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에서 임용 한 달차 새내기 공무원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기 용인시 기흥보건소 소속 공무원은 과로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 하고 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긴 2022년 2월의 일이다. ‘하루 확진자 10만 명’은 단지 ‘주변에 확진자가 많아졌다’는 뜻에서 끝나지 않는다.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는 ‘돌봐야 할 환자가 매일 10만 명씩 생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퍼지는 확산세에도 방역체계 최일선에는 ‘보건소 사람들’이 있다.[일요신문] “연휴 앞두고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설날 아침에 확진판정을 받았어요. ‘억울하다’는 마음이 컸죠. 다음날 밤에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재택치료키트를 두고 간다’는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까 문 앞에 ‘수원시’라고 적힌 쇼핑백이 있더라고요. 당시엔 늦게 왔다고 투덜거렸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키트가 제 발로 걸어온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설 연휴에 키트 배달을 했다는 거잖아요. 그때가 거의 밤 10시였어요. ‘아, 이거 사람이 하는 일이었지’ 싶더라고요.” 수원시민 김 아무개 씨(28)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 전까지는 보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방역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번아웃’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신규 확진자가 급증한 탓이다. 1월 3주 평균 5159명이었던 확진자는 2월 17일 한 달도 안 돼 10만 명을 돌파하며 19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전국 보건소에서 관리해야 할 환자가 19배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에서 ‘확진되었는데 며칠째 보건소에서 연락 한 통 없다’는 불만이 여전히 속출하는 상황인데, 보건소 사람들의 하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아래는 전국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다수의 증언을 종합한 것으로 특정 보건소를 지칭하지 않는다).
#오전 7시~12시 30분 : “전화 좀 받아주세요”, “동거가족 있으세요?”
오전 7시. 재택치료팀 A 씨가 출근했다. A 씨가 근무하는 보건소의 코로나19 담당 공무원은 약 50여 명. 이들이 수천 명의 확진자를 모두 관리한다. 같은 시간, 역학조사팀 B 씨도 이미 출근을 마쳤다. B 씨가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날의 확진자 결과 보고다. 시민들이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고 가면 그 검체를 외부기관에 보내 검사를 의뢰하는데 당일 새벽이면 결과가 나온다. B 씨는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 한 명 한 명에게 기초역학조사를 위한 설문조사 링크가 첨부된 문자를 발송한다.
오전 8시~8시 30분. 확진자 문자 발송을 마친 B 씨가 앉은 자리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메뉴는 빵이다. 배를 채우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다. 먼저 설문조사 링크에 기입된 기초 정보를 토대로 확진자들을 60세 이상의 집중관리군과 경증·무증상의 일반관리군으로 나눈다. 2월 초 재택치료 중심으로 방역체계가 바뀌면서 역학조사와 재택치료담당자 배정은 증상이 심각하거나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은 집중관리군부터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가 유독 증가하거나 확진자 가운데 집중관리군의 비율이 높은 날이면 일반관리군 환자의 순번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오전 9시~12시 30분. 재택치료팀 A 씨가 역학조사팀 B 씨로부터 확진자 명단을 넘겨 받았다. A 씨는 재택치료관리의료기관으로 선정된 지역의 병원에 집중관리군 명단을 제공하고 재택치료키트를 받을 확진자를 정리한다. 코로나19 초창기까지만 해도 보건소 직원들이 차량을 끌고 각 동별로 집집마다 재택치료키트를 직접 배송했다. 2021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일부 수량에 대해서는 위탁 배송을 맡기고 있지만 퀵서비스마저 부를 수 없는 급한 상황에는 또 다시 차를 끌고 나선다. 보건소 사람들은 설 당일에도 재택치료키트를 배송하기 위해 출근했다.
“주말, 명절 상관없이 교대로 출근해서 일했죠. 기간제 근로자 채용해서 재택치료키트 배송업무를 맡겨보기도 했는데 나갈 게 워낙 많아서 늘 인력이 부족했어요. 보건소 차량도 한계가 있어서 자기 차로 배송하는 분도 있었고, 퇴근하는 길에 배송하기도 하고요. 배송뿐만 아니라 역학조사도 전 직원이 해요. 조직적으로는 팀이 나뉘어 있어도 일이 워낙 많으니 전 직원이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어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2년을 넘어가니 직원 모두 역학조사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더라고요.” A 씨가 웃었다.
11시 30분과 12시 30분. 두 개 조로 나누어 1시간씩 교대로 점심식사를 한다. B 씨의 점심시간은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지만 1시간 꽉 채워 점심시간을 누리는 이는 거의 없다. 산적한 일거리를 보면 입맛이 떨어진다. 40분 전 미리 배달시켜 놓은 음식을 20분 만에 해치운 B 씨가 다시 자리에 앉아 명단을 정리하고 전화를 돌린다.
