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노정 단일화 벤치마킹, 실현 가능성엔 의문…김종인 움직임 변수 작용할 수도
단일화의 추억이 여권 대선 한복판에 다시 소환됐다. 핵심은 ‘이안 연대’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확장판이다. 이안 단일화를 잇는 중간 연결고리는 대연정과 개헌이 될 전망이다. 복선은 깔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 7인회 백의종군이 대표적이다. 이안 단일화 성사를 위한 삼각편대와 ‘김종인 의중’도 변수로 부상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물꼬 튼 이안 단일화는 한층 거세진 ‘이재명 위기론’과 맞닿아 있다. ‘트리거(방아쇠)’는 ‘3·9 대선 판세=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판박이로 규정한 당 내부 보고서였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자체 분석한 이 보고서 핵심은 4·7 재보선 계기로 해체된 ‘탄핵 유권자 연합(중도+진보)’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여기에 하나의 변수만 추가되면 ‘여권 필패’라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하나의 변수란 다름 아닌 윤안 단일화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보수 대연합이 단행된다면, 승부는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현재 여론조사 수치를 종합하면, ‘윤석열 4 vs 이재명 3.5 vs 안철수 1.5’ 구도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지지도 합(55% 안팎)은 정권교체 여론과 비등하다.
이 수치는 4·7 서울·부산 보궐선거 때의 여야 득표율과 엇비슷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57.50%로, 여당 후보였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39.18%)을 18.32%포인트(p) 차로 꺾었다. 부산시장 대결에선 더블스코어 차(박형준 부산시장 62.67% vs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 34.42%)가 났다. 당시 보궐선거 판을 바꾼 것은 20% 안팎 지지를 받던 안철수 후보의 보수 단일화였다. 여당 한 의원도 “야권 단일화 가능성이 낮다고 본 여권 지도부의 실책”이라고 했다. 한 당직자는 “당시 김종인 체제에서 국민의힘이 안 후보와 손을 잡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앞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이안 단일화의 포문을 연 것도 보수 단일화 위력과 무관치 않다. 송 대표는 지난해 연말 세 차례나 안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국민의당은 “헛꿈을 꾸지 말라”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송 대표는 “(양자가)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12월 26일)→안철수 미래 어젠다를 수용할 마음의 자세가 돼 있다(12월 27일)→거절 강도가 높지 않았다고 본다(12월 31일)” 등의 발언으로 ‘이안 단일화 불가피론’을 설파했다.
송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송 대표가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송영길 체제가 유지되는 한, 안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송 대표는 지난해 안 후보에게 단일화 요청 차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송 대표가 이안 단일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안 대표는 송 대표 제안에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진보+보수 단일화’ 성공 사례가 있지 않나” 민주당 한 인사의 말인데 실제 그랬다. 보수진영과 손을 맞잡았던 제15∼16대 대선은 현재 민주당이 처한 위기론과 여러모로 맞물려 있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후보 교체론’에 시달렸다.
‘DJ 불가론’이 당시 야권 내부에서 고개를 들자, 아태재단의 상임고문이었던 이강래 전 의원은 ‘DJP 연합을 통해 호남 고립을 깨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DJP 연합이 본격화된 것은 1997년 10월 이후였다. 신한국당은 ‘야권 저격수’ 강삼재를 중심으로 DJ 비자금을 폭로했다. DJ는 ‘처조카인 이형택의 670억 원 은닉설’, ‘노태우의 20억 원+알파(α) 수수설’, ‘박철언의 200억 원 수수설’ 등에 시달렸다.
당시 정국은 극심한 혼돈에 빠졌다. DJ 지지자들은 신한국당 당사 폭파 위협까지 제기했다. 검찰은 그해 10월 20일 DJ 비자금 수사 카드를 꺼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걷던 YS가 이를 만류, DJ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그 사이 DJP는 단일화를 승부수로 띄웠다. DJP가 검찰이 수사 중단을 언급한 지 보름여 만인 11월 3일 내각제를 고리로 한 단일화에 합의한 것이다.
