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질주 영상 공개, 고모 김경희 2년 만에 등장…내우외환 속 백두혈통 부각해 내부 결속 강화
2월 1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는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북한 정치이념과 목표를 일반 주민들에게 각인하려는 일종의 선전·홍보물이다. 이 영상은 시간 순서에 따라 김정은의 2021년 공개 활동을 나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눈에 띄게 살이 빠지는 김정은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그간 보지 못했던 장면도 포착됐다. 김정은이 능숙한 승마 실력을 과시한 부분이었다. 김정은은 고삐를 한 손으로 쥔 채 빠른 속력으로 백마를 몰았다. 그간 ‘백마 탄 김정은’ 사진 공개는 통상적인 이벤트였다. 그러나 이번처럼 말을 직접 타고 질주하는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백마는 북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태껏 최고 지도자라고 불렸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는 모두 백마를 타는 모습을 우상화 중심에 둬 왔다. 림일 탈북작가는 “백마는 백두혈통을 표현하는 일종의 매개체”라면서 “백두산은 여름 중 2개월 정도를 제외하면 항상 하얗게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흰색’의 의미 자체가 ‘백두’라는 단어와 연결된다”고 했다.
림일 작가는 “북한에서 수령이 등장한 그림은 ‘1호 작품’이라고 불리는데 이 그림에 말을 타고 등장하는 김씨 삼부자는 하나같이 백마를 타고 있다”면서 “백두혈통을 상징하는 연결고리로 백마를 활용하는 셈”이라고 했다. 림 작가는 “2월은 김정일 생일(광명성절·2월 16일)이 있는 달이니, 혈통에 대한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기록영화엔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 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해 조용원 조선노동당 조직비서, 현송월 조선노동당 부부장 등 북한 수뇌부 5명이 함께 백마를 타고 달리는 장면도 포함됐다. 김정은이 탄 백마엔 특별히 황금색 굴레가 설치돼 화려함을 강조했다.
혈통 마케팅은 ‘백마 질주’에 그치지 않았다. 2월 2일 조선중앙TV는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경축공연에 김정은·리설주 부부가 참석한 장면을 보도했다. 그 가운데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한 ‘백두 고모’ 김경희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국내외 언론 매체로부터 조명을 받았다. 김경희는 2020년 1월 설 기념 공연에 나타난 뒤 2년 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조선중앙TV 화면엔 김정은이 김경희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김경희는 김정은 집권 초기였던 2013년 12월 숙청당한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 여동생이다. 장성택 생전 김경희는 조카 김정은의 수행을 담당하기도 했다. 장성택이 숙청된 뒤 김경희는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고, 김경희가 수행하던 김정은 옆자리는 또 다른 ‘백두혈통’ 김여정이 이어받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김경희는 2013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2020년 설에 6년 만에 등장했고, 2년이 더 지난 2022년 설에 다시 깜짝 등장했다. 김경희의 깜짝 등장과 관련해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설을 맞이해 김경희를 공개하며 백두혈통 정통성을 부각시킨 셈”이라면서 “김경희는 김일성의 딸이자 김정일 여동생이며, 김정은의 고모로 김씨 삼부자 모두를 연상시키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김정은이 연이어 백두혈통 정통성을 강조하는 행보와 관련해 “내부 결속력 강화 차원 조치”라고 했다. 강 대표는 “실질적으로 북한은 여전히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에 있다”면서 “그 가운데 정권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을 혈통 정통성을 기반으로 표현하고 있다. 떠나가는 내부 민심을 ‘백두혈통 스토리’를 통해 결속시키려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최근 연이은 미사일 도발 본질 역시 비슷하게 보고 있다”면서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내부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은 바로 외부 긴장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연초부터 내부 통제를 원활히 하려는 포석을 놓는 행보”라고 했다. 그는 “대내외적인 조치가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가 불안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내부 결속력 강화 수단으로 혈통 마케팅을 활용하며 바쁜 설을 보낸 김정은은 2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올림픽 축전’을 보내며 외교 분야에서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축전을 통해 “제24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를 열렬히 축하한다”는 뜻을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했다.
김정은은 “세계적인 보건 위기(코로나19 대유행)와 유례없이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베이징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가 성과적으로 개막되는 것은 사회주의 중국이 이룩한 또 하나의 커다란 승리”라면서 “나는 앞으로도 총서기 동지(시진핑)와 굳게 손잡고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두 나라 인민 염원에 맞게 새로운 높은 단계로 계속 승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앞서 북한올림픽위원회와 체육성은 중국 측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불참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한 바 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북한이 특수한 사유로 참가할 수 없게 된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내부적으론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민심을 결속시키고, 동맹국 중국을 향해선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중 관계에 대한 확신을 재차 심어주는 외교조치를 병행했다”면서 “하나씩 뜯어보면 그간 북한이 보여주던 통상적 행보 범주 안에 있다. 그러나 설을 전후로 타임라인에 따라 김정은 행보를 분석해 보면, 2020년 4월 본인을 둘러싼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뒤 가장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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