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에 눈 멀어” 혐오 부추기고 마녀사냥…‘카더라’를 ‘그렇다’로 포장해 ‘취재’ 둔갑
사이버렉카(Cyber-wrecker)는 교통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와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견인차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가 발생하면 이를 정리하는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을 말한다. 이슈를 편집자 입맛대로 짜깁기해 자신이 저격하는 대상에 대한 악플과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는 등 각종 루머의 집합소 역할을 하고 있다.
#잘 팔리는 ‘여성혐오’ 콘텐츠…BTS도 못 피한 조회수 장사
현존하는 사이버렉카 가운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는 120만 유튜버 ‘뻑가’다. 1~2일에 한 번꼴로 영상을 올리는 뻑가는 온‧오프라인에서 논란이 되거나 곧 논란이 될 법한 이슈를 끌어다 더욱 크게 부풀린다. 스스로를 반(反)페미니즘 유튜버로 정의하는 뻑가의 콘텐츠의 주로 여성 유명인과 페미니즘 비하다. ‘여경 논란’ ‘BJ잼미 메갈 논란’ ‘캣맘과의 전쟁’ 등 여성혐오를 소재로 한 영상은 대부분 100만 조회수를 넘는 반면,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KBS1 ‘태종 이방원’의 동물학대 논란을 다룬 영상의 조회수는 59만을 기록했다. 주 구독자 층과 그 타깃이 확실한 셈이다.
특히 뻑가는 BJ잼미를 다룬 영상을 3개 이상 제작해 올렸다가 2020년 5월 그녀의 모친 사망 소식이 들리자 이를 삭제했다. 남아있는 영상 기록에는 뻑가가 그녀를 페미니스트라며 조롱하는 내용을 제목으로 써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예계 이슈에서는 유튜버 ‘탈덕수용소’가 최근 뻑가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격 대상은 아이돌 혹은 인플루언서(SNS상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다. 유튜버 프리지아의 가품 논란을 가장 크게 키운 곳이며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도 탈덕수용소에게는 조회수를 끌어올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걸그룹 성형 전후를 다룬 영상의 경우 조회수 350만을, 프리지아와 BTS 멤버의 연애 증거를 짜깁기로 내세운 콘텐츠는 100만 조회수를 넘겼다. BTS 멤버 뷔(본명 김태형)가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 유튜버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영상은 계속해서 게재되고 있다.
피해자의 직접적인 경고에도 사이버렉카들이 악의적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높은 수요 때문이다. 유튜브 시청층이 증가하면서 이들이 생산해내는 콘텐츠는 이제 기존 언론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히려 언론사 상당수는 사이버렉카의 콘텐츠를 받아쓰면서 그들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한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 자극적인 콘텐츠를 글로 정리하면 기사 조회수가 높게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급기야 일부 사이버렉카들은 자신의 행위를 ‘취재’라고 말하고, 스스로를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카더라’를 ‘그렇다’로 만드는 사이버렉카…정작 본인들은 익명 뒤에 숨어
휘발성 이슈를 올리는 사이버렉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4~5개의 영상을 올린다. 대다수의 유튜버가 1인 미디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명이 사건 취재부터 편집까지 하루 만에 끝내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이버렉카가 말하는 ‘취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으며 생산되는 콘텐츠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다량의 콘텐츠 생산이 속전속결로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별다른 취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버렉카들은 커뮤니티에 떠도는 ‘카더라’를 부풀려 의혹을 제기하거나 진실처럼 보이도록 했다. 유튜버 프리지아를 다룬 콘텐츠로 성장한 사이버렉카 탈덕수용소는 최근 그녀의 아버지 직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프리지아의 아버지가 부산 해운대에서 A 룸살롱을 운영한다’는 내용의 유튜브 댓글을 캡처한 사진을 올렸다.
그로부터 3일 뒤에는 ‘프리지아 아빠 가게 다녀왔습니다. 놀라운 결과 ㄷㄷ’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이는 실제로 A 룸살롱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 지도의 로드뷰 기능으로 건물 외관을 찍고, 룸살롱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부 모습을 캡처해 올린 것이었다. 탈덕수용소는 A 룸살롱의 현재 대표는 바지사장이며 실질적 운영자는 프리지아의 아버지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로 “A 룸살롱의 대표가 프리지아의 SNS를 팔로하고 있다”고 했다.
확인 결과, A 룸살롱 대표는 프리지아의 외에도 약 6000명을 팔로하고 있었으며 팔로잉 목록에는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 출판사, 건설업체 등도 있었다. 이후 해당 영상의 절반 이상은 의혹의 핵심과 관련 없는 내용인 A 룸살롱의 규모와 이용자들이 남긴 후기를 소개하는데 쓰였다. 이들의 주 능력은 조각난 정보를 재배열하고 사실을 재구성해서 사건을 자신의 의도대로 보이게 하는 데 있다. 특히 일부 사이버렉카들은 영상의 특성을 이용해 특정 장면을 전체처럼 교묘하게 편집해 여론을 형성했다.
BJ잼미는 방송 중에 집게손 모양과 “힘조”, “이기야”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악플을 받았는데, 사실 이런 행동은 전체 영상 가운데 순간을 캡처하거나 발음 실수 후 곧바로 정정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잼미 논란 영상’들에서는 맥락이 누락되고 논란이 될 부분만 과도하게 부각돼 짜깁기되곤 했다. 대중은 몇 시간짜리 전체 영상보다 5분짜리 사이버렉카 영상만 보고 잼미를 판단했다.
그가 방송 중 “남성분들 이것 왜 하는 것이냐?”고 물으며 바지에 손을 넣었다가 냄새를 맡는 행동에 대해서도 비난이 폭주했다. 위 행동이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조롱할 때 쓰인다는 것이다. 이에 잼미가 “온라인에서 떠도는 사진을 따라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악플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세는 독일의 한 축구 감독이 경기 중 자신의 바지에 손을 넣었다가 냄새를 맡는 모습이 남성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면서 유명해진 것으로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를 소재로 유머와 그림 등이 만들어져 소비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번 시작된 악플은 잼미의 해명에도 멈추지 않았다. 잼미가 2차, 3차 해명 영상을 올리면 사이버렉카들은 이런 해명 영상에 자신의 추측과 해설을 달아 또 다른 콘텐츠를 제작했다. 심지어 한 악플러는 ‘잼미가 어떠한 비하의도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냥 욕하는 것이 재밌어서 악플을 단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도록 판을 키우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정작 본인들은 가면을 쓰거나 음성변조된 목소리로만 영상을 찍는다”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만큼만 타인을 생각해봐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뻑가는 2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잼미님 관련 영상입니다’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잼미라는 스트리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이었는데 이 영상을 찍으면서도 굉장히 떨린다”며 “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늦었지만 이렇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잼미 님께는 진심으로 사과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며 자신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메일을 일부 공개했다.
다만 당시 잼미를 모함한 당사자는 자신이 최초가 아니며, 자신은 잼미와 관련된 글을 뒤늦게 정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것이 절대 아니다. 조회수와 채널 성장에 눈이 멀어 인터넷을 며칠간 시끄럽게 했던 그 논란의 태풍 속에 휩쓸려서 저 또한 이슈 유튜버로서 영상을 만들게 됐고 잘못이 있다고 본다”며 “과도한 비꼬기와 억측으로 인해 피해 입은 잼미 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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