둘의 만남은 호남과 충청을 묶는 지역 연합을 뛰어넘는 상징성이 있었다. 여권 한 원로 인사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박정희 정권 2인자의 만남은 보수·중도층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DJ는 그해 대선에서 대전 45.0%를 비롯해 충남 48.3%, 충북 37.4% 등을 기록했다. 충청권 인사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대전 29.2%, 충남 23.5%, 충북 30.8%로 DJ보다 최대 15%p 뒤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일명 ‘16부작’의 드라마인 국민경선에서 승리한 노 전 대통령 지지도는 한때 60%를 돌파했지만 △삼형제(김홍일·김홍업·김홍걸) 비리 의혹에 휩싸인 DJ △반노(반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의 노무현 흔들기 △2002년 월드컵 바람을 타고 제3후보론으로 부상한 정몽준 등의 악재가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호남 3곳과 제주에서만 승리한 2002년 6·13 지방선거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태동의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일화 요구였으나, 속내는 ‘정몽준으로의 후보 교체’였다. 정몽준 측이 요구한 여론조사 룰을 전격 수용한 노 전 대통령은 극적으로 본선에 올랐고 그해 대선에서 48.9%를 기록,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46.6%)를 2.3%p 차로 이겼다.
현재 이재명 위기론 한가운데를 파고든 것도 후보 교체론이다. 강하진 않지만, 여권 일각에선 여전히 대선 플랜B로 ‘이낙연(전 민주당 대표)+조국(전 법무부 장관)’ 연합 카드를 요구하고 있다. 이 후보 지지도가 장기간 30%대 박스권에 갇히면서 ‘이재명으로는 안 된다’는 한계론도 부상했다. 이 후보 측 승부수였던 7인회의 백의종군의 효과가 없다는 점도 악재다.
이안 단일화를 포함한 ‘여권발 추가 카드’가 전격 부상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원장인 노웅래 의원은 1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단일화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결단만 하면 할 수 있다. 안 후보의 정치적 뿌리가 어디냐”라고 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도 “이안 단일화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이안 단일화는 사실상 ‘영남 연합론’이다. 이 후보의 대구·경북(TK)과 안 후보의 부산·울산·경남(PK)을 묶는 지역 연합이다. 이 후보 약점인 호남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이념적으로는 이 후보의 보수와 안 후보의 중도·보수의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세대별로는 4050세대에 강점이 있는 이 후보와 2030세대에 소구력을 갖춘 안 후보의 만남이다.
이안 연대는 영호남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이 후보의 약점인 중도·2030세대를 채울 보완재 카드에 가깝다. 여권 내부에선 송 대표를 필두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이근형 선대위 미래기획단장 등의 삼각편대가 이안 단일화를 위해 움직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문제는 이안 단일화의 실현 가능성이다. 이안 단일화 성사의 전제조건은 ‘민주당 혁신’이다. 이 후보 측 7인회 백의종군으로 촉발한 여권발 정치쇄신은 지지부진한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학번) 용퇴로 사실상 동력이 꺼졌다. 안 후보가 여당과 힘을 합칠 명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진보진영에서 세력 교체론이 성공했던 사례는 ‘DJ정권 말 정풍운동’이 유일하다. 이는 정동영·천정배·신기남 전 의원이 추진한 동교동계 퇴진이 핵심이었다. 당시 정풍운동이 성공했던 이유는 레임덕에 시달린 DJ의 전폭적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국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DJ는 자신의 최측근이던 권노갑 퇴진을 핵심으로 하는 여권발 쇄신 운동에 힘을 보탰다.
역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여권발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지도 40%대를 유지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국정동력 확보를 위한 지렛대가 필요 없다. 86그룹 용퇴의 종착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이광재 민주당 의원,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으로 불똥이 튈 게 뻔한데,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리가 없다는 얘기다. 당시 정풍운동이 ‘권노갑 동교동계 vs 천신정’ 구도를 잡은 것과는 달리, 현재의 여권발 정치혁신은 구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움직임도 변수다. 여권은 국민의힘에 팽을 당한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이 후보를 돕는다면 판이 바뀔 것”이라며 설 전후 강하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 후보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역량 있는 정치계의 어른이셔서 자주 연락드린다”고 김 전 위원장과 회동에 긍정적 사인을 보냈다. 송영길 대표는 1월 31일 오마이뉴스TV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최근 김종인 전 위원장을 한 번 만났다”고 했다.
그러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설 인사차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위원장과 안 후보는 정치권의 질긴 악연의 대명사로 꼽힌다. 김 전 위원장은 윤안 단일화에 대해 “안 후보 지지도가 18% 이상 안 오른다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보수 대연합이 최종 무산되면, 2022년판 DJP·노정 단일화 문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종인 매직’이 대선 단일화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월 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송 대표의 범여권 단일화에 대해 “착각은 자유”라고 일축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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