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업계 “정부가 현대차에 사업하라고 땅 내준 것” 반발…글로비스 “중고차 매매업과 상관 없는 일”
#정부 부처 간 엇박자, 현대차그룹
지난해 11월부터 현대글로비스가 국내 최대 중고차 수출전문단지 ‘아라오토밸리’ 부지를 최소 2만㎡(6000평)를 임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광역시 서구 거첨로 경인항 컨테이너 부두 내에 있는 아라오토밸리 1단지와 2단지의 총면적은 각각 15만 8400㎡(4만 7916평), 22만㎡(6만 6550평) 규모에 이른다. 현대글로비스는 인천 연수구 중고차 수출단지 내 부지 4959㎡(1500평)도 임대해 ‘중고차수출SMC 인천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1월 30일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열린 중고차 시장 개방 상생협상이 최종 결렬되기 전부터 중고차 사업을 확대한 셈이다. 애초부터 협상 의지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같은 해 12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회장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사업 진출은 소비자들의 요구이자, 글로벌 트렌드”라며 “중고차 매매상들과의 상생 협력 합의가 무산된 것은 안타깝지만, (진출에) 법적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KAMA는 현대차·기아·르노삼성·제너럴모터스(GM)·쌍용차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이에 반발해 중고차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중소기업중앙회에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판매에 대한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지난 1월 13일 중기부는 현대차에 중고차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를 내렸다. 중기부의 권고 이후 현대차는 매입 등 판매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사업 조정은 대기업 등의 진출로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일정 기간 사업의 인수·개시·확장을 연기하거나 사업 축소를 권고하는 제도다.
현대차그룹이 수출 시장에 선제적으로 나선 배경 중 하나로 매매업과 달리 상대적으로 수출업계의 저항이 거세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중고차 수출업계는 단체행동에 나설 정도로 조직력이 탄탄하거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합이 없는 실정이다. 몇몇 사업자들이 모여 입장문을 내고 수출단지 내에 ‘현대자 중고차 수출업 진출 반대’ 현수막을 거는 수준이다.
중고차 수출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입장문을 보내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현대차·기아가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면서 독과점인 상황이다. 국내 중고차 수출 시장을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고차 매매업도 독과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라오토밸리 소유주는 해양수산부이고, 소속 산하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곳이다. 이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아라오토밸리 운영은 SM상선에 전적으로 일임한 상황이라 부지 임대 관련해서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SM상선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에서 임대 중인 건 사실이지만, 해양수산부나 한국수자원공사가 임대 계약을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고차 업계 한 관계자는 “GM이 야적장으로 사용하던 부지라서 현대차그룹이 임대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는 있다”면서도 “정부 주도하에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현대차에 사업하라고 땅을 내준 것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정부에 임대료를 냈으니 사업을 철수할 수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수년째 중고차 업계와 대기업 간의 갈등을 중재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에 대해 “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갖는 위상이 크기 때문에,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계 양측이 합의하고 결론을 내리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0년 국정감사 때도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은 “현대차가 중고차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며 상생방안을 놓고 현대차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대선 이후 사업 철수하려면 어떡하려고?
정부의 움직임과 별개로 현대차그룹은 중고차 사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현대글로비스는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거래 플랫폼 ‘오토벨’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오토벨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중고차 시세를 조회하면서 차를 팔거나 살 수 있게 된다. 현대글로비스는 그간 중고차 매매상을 대상으로 한 경매 및 수출 사업만 진행해 왔지만, 이제는 B2C로 중고차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행보다. 현대차는 경기 용인, 기아는 전북 정읍에 중고차 사업을 등록하기도 했다. 분당·시화·양산 경매센터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인천을 거점으로 중고차 사업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앞서의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는 표면적으로 플랫폼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론 오래전부터 매매업을 직접 영위해오고 있다”며 “아라오토밸리뿐만 아니라, 인천 엠파크 부지 절반인 약 8만㎡(2만 4500평)를 임대해서 분당 경매장을 인천으로 옮긴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연면적 1만 8909㎡(5719평)인 제물포 중고차매매단지도 인수해서 인증 중고차 단지 조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시장 진출을 가를 최대 변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2018년 말 시행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되는데, 과거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대체하는 개념이지만 법적인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선정이 ‘부적합’하다고 중기부에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곧바로 중고차 매매상들이 다시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중기부에 신청했다.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중고차 매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간이 끝났다.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사업에 진출해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면서도 “중고차 매매상들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고, 그 결과에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중고차 시장에서 철수해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 대선 이후로 생계형 적합업종의 최종 결정을 미뤘다. 대선 결과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 움직임에 대해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며 “중고차와 판매자에 대한 신뢰성 확보, 중고차 성능 담보,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 등의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직접적인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기활성화 공약을 대거 발표해왔다.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사업에 사활을 거는 배경으론 지배구조 개편이 꼽힌다. 현대글로비스의 매출 확대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정 회장은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 중 3.29%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에 매각했다. 올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관련기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중고차’로 가속페달 밟나).
이와 관련,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아라오토밸리 임대는 중고차 수출업이라 매매업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분당 경매장을 인천 엠파크로 이전하는 것과 제물포 중고차단지 인수를 검토한 적 없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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