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의 죽음’에 1위 내준 ‘해적: 도깨비 깃발’ 재개봉 ‘해리 포터’에도 밀린 ‘킹메이커’…거듭 흥행 실패에 우려 커져
그렇지만 흥행 돌풍이 예상돼 한국 영화들이 개봉 일정을 조정할 정도의 기대작은 아니다. 2017년에 개봉한 탐정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의 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관객수도 86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1월 26일 개봉해 14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던 한국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을 밀어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 몇 년 새 한국 영화의 최대 적은 디즈니였다. 디즈니의 마블 영화 시리즈는 물론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 영화의 막강한 흥행 경쟁 상대였다. ‘나일 강의 죽음’ 역시 디즈니 영화지만 대작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계에선 “아무리 디즈니라지만 추리물까지 한국 영화를 밀어낸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설 연휴 극장가에 개봉된 한국 영화의 대표 주자였다. 235억 원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로 강하늘, 한효주, 이광수, 권상우, 채수빈 등 인기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게다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지금 우리 학교는’의 대본을 쓴 천성일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그만큼 기대가 컸고 설 연휴 개봉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독주를 막아내며 14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렇지만 2월 9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113만 552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100만 관객을 기록하기까지 무려 열흘이나 걸렸다. 손익분기점이 450만 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너무 아쉬운 수치다. 그나마 꾸준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디즈니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이 개봉하면서 바로 1위 자리를 내줬다. 2월 9일 ‘나일 강의 죽음’이 2만 8142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데 반해 ‘해적: 도깨비 깃발’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만 2889명에 불과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맞서 연말 극장 한국 영화 흥행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던 ‘킹메이커’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 급증으로 개봉 시점을 설 연휴인 1월 26일로 연기했지만 이런 결정은 악수가 되고 말았다.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신규 확진자는 훨씬 더 많아졌고, ‘해적: 도깨비 깃발’과 같은 날 개봉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기 때문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주목 받은 변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설경구와 이선균이 출연한 ‘킹메이커’는 대선 정국에서 개봉하는 본격 정치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다. 그렇지만 ‘해적: 도깨비 깃발’에 밀려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지 못하며 2월 9일까지 65만 389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2월 9일 9016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는데 이는 20여 년 만에 재개봉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9173명보다도 적은 수치다.
물론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의 부진한 흥행 성적은 오미크론 대유행 때문일 수 있다. 그렇지만 2021년 12월 15일 개봉한 마블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누적 관객 수가 746만 4517명이나 되고, 1월 5일 개봉한 ‘씽2게더’도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 수 83만 6975명이다. 볼 영화가 있다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보다 근본적으로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가 그만한 경쟁력이 있는 영화였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가 코시국에 개봉하지 않았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을지 확언할 수 없다”며 “반면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당연히 1000만 관객을 넘겼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의 흥행 실패로 인해 2022년 한 해를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선은 더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뒤에 개봉하기 위해 개봉을 미뤄 놓은 영화가 꽤 많다.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들은 이미 정상적인 개봉을 시작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기대작이 대거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2022년에는 여러 편의 영화가 연이어 흥행하는 돌풍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2022년의 문을 연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는 모두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코시국의 적은 관객 수를 감안할지라도 흥행에 성공한 외화들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가까이 이어진 개봉 정체 현상 자체는 분명 위기다. 만약 몇 편의 흥행 대작이 등장해 분위기를 바꿔놓지 못할 경우 개봉이 밀려 있는 한국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은 하지만 거듭 흥행에 실패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자칫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영화계가 오랜 불황기로 접어들 수도 있어 영화계에서 걱정이 크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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