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협조할 것” 사법부 신뢰 추락 고려 회견 자청…대선 후 관련 의혹 수사는 불가피
실제 조재연 대법관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는데 언론이 계속 녹취록을 바탕으로 의혹을 제기한다”고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정치권까지 조 대법관의 실명을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하자 급히 기자회견을 자청했다는 후문이다.
#두 달 전부터 떠돌던 소문이 ‘녹취록’ 토대로 본격화
법원 안팎에서는 올해 초부터 ‘현직 대법관 연루설’이 돌기 시작했다. 김만배 씨와 권순일 당시 대법관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상고심 무죄 거래 의혹과 관련해 “현직 대법관 한 명도 추가로 관여했다”는 내용이었다. 2월 초부터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왔지만 공개적으로 기사화되지는 못했다. 조 대법관이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다. 김만배 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해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20여 일 앞두고, 관련 보도가 나왔다. 한 매체는 2021년 2월 4일 김만배 씨가 정영학 회계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현직 대법관에게 고급 빌라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씨는 “저 분은 재판에서 처장을 했었고 처장이 재판부에 없는 게 없거든, 그분이 다 해서 내가 원래 50억 원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다”라고 언급했고, 또 다른 대화에서는 ‘조 대법관 딸이 김 씨 소유의 경기도 수원시 아파트에 거주했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논란은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가 조재연 대법관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확대됐다.
#정치권이 나서자 커져버린 의혹
정치권도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녹취록을 바탕으로 수차례 보도가 이어지자, 여야 모두 각자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조 대법관 의혹을 풀이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캠프 측은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고 주장하며 대장동 의혹을 이재명 후보와 연계해 비판했던 국민의힘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동시에 조재연 대법관에 대해서도 해명을 요구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법원행정처와 조재연 대법관은 국민 앞에 공식적 입장을 명백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 역시 19일 본인의 SNS(소셜미디어)에 “50억 빌라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걸 가지고 이재명 후보가 의혹을 벗었다고 여기저기 홍보하고 다닌다”며 “지푸라기라도 잡아 이 후보 재판 거래 의혹을 쉴드(방어막) 쳐야 하는 민주당 처지가 안 됐다”고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김만배 씨의 명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에서 계속된 ‘의혹 활용전’에 조재연 대법관이 결국 나섰다. 22일 기자들과의 통화에서만 해도 ‘기자회견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던 조 대법관이 23일 오전 급히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조 대법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족과 연루된 문제라서 말씀하기 어려울 텐데 따님 연루 문제라 따님과 소통하거나 확인해본 일이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제가 모르는 어떤 사실이 있을까 하고 저희 딸 셋에게 다 ‘혹시 판교 타운하우스에 대해 알거나 무슨 얘기를 들었거나 그 근처에 가본 일이 있냐’고 물었고, 이런 의혹이 아빠를 향해 제기되고 있다고 딸들에게 물어봤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고,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혀 사실무근일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논쟁 되는 대장동 의혹 사건에 관해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왜 갑자기 이런 의혹 기사가 보도되었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며 “허위 내용이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다. (대선이 코앞이라) 직접적으로 정면대응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엊그제 대선 후보자들이 전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공개 방송토론에서 한 후보자가 현직 대법관을 직접 거론하고 또 유사한 발언을 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재명 후보가 21일 TV토론에서 “대장동, 화천대유와 관련해 지금 그분이 조 대법관이라고 확인이 돼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아무런 근거 없이 ‘모든 자료가 이재명을 가리킨다’고 페이스북에 썼다”고 조 대법관을 직접 지칭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제 기억으로 일찍이 유례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제가 지난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고민했는데 현직 대법관으로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미묘한 시기에 이러한 의혹 보도 관련해 소상히 밝히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며 “김만배 씨의 명함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친분이 없고 딸들이 (해당 아파트에) 거주한 사실이 없다. 딸 하나는 분가해서 서울에서, 다른 딸 하나는 지난해 결혼해 (용인) 죽전에, 막내딸은 나와 함께 살고 있다”고 부인했다. 추가로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를 즉시 받겠다”며 필요하다면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는 경찰 수사나 김만배 씨 측의 입장과도 겹친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해당 아파트와 관리사무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조 대법관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내지 못했다. 김만배 씨 측 변호인 역시 “(녹취록 속)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란 얘기는 (녹취록) 어디에도 안 나온다”고 답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녹취록에서 비롯된 보도가 너무 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의 대법원 관계자는 “김만배 씨는 평소 법조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녹취록 속 대화 내용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데 언론이 녹취록에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의혹을 던진 부분이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조금이라도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해보려고 하다 보니 참다 못 한 조 대법관이 직접 언론 앞에 나서는 일이 벌어진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조 대법관을 잘 아는 법조인은 “본인 스스로의 신뢰만 흔드는 것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사법부 전체의 상황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안에서도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 때부터 설마 하면서도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는 있었다”며 “법원 내부의 분위기는 물론, 대법원에서 이뤄질 수많은 상고심 판단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막기 위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의혹에서 비롯된 보도로 인해 수사기관의 수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조 대법관을 고발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대선 이후, 조 대법관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기관의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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