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비자금 7256만원 사적 사용 확인…정치편향 논란 버티다 2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
이러한 구설에도 김원웅 회장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광복회 수익사업을 악용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가 불거졌다. 그 중 일부가 김 회장 개인 등에 사용된 것이 국가보훈처 특정감사 결과 드러났다. 김 회장 좌충우돌 행보는 결국 2년 8개월 만에 자진 사퇴로 끝이 나게 됐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자진 사퇴를 표명했다. 2019년 6월 취임한 이후 2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이다. 김 회장은 2월 16일 입장문을 통해 “최근 사태에 대해 부끄럽고 민망하다. 광복회 회원 여러분의 자존심과 광복회 명예에 누를 끼친 것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람을 볼 줄 몰랐고 감독 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 전적으로 제 불찰”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회장은 “저는 반평생을 친일청산에 앞장서 왔다. 친일 반민족 언론 ‘조선일보’와 대척점에 서서 싸워왔다”며 “그 조선일보, TV조선에 의해 제가 무너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의혹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도, 내부적으로 비리가 드러난 전직 간부에 의한 ‘허위 언론 제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1월 25일 TV조선은 광복회 전직 간부 증언을 인용해 김원웅 회장이 지난 1년간 광복회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카페 운영 수익금을 유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카페는 독립유공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 광복회가 국회에서 운영해왔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에 대한 특정감사에 착수했고, 2월 10일 김 회장이 수익을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보훈처는 “광복회의 국회 카페 수익사업 수익금이 단체 설립 목적에 맞지 않게 부당하게 사용됐고, 골재사업 관련해 광복회관을 민간기업에 임의로 사용하게 하는 등 비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훈처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비자금은 국회 카페 중간거래처를 활용해 커피 재료상과 허위 발주 또는 원가 과다계상 등 방법으로 조성했다. 비자금 중 일부는 김 회장 개인 통장으로 입금된 후 여러 단계를 거쳐 현금화돼 사용됐다고 보훈처는 파악했다.
보훈처가 제보자 진술과 감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을 합하면 비자금 사용액은 총 7256만 원이다. 여기에는 김 회장 한복 및 양복 구입 440만 원, 이발비 33만 원, 마사지 60만 원 등의 내역이 포함됐다. 또 김 회장이 설립한 협동조합 ‘허준 약초학교’에 공사비 1486만 원을 비롯해 파라솔 설치대금(300만 원), 안중근 모형 권총 구입대금(220만 원), 강사비·인부대금(80만 원) 등 총 2380여만 원의 사용내역이 나왔다.
이외에도 김 회장 친인척이 임원으로 등재된 골재업체가 광복회관 사무실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개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서등록대장에 기재되지 않은 김 회장 명의의 공문 6건이 발행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보훈처는 “비자금 조성·사용은 인정되지만, 김 회장의 지시·승인·묵인 여부는 관련자의 진술이 상이하다”고 덧붙였다.
보훈처는 김원웅 회장 등 관련자에 대해서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며 공을 경찰에 넘겼다. 또한 광복회가 정관에 따라 징계 조치를 하도록 행정지도 했다.
보훈처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광복회 안팎에서는 김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광복회장은 임명직이 아니라 보훈처에 해임 등 권한이 없다. 다만 광복회 정관에 따르면 총회 구성원 절반 이상 발의를 얻어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총회 재적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 이에 일부 회원들이 김 회장 해임을 안건으로 상정한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원웅 회장은 “보훈처의 감사가 위법행위이자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사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임시총회 소집 요구도 정관상 요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그러던 중 정치권에서까지 사퇴 압박이 나오자 14일 임시총회 개최 요구를 돌연 수용한 데 이어, 임시총회를 이틀 앞두고 자진 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김원웅 회장은 2019년 6월 취임 이후 숱한 구설에 올랐다. 취임 초부터 ‘친일청산’ 기치를 내걸고 관련 활동과 발언을 냈다. 특히 2020년과 2021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 등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정권을 ‘친일·반민족 정권’으로 규정, 보수진영으로부터 ‘정치편향’ 비판을 받았다.
김 회장은 “우리 국민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친일정권과 맞서 싸워왔다”며 “4·19로 이승만 친일 정권을 무너뜨렸고, 박정희 반민족 군사정권은 자체 붕괴했다.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 꿇었고, 박근혜 정권은 촛불 혁명으로 탄핵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내홍도 불거졌다. 김 회장 취임 후 새로 만든 상을 수상한 사람 중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거나 한때 당적을 보유했던 사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지난해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이름을 딴 ‘최재형상’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받으면서 내부 갈등이 격화됐다.
또한 내란음모죄로 구속수감 중이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옹호발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폄훼 발언 등으로 2019년 10월 광복회 내부 상벌위원회에 제소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4월 제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김 회장이 그를 반대하는 회원에게 멱살을 잡히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현행 광복회 정관 제9조는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반대하는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 속에 이어져왔던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 활동은 결국 횡령 의혹에 따른 불명예 퇴진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불거진 논란에 대해 광복회 관계자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광복회는 김 회장 사퇴에 따라 2월 17일 이사회를 열어 회장 직무대행을 지명하고, 오는 5월 새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를 개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사퇴했지만 보훈처가 의뢰한 횡령 혐의 경찰 수사는 이어질 전망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경찰 수사 의뢰를 따로 철회하거나 하지 않았다”며 “횡령 혐의에 대해 밝혀져야 할 사안이 있다. 수사는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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