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은 계속된다.’
전 세계 정치권에 부는 여풍이 거세다. 얼마 전 태국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잉락 친나왓 등 현재 나라를 이끌고 있는 여성 지도자는 모두 2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지도자들이 가장 많은 곳은 유럽이다. 독일, 핀란드, 스위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키르기스스탄, 리투아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 모두 10개국이다. 그 다음 많은 지역은 남미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5개국이다. 아시아는 태국을 포함해 방글라데시, 인도 등 3개국이고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와 호주가 여기에 속한다. 사실 여성들이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고지도자 외에도 전 세계 고위관리직에 오른 여성 정치인들의 수를 보면 가히 ‘돌풍’이라고 할 만하다.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의회에 진출한 여성 의원들의 비율은 전체의 19.3%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가운데 특히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정계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와 독일의 시사주간 <포쿠스>는 정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 가문 출신의 여성 정치인들을 소개했다.
<포쿠스>에 따르면 ‘이름값’을 톡톡히 보고 있는 여성 정치인들 21명 가운데 세 명은 현재 대통령 혹은 총리직에 올라있다. 또한 이 가운데 5~6명은 현재 야당 지도자이거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박근혜 전 대표, 프랑스의 마린 르펜 국민전선당 대표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런 후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것이다. 가족의 이름만 믿고 처신했다가는 금세 민심을 잃게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미얀마-아웅산 수치(66)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상징. 미얀마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의 딸이며, 현재 민족민주연합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1991년 노벨평화상, 2002년 유네스코인권상을 수상했다.
15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영국인 교수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당시 대규모 반독재 유혈 시위를 목격한 후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투쟁하겠다”는 뜻으로 민족민주연합을 창설했으며, 1990년 총선에서 친군부세력인 민족통일당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15년간의 가택연금과 수감생활로 고충을 겪어야 했으며, 전립샘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등 온갖 수난을 당했다. 2010년에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현재 ‘버마의 넬슨 만델라’로 불리면서 칭송받고 있다.
#태국-잉락 친나왓(44)
지난 7월 태국의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잉락에게는 현재 썩 달갑지 않은 별칭이 하나 따라 붙어 있다. 다름이 아니라 탁신의 ‘복제인간’ 혹은 ‘대리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치 경력이 전무했던 그녀가 야당이었던 푸어타이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탁신 전 총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선거 기간 동안 “만일 여러분이 제 오빠를 사랑하신다면 저에게도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외칠 정도였다. 이렇다 할 공약 하나 없이 오빠의 이름만 믿고 출마했다는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태국 국민들은 ‘친나왓’이라는 이름에 대한 믿음(?)으로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제 현재 두바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은 2개월이라는 짧은 선거 기간 동안 물심양면으로 동생을 지지해줬다. 배후에서 선거활동을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은 나의 클론(복제인간)”이라고 선언하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심지어 푸어타이당의 선거 슬로건 역시 ‘탁신이 생각하면 푸어타이당은 행동한다’였을 정도다. 탁신의 지지층인 빈민층과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던 푸어타이당은 현재 전체 의석 500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5석을 차지한 상태다.
한편 정치 입문 6주 만에 총리직에 오른 잉락은 치앙마이대학과 미 켄터키주립대학에서 행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부동산개발회사인 ‘에스시에셋’, 이동통신회사인 ‘어드밴스드 인포 서비스’ 등 탁신 가문의 기업을 경영했다.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솜차이 옹사왓 전 총리의 처남인 아누솜 아옴차트와 사실혼 관계에 있으며,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아르헨티나-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8)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지난해 심장병으로 사망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지난 2007년 남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선출됐으며, 세계 최초로 부부가 연이어 대통령직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출마 당시 높은 지지율로 사랑을 받던 남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에는 남편의 2011년 대선 출마설이 불거지자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대통령직을 맡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연임 의사를 표명했으며, 이로써 최초의 여성 연임 대통령에 도전하게 됐다.
현재 그녀의 대선 가도에는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지난 14일 실시된 예비선거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야권후보를 제치고 득표율 50%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그녀는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프랑스-마린 르펜(42)
장 마리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당 전 대표(82)의 세 자녀 중 막내딸로 지난 1월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대표직을 맡고 있다.
39년간 당을 이끌었던 아버지의 명성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이를 입증하듯 프랑스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급부상했다. 지난 40년 동안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대권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며 벼르고 있다.
현재로선 이런 그녀의 꿈이 결코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3월, 내년 5월 치러질 대선을 가늠해보는 <르빠리지앵>의 지지율 조사에서 23%를 얻으면서 21%를 얻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앞질렀다.
그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파시스트’ 아빠를 뒀다는 놀림과 조롱을 당했음에도 늘 아버지의 정치관을 존경해 마지않았다. 8세 때 우편물 폭탄 공격을 받아 아파트 외벽에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대형 사고를 당했지만 무사히 목숨을 건졌으며, 훗날 “그때 그 일을 계기로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5세 때부터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돕기 시작했으며, 18세 때 국민전선당에 입당했다. 30대 중반에는 대선에 출마했던 아버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세련되고 우아하며, 능숙한 언변을 뽐내면서 일찌감치 정치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탈리아-알레산드라 무솔리니(48)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의 손녀딸로 현재 이탈리아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5선의원이다.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누구든 할아버지를 욕보이는 사람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다혈질이며, 이런 까닭에 ‘무솔리니’라는 이름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세 자녀의 이름을 모두 모친인 자신을 따라 무솔리니로 바꿀 수 있도록 법적 싸움을 벌였는가 하면, 한때 소피아 로렌의 조카라는 배경 덕에 70~80년대 배우로도 활동했지만 프로듀서가 경력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하자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80년대에는 <플레이보이>의 글래머모델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던 그녀는 “여배우라면 몸매로 승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녀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2년이었다.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사회운동당 소속으로 출마해 나폴리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며, 당시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라며 정계 진출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 후 나폴리 시장직에도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2003년 우익정당인 국민동맹에서 탈당했던 이유 역시 ‘할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 때문이었다. 당시 지안 프랑코 피니 부총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파시즘은 절대악”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면서 미련 없이 당을 떠났고, 그 후 신당인 사회대안당을 창당하면서 독자노선을 걸었다.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는 당”이라고 말했던 그녀는 로마 법원이 신당의 선거 참여를 금지하자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2005년 SS라치오의 축구선수 파올로 디카니오가 AS로마를 상대로 3대 0 승리를 거둔 후 관중석 가까이로 가 오른팔을 뻗고 나치식 경례를 한 데 대해 “매우 멋진 행동이었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6년 로마 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던 그녀는 현재 베를루스코니의 자유국민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