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가 있었던 대선은, 15·16대 그리고 18대 대선이다. 그런데 18대 대선의 경우, 1위와 2위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 기간 오차범위 밖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박빙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다.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의 경우는 다르다. 15대 대선 당시를 되짚어 보면,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지른 여론조사도 있었을 정도로 이회창 후보가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16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16대 대선도 1위의 이회창 후보와 2위의 정몽준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상당 기간 오차범위 내였다. 이렇듯 후보들 간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 단일화는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번 대선에서도 단일화가 되기만 한다면 그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단일화 방식이다. 과거 사례를 놓고 보면 15대 대선의 경우는 일종의 담판으로 단일화 됐던 반면, 16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에 의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15대 대선의 경우처럼, 담판으로 단일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담판에 임하는 후보들이 확실하게 당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당을 장악하고 있어야 담판 과정에서 약속된 것들의 이행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에 대한 장악력이 있어야 후보들 간의 신뢰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16대 대선과 같이, 당의 장악력이 비교적 떨어졌던 비주류 노무현 후보와 신생 정당의 후보였던 정몽준 후보 사이의 단일화 경우, 여론조사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한쪽은 당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지고, 다른 한쪽은 당의 장악력은 확실하지만 당세가 약하기 때문에 장악력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16대 대선 당시의 단일화 방식이 현재 단일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에 대한 장악력이 약하고, 안철수 후보는 당세가 약한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론조사를 무조건 밀어붙일 수도 없다.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철수 후보 측의 불행한 사고 때문에, 안 후보 측의 단일화 행보를 비롯한 대선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일화를 위한 시간이 더욱 촉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이른바 역선택의 문제다.
2월 14일 발표된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여론조사(칸타코리아에 의뢰해 12~13일 전국 18세 이상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1.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 됐을 때는 윤 후보 지지층의 67.6%가 안 후보 지지로 이동하게 되지만, 윤석열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됐을 때는 안 후보 지지층의 25.1%가 이재명 후보 지지로, 30.1%가 윤석열 후보 지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를 토대로 보면 첫째 안철수 후보 지지층 중에는 중도성 진보가 상당수 포함돼 있고, 둘째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추진하면 분명 역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후보 중 누군가가 이른바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보 둘 중에 누가 이런 결단을 하든, 상대를 향한 지나친 조롱이나 비난은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결단을 한 후보에게 충분한 예우와 정치적 미래를 위한 담보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만 단일화가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누가 통 큰 결단을 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대선판이 더욱 흥미로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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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