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했던 인물 구도 흔들, 역전 전무 역대 대선 징크스, ‘샤이 이재명’ 놓고는 의견 분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부수 찾기 게임이 시작됐다. 발단은 장기간 지속된 ‘박스권 지지도’다. 그사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상승 추세는 멈추지 않았다. 급브레이크는 문재인 대통령이 걸었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집권 시 적폐수사’ 발언 공간을 치고 들어갔다. 문 대통령의 ‘강력한 분노’는 친문(친문재인)·친노(친노무현)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런데도 두 후보의 ‘골든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철수발 단일화는 대선 블랙홀이 됐다. 여권의 패배 그림자만 더 짙어진 셈이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문 대통령이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이후 진보 지지층의 표심 변화가 감지된다”며 “역전 발판을 위한 모멘텀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윤 후보가 여전히 이기는 것으로 보고받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여론조사만 보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유동적 판세’”라고 했다. 다른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이제까지 쫓는 자가 유리했다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점부터는 후발 주자가 위기를 느낄 것”이라고 했다.
좀 더 살얼음판인 쪽은 여권이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현재 판세는 ‘백중열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최소 3%포인트가량이 부족하다”고 귀띔했다. 비이재명 진영에선 ‘이러다가 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역력하다. 특히 판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점은 이 후보의 최대 딜레마다. 이 후보는 윤 후보 아킬레스건을 치기 위해 최근 경제 공약을 쏟아냈지만, 유권자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이 후보가 윤 후보를 향해 “대놓고 정치 보복을 공언했다” “민주당을 완전히 궤멸하겠다는 것” 등의 거친 표현을 썼지만, 정국의 시선은 문 대통령 입으로 쏠렸다. 청와대 참전으로 대선판이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로 재편되면서 당 내부에선 “이재명이 더 안 보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 대통령 전면 등판이 이 후보가 그나마 우위를 점했던 ‘인물 구도’마저 흔들었다는 뜻이다.
다급한 이 후보는 보수와 중도를 넘나들면서 부동층 표심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월 15일 부산항에서 경제대통령을 외친 이 후보는 “좋은 정책이라면, ‘박정희·홍준표 정책’이라도 쓰겠다”고 했다. 하루 전날(2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선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했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가선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최고임금법인 일명 ‘살찐고양이법’에 대해 “삼성 몰락법이자 시진핑 미소법”이라며 날을 세웠다. 친기업 행보를 통해 중도 표심을 끌어안으려는 전략적 포석이지만, 심 후보는 “소년공 이재명은 어디에 갔나”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이 후보의 메시지가 중도 외연 확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최악 땐 ‘원칙과 철학이 없는 후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여권 내에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판이 뒤집히겠느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이는 일종의 ‘대선 징크스’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종 당락은 ‘공식 후보자 등록일’ 때 결정됐다. 오차범위 내라도 우세한 쪽이 대권 여의주를 거머쥐었다는 얘기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1~2위가 뒤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초박빙 승부였던 2012년 대선 당시 후보 등록일(11월 25~26일) 직후인 26~27일(28일 발표)에 한 조사를 보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45%,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는 42%를 각각 기록했다. 최종 결과는 ‘박근혜 51.6% 대 문재인 48.0%’였다.
2017년 대선도 비슷했다. 한국갤럽이 당시 공식 후보등록 직전인 4월 11∼13일 조사(공표 14일)한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40%,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37%,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7%였다. 최종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 41%로 당선. 이어 홍준표 24.0%, 안철수 21.4%였다. 보수 진영 막판 표심 이동으로 반문(반문재인) 후보 간 골든크로스만 발발했을 뿐, 전체 판세를 흔들지는 못했다.
현재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내 혼전’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2월 11~12일(14일 공표) 조사한 결과에선 윤 후보 43.5%, 이 후보 40.4%였다. 같은 날 공개된 칸타코리아가 조선일보·TV조선 의뢰로 2월 12∼13일 조사한 결과에선 윤 후보 38.8%, 이 후보 33.2%를 기록했다. 앞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월 7∼9일 조사해 10일 발표한 조사에선 양 후보가 35%로 동률(이상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이었다. 다수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도 추세가 꺾이지 않은 점을 감안해 윤 후보의 ‘박빙 우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후보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안철수발 단일화 블랙홀도 갈 길 바쁜 이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월 13일 야권 단일 후보를 제안하자 당 내부에선 “허를 찔렸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 민주당에선 송영길 대표가 안 후보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었다. 당시 당 인사들은 ‘이재명·안철수 단일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이 후보 대신 야권 단일화를 택했다. 안 후보가 ‘이재명·안철수 단일화’의 싹을 스스로 자른 셈이다. 송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안철수 단일화는 이젠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인 우상호 의원은 더 나아가 ‘이재명·심상정’ ‘이재명·김동연’ 단일화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택한 전략은 ‘단일화 김 빼기’다. 민주당 인사들은 안 후보가 제안한 단일화에 대해 “윤석열 양보 단일화” “민주당 지지층은 안철수를 택할 것” 등의 말로 야권 갈라치기에 나섰다.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안 후보 지지도가 7~9%라고 가정하면 단일화해도 윤 후보에게 갈 표심은 2~3% 남짓”이라며 “국민의힘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마이너스 게임”이라고 말했다.
여권이 노리는 것은 ‘어게인(Again) 1987’이다. 당시 양김 분열로 치른 대선은 4자 구도였다. 야권 단일화 핵심축이었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4자 필승론을 앞세워 YS(김영삼 전 대통령)와의 단일화를 거부했다. 4자 필승론이란, 노태우(민주정의당)와 YS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표심을 분할하고 JP(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충청표를 가져가면 호남 몰표와 수도권 우위인 자신이 당선된다는 게 골자다. 최종 결과는 노태우 36.7%, YS 28.0%, DJ 27.1%, JP 8.1%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안 후보와 단일화를 안 해도 결국 윤 후보가 이길 것”이라며 ‘신 4자 필승론’을 폈다.
여권이 기대는 것은 ‘샤이’ 표심이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이들은 ‘은폐형 부동층’으로 불린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은폐형 부동층 비율을 2~5% 사이로 본다. 이번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선거인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샤이층이 두텁게 존재할 수도 있다. 진보진영 한 인사는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률에 따라 편차가 크다”며 “투표율이 높아지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샤이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기대는 지점도 여기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진보 정권에선 샤이 보수가, 보수 정권에선 샤이 진보층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권교체 여론이 50% 중후반대에 달한다. 진보 정권이지만 샤이 진보층이 있을 개연성이 많다”고 했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도 여론조사 콜백 시 이 후보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샤이 이재명이 샤이 윤석열보다 더 많다”며 “투표율이 80%에 육박하는 대선에서는 이들의 상당수가 투표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이 진영 대결로 흐른 상황이 아니냐”며 “샤이층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부동층은 대답을 기피하는 은폐형 이외에도 기권형과 선거 때마다 미결정하는 순수형으로 나뉜다”라며 “은폐형이 기권형과 순수형보다 많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은폐형, 기권형, 순수형 비율은 통상적으로 ‘4 대 3 대 3’ 안팎이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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