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씨 사소한 것에 꽂혀 칼 들고 위협하고 구타…PTSD 생겨 잠도 못 자, 절대 선처 없다”
신영호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호드벤처’에 폭행과 협박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올렸다. 2편의 영상은 약 2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1월 26일 정 씨는 관련 내용을 일부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요신문은 신 씨를 만나 자세한 당시 상황과 전후 상황을 들어봤다. 신 씨는 “합의는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창욱 씨를 알게 된 계기는.
“2021년 6월 사업차 하와이에 가게 됐다. 그때 하와이안항공에 정 씨가 협업한 기내식이 나오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하와이안항공을 타면 정창욱 씨 음식 먹을 수 있을까’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정 씨가 공유해주면서 연락이 됐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연락하다 나중에 자신이 번거롭다면서 번호를 알려줬다.”
―하와이에서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연예인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요리를 좋아해 정 씨의 오랜 팬이었다. 정 씨가 하와이에서 장기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하와이에 오고 싶어 했는데 미국 입국 시와 한국 귀국 시 자가격리 여부 등을 물어봤다. 당시 백신을 안 맞았던 정 씨를 위해 한 번에 접종 완료할 수 있는 얀센 백신을 예약해주기도 했다. 정 씨는 하와이 도착하면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같이 지내자고 했고 대신 렌터카 예약을 부탁했다.”
―처음 정 씨가 하와이 왔을 때는 어땠나.
“선망하던 사람과의 만남에 기대를 많이 했다. 정 씨는 편집자인 팽이 PD와 같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 씨가 나와 대면은 처음인데도 무례한 태도였지만 선망하던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얼어 있었다. 첫날부터 일반인 기준으로는 술을 많이 마셨다. 소주 6~7병 정도 마셨다고 기억한다. 정 씨는 술을 정말 잘 마신다. 주량을 일반인 기준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건은 어떻게 진행됐나.
“둘째 날은 술을 안 마셨다. 셋째 날 다시 술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 7~8병을 2명이 나눠 마셨는데 사실상 정 씨가 대부분 마셨을 것이다. 나는 차를 운전해야 해서 전혀 안 마셨고, 팽이 PD는 백신 부작용 때문에 몇 잔 안 마셨다.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마시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혼자 2병 가까이 마셨다. 연예인들이 소주를 궤짝으로 마신다는 얘기를 농담으로 들었는데 진짜더라. 그러다가 갑자기 사소한 것에 꽂혀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떤 점에 화를 냈나.
“정창욱 씨와 인연 있는 인물 인터뷰 영상 촬영 중 질문을 ‘가장 맛있게 먹어본 정창욱 씨 음식은 무엇인가’라고 했다는 것에 분노했다.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 갑자기 ‘너희는 죽어야 한다’면서 칼을 들더라. 정말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지’ 싶었다. 욕설을 쏟아부으면서 목에 큰 칼을 댔는데 서늘한 단면이 느껴지면서 ‘아,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칼로 위협하면서 목을 조르기도 하고 명치를 때리기도 하는 등 구타와 협박, 폭언을 했다.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팽이 PD가 화장실에 구토를 하러 갔다. 정 씨는 화장실 문을 동전으로 열더니 토하던 팽이 PD 멱살을 잡고 끌고 와서 다시 칼로 위협했다. 실제로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후유증 가운데 하나인 이인증(자신의 감정을 외부관찰자처럼 느끼는 증상)이 생기기도 했다.”
―언제 도망칠 수 있었나.
“곧바로 도망치다 잡히면 정말 죽겠다고 확신했다. 도망칠 기회를 봤다. 그런데 다음날 정 씨가 갑자기 머리를 잘라주겠다고 하더라. 어제 자신이 사고 친 상황을 알고 뭔가 잘해줘서 만회하고 싶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큰 칼로 위협한 이후부터 거부할 수 없었다. 정 씨가 가위와 바리깡(이발기)으로 머리를 잘라주는데 가위 느낌이 두렵기만 하더라. 그러다 폭행당하고 이틀 뒤 오전에 촬영 일정이 있었고 그 틈에 도망칠 수 있었다.”
―떠나고 나서 정 씨는 어떤 반응이었나.
“하와이에서 오래 체류하다 보니 동전이 많이 생겼다. 정 씨는 도착한 지 3일밖에 안돼 동전이 생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동전이 내 것이라 생각해 다 들고 갔는데 정 씨 것이 몇 개 들어갔나 보다. 동전을 왜 다 가져갔냐고 하더라. 돈으로 주겠다고 하니까 됐다고 하더라. 이후 정 씨는 술 한잔 하러 오라고 했지만 ‘그날이 두려워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고 영사관에서 사건을 진술하기도 했다. 하와이에서 더 있다가는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아서 9월 초 출국 날까지 시간만 보내다가 한국으로 와서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이후 1월까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채 보냈다. 눈을 감으면 그때 두려웠던 기억이 떠올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정 씨에게 당하고 하와이에서부터 정신이 공포에 잠식됐음에도 이 사건을 알려야겠다는 마음만큼은 있었다. 고소하고 난 뒤 사건을 알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국에 와서 팽이 PD를 만나 공론화시켜야겠다고 설득했다. 또 정 씨 피해자가 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상을 만들면 다른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획을 하고 팽이 PD가 편집해서 완성했다.”
―고소하고 나서 정 씨가 연락해 온 적은 없나.
“변호사를 통해 합의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고 ‘3억, 5억 원을 줘도 합의할 의사는 없다’고 명확히 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이인증, PTSD 등 상처로 얼룩진 마음이 치유될 것 같진 않았다. 또 괜히 돈을 받아서 ‘돈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죽기보다 싫다. 법적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영상을 올린 뒤 정 씨가 사과문을 올렸다. 마음이 풀렸나.
“주변에서 ‘사과문 올렸다’고 말해 정 씨 인스타그램을 보러 갔지만 정작 나와 팽이 PD는 볼 수가 없다. 정 씨가 우리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숨통이 트인 건 사과문이 아닌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 씨 행각이 널리 알려져서다. 또 예상했던 대로 정 씨의 다른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친구들은 제정신이 아닌 나를 위로해줬고 집으로 찾아와 다독여줬다. 부모님은 사건을 이 정도로 자세히는 알지 못하다가 영상과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정확히 알게 됐다. 절대 합의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현재 정 씨에 대해 특수상해, 특수협박, 특수중감금, 특수중감금치상 등 혐의로 고소했고 많은 부분이 인정돼 경찰이 검찰로 송치했다고 알고 있다. 정 씨도 경찰에서 대부분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들었다. 사건이 빨리 마무리돼 다시 여행 유튜버로 돌아가고 싶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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