“전화 좀 받아주세요.” 역학조사 겸 안내사항 전달을 위해 확진자에게 전화를 건 B 씨가 부탁하듯 혼잣말을 읊조린다. 확진자와 한 번에 전화 연결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후통 때문에 말씀하기 불편하시다거나, 안내 사항을 들으시다가 감정이 격해지셔서 전화를 끊으신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같은 분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는 일도 많아요. 젊은 분들은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기도 하고 요즘엔 보이스피싱도 많아서 ‘진짜 보건소 직원 맞냐’고 의심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문자로 먼저 보건소라는 걸 알리기도 해요. 기초조사로는 보통 근무지랑 동거가족 유무 등을 물어보는데, 동거가족도 격리대상이 되니까 ‘없다’고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계셔서 그렇게 되면 사실 확인하느라고 시간이 더 걸리죠. 생계의 문제이다 보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해요.”
#오후 1시 30분~오후 6시 : 민원, 민원, 민원
오후 1시 30분. 오후는 민원의 시간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민원인들의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오전에 콜센터를 통해 들어온 1차 민원도 오후에 담당자가 전달된다. B 씨는 하루 최소 20건 이상의 민원 전화를 받는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개인 연락처가 노출돼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기도 한다.
“보통 점심시간 조금 넘으면 전화가 많이 오기 시작해요. 증상이 약하면 평소엔 잘 못 느끼시는데 아무래도 식사하시다가 처음으로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서인 것 같아요. 음식 맛이 안 느껴진다거나, 목이 부어서 음식물을 넘기기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전화가 개인적으로 오기도 하고요.”
이 밖에도 문의 사항은 다양하다. ‘병원에 가고 싶다’ ‘숨이 가쁜 것 같은데 증상이 심한지 아닌지 모르겠다’ ‘열이 나는데 상비약이 없다’ ‘격리해제일은 언제냐’ ‘재택키트 지급 기준이 무엇이냐’ ‘생활지원금은 언제 받을 수 있냐’ ‘생활치료센터 애플리케이션 로그인이 안 된다’ 등 의학적인 부분부터 생활 관련 전반적인 문제까지 전화를 받은 공무원이 처리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부터 보건소에서 있었던 A 씨의 경우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지만 보건소 내 모든 인력이 A 씨처럼 베테랑은 아니다.
“지금 보건소에는 직렬 상관없이 다양한 곳에서 인력 지원을 나와 있거든요. 전문 의료지식을 갖춘 분들도 있지만 보건과 무관한 부서나 다른 기관에서 갑자기 차출되어 온 분들도 있죠. ‘숨이 가쁜데 얼마나 더 있으면 호흡곤란이 올 수 있는지’ ‘이런 저런 증상이 있는데 병원 어떤 과에 진료 문의를 해야 하는지’ 물어보시면 사실 의료 전문가만큼 답변을 바로 드리기는 힘든 거죠. 빨리 답변 드리겠다고 잘못된 정보로 응대할 수도 없으니 지침서 찾아보다가 시간이 지체되면 민원인은 답답해하시죠. 그렇다고 ‘파견을 나와서 업무가 익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국민들에게 변명밖에 안 되는 거니까요. 제일 안타까운 건 우리 공무원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진행할 시간조차 없다는 거예요. 눈앞에 민원인이 있는데 지침서 펼쳐보고 개정 내용 살펴보고 할 시간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도 행정 업무는 그대로 이어진다. 오전 내에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없고 오전에 긴급하게 보낸 검체 검사 결과도 오후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오전 업무에 민원 처리 업무가 더해지는 꼴이다. 하루 종일 환자 분류-안내(조사)-민원의 쳇바퀴를 돌리다 보면 시계바늘은 어느새 오후 6시를 가리킨다.
#오후 6시~오전 12시 : 주 7일, 200시간 초과근무
오후 6시. 공식적인 퇴근 시간이 넘었지만 집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A 씨는 “오후 8시쯤이 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전에 끝내지 못한 일을 시작한다. 1월엔 업무량이 정말 많았다. 나의 경우 1월에 200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했다. 주말에도 쉬지 못 했고 설날에는 당일만 하루 쉬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못해도 최소 50~60시간씩은 더 일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최근 방역 체계가 중증 관리 위주로 바뀌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간호직 등 코로나19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초과근무 시간에 제한이 없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에 저촉받지 않는 데다 공무원법에는 초과 근무 관련 규정도 없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커지는 의료공백
A 씨가 처음부터 보건소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주 업무도 코로나19와는 무관했다. 시청의 한 복지부서에 일을 했던 A 씨는 2019년 의료지원 관련 연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보건소 발령을 받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엔 기존 사업과 방역 업무를 병행했으나 현재는 이마저도 내려놓았다. 2월 17일 보건복지부로부터 “필수 업무를 제외한 일부 업무를 중단하라”는 권고가 내려와서다.
그러나 취약 계층을 위주로 진행되던 기존 사업들이 중단되면 의료 안전망이 흔들릴 수 있다. 원래 방문 건강관리 업무를 했다는 또 다른 보건소 공무원은 “어르신들을 찾아뵙지 못하는 동안 혹시 건강에 이상에 생기시는 건 아닌지, 불편한 부분은 없으신지, 확진되시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고령층과 기저 질환자 등은 생활치료시설이나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하게 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공무원의 업무 부담도 줄고 고위험 환자의 사망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제한된 인력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에서는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원을 조기에 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