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조선소 조선해양사업부 1야드 작업중지 해제, 사고 발생 2야드 조사 중…“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
지난 1월 24일 오후 5시 15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조선해양사업부 2야드 가공소조립 공장에서 50대 직원 오 아무개 씨가 크레인을 이용해 철판을 이송하던 중 철판과 설비 기둥 사이에 흉부가 끼어 숨졌다. 오 씨는 27년 차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로 크레인 업무만 전문적으로 하는 크레인 운전수였다.
앞서 오 씨는 사망 당일 오전 크레인 오작동으로 현장팀장에게 수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팀장은 현대중공업 정규직 직원이다. 하지만 크레인 작동 여부만 확인된 채 작업은 계속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해당 사고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후 고용노동부는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현대중공업 근로자 A 씨는 고용노동부에서 사고 발생 크레인에 대해 10여 차례 브레이크 작동 시험을 실시한 결과, 모두 비정상적으로 움직였다고 말한다. A 씨는 “스위치를 통해 크레인의 작동을 멈추는 과정에서 크레인이 멈추지 않고 1m 정도 이동했다”며 “고용노동부에서 10차례 정도 크레인이 멈추는지 확인했는데 모두 크레인이 1m 앞으로 나갔다. 즉 크레인이 멈춰야 하는 위치에 서지 않고 계속 이동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6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울산조선소 조선해양사업부 2야드를 포함해 가공소조립 공장 전체(1·2야드)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해당 작업과 비슷한 공정에서 사고 발생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 관련 공정 작업을 모두 중지시키기로 결정한 것.
그러나 최근 울산조선소 조선해양사업부 1야드에 대해선 작업 중지 명령이 해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곳(1야드)은 (작업 중지 명령이) 풀렸고, 사고가 발생한 곳(2야드)은 (작업 중지 명령이) 아직 안 풀렸다”며 “고용노동부 조사는 거의 끝났다. 다만 현대중공업 측에서 위험성을 모두 제거하고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요청을 해야 하는데 아직 위험성을 모두 제거하지 못해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요청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상공회의소는 지난 8일 "가공소조립 공장은 선박 제조공정의 첫 단계면서 핵심 제작 공정이어서 작업 중지 명령으로 후속 공정을 담당하는 직영 근로자 4600여 명과 130여 개 협력사 근로자 1만 600여 명 전체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작업 중지 명령에 대해 선처 요청을 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울산조선소 조선해양사업부 2야드는 세부적으로 조사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사고 발생 후 정치권 등에선 현대중공업의 중대재해를 규탄하고 나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최근 “현대중공업 전체 사업장에서 사용 중인 크레인 대부분이 최소 20년 이상 지난 노후 장비다”라며 “장비가 노후한 만큼 안전진단과 점검이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데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MOS(모스)라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어 각종 장비의 정비 업무를 나눴고 형식적인 점검만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의원이 2015~2020년 발생한 산업재해(산재)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대 제조업의 경우 현대중공업이 산재 발생 1위를 기록했다. 근로자 1만 명당 재해자 수 비율이 181.3명으로 2위를 기록한 기아자동차의 약 2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관리가 여전히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안전관리가 이뤄져 구조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계열사 현대중공업모스(MOS)를 세워 크레인 운영 업무를 맡겼다. 현대중공업모스는 현대중공업이 각 사업본부 산하의 설비지원 부문을 떼어내 만든 자회사다. 문제는 크레인 정비 등 운영 업무를 현대중공업모스에서 담당하지만, 실질적으로 정비는 현대중공업모스의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장비 정비와 같은 안전관리도 다단계 하청으로 이뤄진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셈.
오 씨가 사망 당일 오전 크레인 오작동에 대해 문제제기 했을 때 ‘작동은 잘 되냐’고 물었던 쪽은 현대중공업모스의 설비 담당 하청업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값싼 노동력을 하청화해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욕심”이라며 “2016년 현대중공업모스가 세워진 후 안전관리는 그 전보다 더 못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크레인 사망 사고를 현대중공업이 아닌 현대중공업모스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은 현대중공업이 책임질 확률이 높은 구조라고 설명한다. 현대중공업모스는 현대중공업이 도급을 주기 위해 만든 자회사라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마중 김위정 변호사는 “만약 현대중공업모스의 하청업체 근로자라면 현대중공업이 작업장에 관여하는 정도에 따라 다를 테지만 재해자(오 씨)는 현대중공업 정규직 근로자이기에 현대중공업이 ‘직접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모회사 자회사 관계가 아닌 도급 형태 여부에 따라 사고 책임 대상이 달라지는데 현대중공업모스가 현대중공업이 도급을 주기 위해 만든 자회사면 현대중공업모스 소속 근로자 사고도 도급을 준 현대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비의 노후화에 대한 비판도 있다. 오 씨를 사망케 한 크레인은 1995년식으로 20년 이상 노후화한 장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인은 하물을 들어 올려 상하·좌우·전후로 운반하는 기계장치다. 다만 사고가 난 크레인은 '천장크레인'이다. 한국크레인협회 관계자는 “천장크레인 장비 기한은 없다”면서도 “거더(주행 크레인의 레일을 지지하는 큰보) 휨, 브레이크 작동 후 장비 움직임 등은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은 2020년 6월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3년간 3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현대중공업 내 근로자 사망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의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서 지난해 발간한 통합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안전경영 운영체계로 △새로운 안전문화 정책을 위한 현업 주도의 자율안전관리 강화 △빅데이터 기반 현장 위험요인 제거 활동 강화 △현장 중심의 안전교육 체계 개편 및 계층별 안전역량 강화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하청 안전관리 실태 등 제도적 원인부터 손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어떠한 좋은 안전경영 대책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접목될 수 없다”면서 “원인은 구조적 문제에 있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도 없다. 근로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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