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선진국들을 부지런히 쫓던 추격자에서 어느새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K-사이언스, 그 도약의 역사를 추적해본다. 배우 김석훈이 프리젠트로 참여한다.
1988년 '벽돌폰'으로 불리는 무게 1.3kg의 모토로라 다이나택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고 가격은 무려 400만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 역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SH-100이라는 폰을 개발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인 휴대전화 개발과 더불어 우리정부도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 개발에 나서는데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통신회사 퀄컴과 손을 잡고 새로운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을 서두른다.
정해진 기간 내 서비스 상용화가 불가능하단 여론도 많았지만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리며 1996년 2세대 이동통신기술인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다.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모든 것이 부족했던 대한한국이 3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할 수 있었던 그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세계 최초로 CDMA가 개발된 지 16년이 흐른 2018년 2월. 우리나라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또 한 번 세계 최초로 5G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ICT 기술력을 입증하며 5G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가 제공됐다.
현재 5G는 상용화 3년 만에 자율주행차, 가상증강현실(VR, AR), 빅데이터, AI 등 4차 산업혁명의 거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됐다. 하지만 더 안전하고 정교한 지능화를 위해선 5G 보다 더 빠르게 연결되는 기술 6G가 요구되고 있다.
6G는 5G보다 50배 빠른 전송속도와 10배 많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지능형 IoT 세상을 이끌 차세대 이동통신. 무려 5000억 개 이상의 사물들이 6G 네트워크에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에서 앞 다투어 6G 주도권 전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 6G 개발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1960년대 말 일본과 미국 등 외국 반도체기업의 단순조립기지에서 출발한 우리나라가 어떻게 반도체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 걸까. 1982년 정부가 추진한 첫 대규모 R&D 사업인 특정연구개발사업, 이 사업의 집중추진 분야 중심에 반도체가 있었다.
당시 냉장고와 흑백TV를 만들던 국내 전자기업들이 VCR과 컬러TV를 개발한 후 가장 큰 골칫꺼리는 반도체칩이었다. 거의 전량을 일본에 의존하다보니 수급이 늘 불안했다. 반도체칩은 당시 우리 전자산업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것. 마침내 특정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정부기관과 기업체들의 기술교류, 협업을 통해 반도체 개발이 본격화된다.
이후 반도체 개발 10년 만에 명실상부 전 세계 D램 시장 1위를 차지하며 30년 가까이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압도적 초격차를 만든 비결을 분석해본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인류의 삶에 공헌하고 있는 두 과학자의 사례를 통해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비약적인 성장의 열쇠는 무엇이었는지 소개한다.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장으로 나노입자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히는 현택환 서울대 석좌 교수, 그의 균일한 나노 입자 생성법 '승온법' 연구 논문은 3000회 이상 피인용되며 노벨 화학상 후보로까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2020년 전 세계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연구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산업현장에서부터 의료, 환경에 이르기까지 나노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현택환 교수, 그의 남다른 사명감을 들어본다.
두 번째 소개할 주인공은 전 세계 최초로 미생물에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생성 기술을 개발한 시스템대사공학의 창시자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30년 가까이 인류와 자연을 위협하는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오 플라스틱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의 연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10대 유망기술'로 소개되며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네이처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 응용생명과학자 20인'에 아시안이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두 석학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기초과학이 더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본다.
지난 10월 21일 우리과학계 가장 빅이벤트였던 누리호가 발사됐다. 12년의 개발 기간, 2조 원의 예산, 37만 개의 국산 부품 그리고 300번이 넘는 엔진 연소 시험, 지난해 우리 과학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한국형 토종 발사체 누리가 남긴 기록들이다.
비록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독자 개발한 75톤짜리 엔진을 장착한 누리호는 고도 700km 저궤도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우주기술 최강국인 러시아에 비해 3%도 안 되는 적은 인력으로 이룬 성과로 이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우주선진국들보다 40년 가까이 뒤처져 있던 우리나라가 우리별 1호를 시작으로 우주시대의 포문을 연 순간부터 지난해 누리호 발사까지 우주를 향한 도전과 열정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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