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 발언 여권 결집 부메랑, ‘단일화’ 두고 이준석과 갈등 가능성,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리스크 확산 조짐
#자나 깨나 입 조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불조심 예방 표어를 유념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자나 깨나 입조심’ ‘꺼진 마이크도 다시 보자’ 등이다.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는 언제나 윤 후보의 설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2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답했다. 다만 “그러나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공개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공개된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 합동 진행 서면 인터뷰에서도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윤 후보를 겨냥했다. 윤 후보를 정치 보복을 노리는 구태 정치인으로 프레임화한 것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과잉 의전’ 논란으로 수세에 몰렸던 더불어민주당은 문 대통령 반격을 시작으로 진영 총결집에 나섰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어제는 윤 후보의 정치보복 선언의 날이었다. 가히 충격적이다. 시커먼 속마음이 드러났다”며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반드시 승리해 대한민국이 윤석열 사단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검찰 공화국이 되는 일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은 지지하지만 이 후보에 대해서는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여권 지지층이 ‘대통령 지키기’ 차원에서 이 후보로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 재발 방지’ 프레임도 꺼냈다. 윤 후보가 감당해야 할 전선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사과 요구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각을 세우던 윤 후보도 10일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제가 당선되면 어떤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오후에 기자들을 만나서도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지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 모래시계 검사 출신 홍준표 후보는 ‘정치보복 안한다. 새로운 시대로 가겠다’는 언론 인터뷰를 여러 번 했다. ‘앵그리홍’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한 것이었고 경선 막판까지 선전했다”며 “윤 후보의 이번 적폐수사 발언을 집토끼는 좋아하지만 산토끼는 달아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여권 결집이라는 부메랑까지 받아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에 “후보로서 안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전 위원장은 10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윤 후보는 이 정부에서 스스로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냐”며 “그때 생각하고 지금 생각하고 뭐가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어서 그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몰랐겠느냐. 그런 측면에서 후보로서 현 정부에 대해 그런 얘기 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적절치 못한 얘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윤 후보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관련해 “왜 A 검사장을 무서워하나. 이 정권에 피해를 많이 보았기에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말이 안 된다. 거의 독립운동 하듯 해온 사람이다”라고 발언,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후배 검사라 할지라도 국민이 듣기에는 ‘대놓고 싸고돈다’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박 장관은 1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특정 검사장을 거명하면서 하는 발언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할 수 있고 조직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선 캠프를 경험한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적폐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터뷰를 보면 윤 후보가 자료도 놓지 않고 즉문즉답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돼있다. 선거 막바지일수록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해서 윤 후보는 지금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발언하는 3사1언의 조심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집안싸움 재연?
윤 후보는 지난해 연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국면 속에서 지지율 급락을 경험했다. ‘윤 후보가 끝난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초 극적인 당 내홍 봉합 이후 선거 막바지에 이른 최근까지 내홍은 더 이상 재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집안싸움을 일으킬 불씨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무엇보다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여겨지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서 윤 후보와 이 대표의 첨예한 갈등 가능성을 점치는 정치권 관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대놓고 “안 후보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당대표로서 향후 당 대 당 차원의 단일화 협상에 대비,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결혼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말로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는 2월 9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안 후보를 향해 “저희 정보로 판단해 안 후보는 선거를 완주할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사퇴 압박을 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말 그대로 유세차가 돌아야 하고 현수막을 붙여야 하고 전국 250여 개 정당 사무소를 마련하는 등 비용이 들어간다”며 “만약 완주와 당선을 목표로 하는 후보라면 여기에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안 후보 측의)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며 “250여 개 선거사무소를 마련한다면 저희에게 포착이 되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표는 “협상에 의한 경쟁방식에 따르는 게 ‘단일화’인데, 한쪽이 선거를 진행하기 어려워 포기하는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철수’라고 한다. 아마 정권교체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은 ‘(안 후보가) 깔끔히 사퇴하고 (윤석열을) 지지선언하기’ 이 정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후보의 이름 ‘철수’를 거론하며 중도사퇴를 거듭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안 후보로서는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단일화는 탈락 후보에 대한 물밑 보상책 협상, 이후 후보 간 원샷 담판으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인데 이 대표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윤석열 후보 측 한 관계자는 “안 후보는 지난해 6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자신의 양보가 이뤄지면서 단일화가 달성돼 국민의힘이 승리한 기억을 컴퓨터처럼 잘 기억하고 있다”며 “컴퓨터 분석을 통해 답을 내놓고 있는 사람인데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없고 쉽게 풀릴 것이다. 그래서 윤 후보도 차 한잔하면 10분 만에 해결될 것이라고 한 거다. 이 대표가 지나치게 발언할 필요가 없다. 자칫 이 문제가 선거 막판 당내 갈등으로 작용할까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단일화에 대해 맹공을 퍼붓던 이 대표는 11일 “야합이 없으면 마다할 필요 없다”며 일단 단일화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야합’이라는 표현으로 묘한 여지를 남겼다.
#부인 리스크는 끝?
윤석열 후보 측근들에 따르면 선거 막판 부인 김건희 씨의 등판을 검토했다. 그러나 김혜경 씨 과잉의전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김 씨 등판도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괜히 공식무대로 나왔다가 김혜경 씨와 함께 세트로 걸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건희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 씨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숙명여대가 2월 10일 예비조사에 착수했고, 같은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현안대응TF는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당시 전체 유통주식의 7.5%를 보유해,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특수관계인 외 최대주주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와 관련해 “김건희 대표는 주가조작에 일절 관여한 바 없다”고 반박했고 석사 논문 표절 논란도 명확히 드러난 게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내 인사들은 선거 막판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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