도록 미리 포석을 깔아놓으려는 ‘상혼’ 때문에 기부금 100억 엔을 쾌척했단 소리다. 즉 그간 소프트웨어로 시작해 야후 저팬 등 포털사이트와 휴대폰사 인수, 아이폰 도입 등으로 잇따라 대박이 난 손정의 사장이 이번에는 태양광 사업으로 떼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주간문춘>은 “소프트뱅크사가 태양광 전력 사업에 진출하면 어차피 값이 싼 한국 태양광 판을 수입할 터이고, 그때 가서는 일본 제조업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손정의 사장이 방사능 피폭이 두려운 나머지 네 종류의 개인용 방사능 측정기를 갖고 다닌다는 식의 인신공격도 한다. 또 <주간신조>는 소프트뱅크사 직원들이 손정의 사장의 절대 권력을 비꼬며 뒷담화로 ‘장군님’이라고 부른다는 일화도 있다고 전했다. 장군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손정의 사장의 안티 팬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를 가리켜 ‘키가 작고 대머리에 못생긴 것까지 삼박자를 다 갖췄다’는 등의 글이 난무한다. 이쯤 되면 손정의 죽이기 수준이다.
특히 안티 네티즌들은 한국에 소프트뱅크사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점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 등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지어 정부가 구입하면, 손정의 사장은 손해를 볼 게 없으나 일본인은 괜히 비싸게 전기요금을 낸다는 것이다. 또 데이터센터 이전으로 세금을 한국에서 낼 터이니 결국 한국인이 돈을 번다는 것이다. ‘큰돈을 기부하고 일본의 대재해에 눈물까지 흘렸다지만 어차피 조센징’이라고 결론짓는 게시판 글도 있다.
이런 중상모략은 사실 처음은 아니다. 사업이 성공할 때마다 하나둘씩 늘어나고 부풀려진 험담이 많다. 소프트뱅크사가 적자와 부채에 허덕이던 영국계 휴대폰 업체 보다폰(vodafone)을 인수한 2006년 이후 매년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뒤부터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인터뷰에서 재일교포로 성장해 차별받은 일화를 말하면 바로 거짓말이란 소리가 되돌아온다. 어렸을 적 일본인 아이들에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돌을 맞은 적이 있다고 말하면, ‘돌을 맞은 게 차별이냐’는 식이다. 언젠가 돈을 벌면 통신사업은 바로 팔아치울 것이란 소리까지 나돌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대적인 반응은 소프트뱅크사가 휴대폰 사업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벌였을 때 일어났다. 휴대폰 사업 후발주자였던 소프트뱅크사는 2007년 고객유치 위해 파격적인 요금 체계인 ‘화이트플랜’을 내놓았다. 기본요금이 없고 가족이 모두 가입했을 경우 가족끼리 통화는 무료다. 그런데 이를 광고한 CF ‘백호 일가’ 시리즈가 지금까지도 손정의 사장 안티들 사이에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린다.
이 CF는 백호 가족의 에피소드를 그린 것인데, 문제는 엄마와 딸은 일본인이고 아들은 흑인, 아버지는 ‘백호’라는 이름의 북해도 혈통의 개라는 점이다. 이 시리즈는 4년 연속 광고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손정의 사장의 안티 팬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한 일. 일본인 아버지를 감히 어떻게 ‘개’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한국에서 가장 안 좋은 욕은 개XX라 한다. 손정의 사장이 자사 광고에 아빠 개를 등장시킨 것은 일본인을 모욕한 것’이라는 의견이 올라오는 등 비난이 빗발쳤다.
물론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트위터 팔로어가 무려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손정의 사장을 지지하고 존경한다는 일본인 층이 매우 두텁다.
비단 거액의 기부금 때문만은 아니다. 재일교포들이 한국으로 거는 국제전화 요금을 싸게 하거나 각국에서 일본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 휴대폰에 자국어 문자 서비스를 해주고, 게이 커플에게 같은 주소에 살고 있다는 서류만 제시하면 가족 간 무료 통화요금을 적용하는 등 일관되게 소수자를 배려한 영업을 벌여 좋은 평판을 얻기도 했다.
또 족벌체제 경영이나 사장이 한 명일 경우 흔히 지적되는 독선적 리더십과 사뭇 다른 경영철학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세습 경영을 하지 않고, 후임 사장을 자사의 일반사원 중 경쟁을 통해 뽑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벤처 기업에 투자할 때 지분 보유를 35%로 제한하는 원칙을 줄곧 고수하고 있다. 회사가 계열화되는 것을 막고 투자한 기업체 경영자가 자기 회사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태양광 발전단지는 이미 일본의 35개 지자체가 앞 다투어 유치 경쟁에 나섰다. ‘이권 이권 하지만 태양광에 얼마나 이득이 있겠느냐’며 손정의 사장을 두둔하거나 유명 탤런트 등 손정의 사장의 탈원전 메시지에 찬성하는 이도 많다. <닛케이비즈니스> 등과 같은 경제지와 IT전문지 등에서는 손정의 사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저널리스트 이데 가오루 씨는 “소프트뱅크사에 대한 비판조차도 전부 손정의 사장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쏠리는 점이 이상하다. 여타 통신기업 등과 비교해 봐도 기이할 정도”라고 지적한다. 이데 씨는 “만약 일본에 귀화한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 때문에 손정의 죽이기가 벌어지는 것이라면, 일본사회의 배타주의나 민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지갑 대용으로 ‘비닐봉지’ 쓴 적도
▲ 손정의(왼쪽) 손태장 형제. |
유학시절 만난 물리학 전공의 두 살 연상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사업하는 남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생하던 부인을 위해 성채 같은 집을 지었는데, 2004년 한 주간지에서는 헬기까지 띄워 항공사진을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2010년 큰딸의 결혼식에서는 주위를 개의치 않고 울어 딸바보로 알려졌다. 손 마사요시란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를 한 것은 두 딸의 장래를 위해서였다고 알려졌다. 경제지 <FACTA>는 큰딸이 골드만삭스 직원이며 사위는 불고기 식당 경영자란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으나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소프트뱅크사 직원이란 설도 있다. 지난 6월 말 나온 증권가 소식지 <NSJ 일본증권신문> 등에는 손정의 사장이 사위를 정계에 입문시키고자 최근 노력하고 있다는 설도 제기됐다. [조]
문화계 활약 젊은이 다수
그렇다면 거꾸로 손정의 사장이 팔로잉하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현재 손정의 사장이 팔로잉하는 이는 총 80여 명. 이 인사들의 면모를 살피면, 단연 벤처기업가 등 IT업계 종사자나 기술자가 거의 대부분이다. 한때 손정의 사장의 라이벌로 불리다가 최근 세금포탈 혐의로 수감된 호리에몬 일본 포털사이트 라이브도어 사장도 있다. 손정의 사장은 그간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정계입문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정치가는 그다지 없다.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와 현 도쿄도 부지사 이노세 나오키 정도다.
가장 유명인사는 최근 IT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슈퍼 고교생’ 우메자키 겐리다. 손정의 사장과 같은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손정의 사장이 팔로잉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현재 IT 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이밖에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타케 히로타다 씨도 있다. 오토타케 씨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사지절단증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인데, 체육교사로 교단에 서기도 하는 등 밝은 성격과 굳은 의지로 일본에서 장애를 극복한 대표적 인물로 거론된다.
특이한 점은 문화계에서 활약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문화평론가 등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특히 가수는 남녀와 대중 가수와 인디 가수를 불문하고 많다.
눈길을 끄는 인물은 30대 여가수 하마자키 아유미.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일하게 밀리언셀러 앨범을 기록하고 있는 당대 최고 가수다. 하마자키는 논란이 된 소프트뱅크사 ‘백호 일가’ 광고가 “너무 재밌다”며 “꼭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출연하게 됐다. 하마자키의 인기 덕택에 광고는 더욱 화제가 됐다. [조]
“깨닫고 행동에 안 옮기면 죄악”
“20세에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운영자금을 축적한다. 40대에는 일에 승부를 걸고, 50대에는 사업 모델을 완성하고, 60대에는 은퇴한다”-19세 때 미국 유학 중 세운 인생 50년 계획
“정보혁명은 에너지 없이 이뤄질 수 없다. 태어났으니 사명을 다하겠다. 깨닫고 나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대규모 태양광 단지 설립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창업 당시 동료들도 다 떠나갔다. 돈, 명예, 지위는 다 하찮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26세로 사업이 한참 궤도에 올랐을 당시 만성간염에 걸려 입원했을 때를 회상하며
“나는 사업가다. 뜻을 이루고 싶다. 가장 사랑받고 꼭 필요한 회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2010년 6월 자사의 향후 30년 비전 연설 중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은 고독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기쁨을 더 만들고 싶다.”-2011년 <프레지던트>와의 인터뷰 중 성공하는 습관이 뭐냐 묻자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