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 보장 정치개혁안 안철수에 공유…‘어게인 1987’ 4자 구도로 ‘민심 단일화’ 기대
여권에 특명이 내려졌다. 윤안(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갈라치기다. 여권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4자 구도나 범진보 연대다. 최악은 야권 단일화의 극적 타결이다. 그 중간은 미완의 야권 단일화로 끝난 ‘어게인(Again) 2012’다. 당시는 화학적 결합과는 거리가 먼 무늬만 연대였다. 범야권 이간계 전략이 깔린 ‘여권발 안철수 단일화’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꽃놀이패다. 민주당이 “야권 단일화 잔치는 끝났다”며 연일 안철수 띄우기에 나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극과 극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 철회 승부수를 던진 직후 이재명 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 분위기는 엇갈렸다. 민주당에선 ‘예상됐던 시나리오’라며 ‘판세 분기점이 임박했다’는 기류가 읽혔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 후보의 기자회견이 열렸던 2월 20일 오후 1시 30분 “예상 밖 결과”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여야 인사들은 “안갯속 판세에 더 짙은 안개가 깔렸다”고 입을 모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윤안 단일화 결렬 이후 윤 후보에게 쏠리던 표심이 흩어진 상황”이라며 “3월 9일 개표를 해봐야 최종 승자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에선 윤안 단일화 결렬 후 안 후보 지지도가 상승했다.
여권은 즉각 판을 뒤집을 ‘승부수’ 마련에 들어갔다. 핵심은 다당제 보장 내용을 담은 정치개혁안이다. 핵심축은 선거구제 개편이다. 이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해묵은 의제’지만, 유동성이 큰 이번 대선에선 ‘연대·연합’의 방아쇠를 당길 필살기라는 게 여권 수뇌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윤안 단일화 결렬 직후 곧바로 민주당은 책임총리제, 중대선거구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정치개혁안 마련에 돌입했다. 이 후보는 2월 22일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송영길 민주당 대표에게 추진 시기 등을 위임했다. 송 대표는 2월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 출범 내 선거제 개혁과 1년 내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뒷받침할 법안 발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 맡기로 했다. 내부 회의에선 이 법안명을 ‘안철수법’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안(이재명·안철수) 단일화를 위한 포석 깔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발 정치혁신안은 안 후보 측에도 발표 전 공유됐다. 하지만 안 후보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의 다당제 전선은 안 후보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은 정의당이 원하는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도 논의키로 했다. 여권 일부 인사들은 ‘연합 공천’ 카드를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적용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법안 발의를 속전속결로 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 한 관계자는 “안 후보와 단일화를 넘어 심상정 정의당 후보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했다.
이 후보도 선거 유세 과정에서 제21대 총선 때 거대 양당이 합의한 위성정당 사태에 대해서 수차례 사과했다. 이에 정의당 관계자는 “그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민주당 인사들이 있는데 연합 공천이 가능하겠느냐”며 “단일화 제안이 온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보수진영도 민주당의 정치혁신안에 대해 “야권 갈라치기를 통해 4자 구도로 끌고 가겠다는 이간계”라고 폄하했다.
현실성 없는 제안이라는 점은 여권 인사들도 인정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정치혁신안에 대해 “구체화된 것은 없다”며 “당장 상대 당 후보와 만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치개혁 의제를 모두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백중 열세를 뒤집기 위한 ‘선거용 공갈포’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여권이 노리는 것은 ‘윤안 단일화에 대한 시선 돌리기→보수·중도층 갈라치기’다. 노림수는 ‘1노(노태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으로 치른 1987년 대선 구도다. 4자 구도였던 ‘어게인 1987’이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게 여권 수뇌부의 판단인 셈이다. 4자 구도가 현실화하면, 대선 막판 안 후보의 지지층 중 ‘반윤(반윤석열) 성향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다. 여권은 이를 ‘민심 단일화’로 칭했다.
이 같은 전략엔 윤안 단일화가 성사되더라도 ‘어게인 2012 데자뷔’로 귀결될 것이란 예상도 깔렸다. 제18대 대선 과정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던 안 후보가 야권 단일화 협상을 놓고 극한 대치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안 후보가 돌연 전격 사퇴하면서 문안(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물리적 연대로 끝났다. 당시 양측의 갈등 두 축은 ‘여론조사 룰’과 ‘단일화 협상 내용’이었다.
이들이 파국을 맞은 것은 제18대 대선 후보자 등록을 사흘 앞둔 2012년 11월 23일이었다. 양측은 전날 밤부터 당일까지 단일화 룰의 ‘절충안→수정안→역제안’ 등을 놓고 온종일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 후보 측은 시민사회가 제안한 ‘적합도 50%+가상 양자대결 50%’를 주장했다. 안 후보 측은 ‘지지도 50%+가상 양자대결 50%’로 하자고 맞섰다. 이에 문 후보 측은 이인영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현 통일부 장관)을 특사로 파견, 양측의 룰을 섞은 이른바 칵테일안인 ‘적합도+지지도+양자대결’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안 후보 측은 단일화 파기 하루 전인 11월 22일 밤 11시 20분 ‘가상대결 50%+지지도 50%’를 다시 제안했다. 문 후보 측이 이를 거부하자, 안 후보는 다음 날 8시 20분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의종군하겠다”며 전격 사퇴했다. 양측은 단일화 협상 내용을 놓고도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높은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야권 단일화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면서 ‘반이명박(MB)·반박근혜 지지층’이 한데 모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윤안 단일화도 비슷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은 1차 데드라인을 넘긴 직후에도 단일화 협상 과정을 놓고 뒤끝 작렬을 날리며 정면충돌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막후 협상의 폭로전을 전개, 야권 단일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재 양당 간 단일화 논의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일각에선 두 후보 간 톱다운 담판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양당 인사들은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회의론에 무게를 뒀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대표가 반단일화 전선을 주도하고 있다. 안 후보 측에선 부인 김미경 씨가 독자 완주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진척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했다.
여권은 반색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윤안 단일화 무산’에 쐐기를 박으면서 안 후보에게 통합 정부를 고리로 손짓했다. 이 후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인 우상호 의원은 “다시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핵심 전략통도 “단일화 변수가 없어지면, 남은 것은 부동층 잡기 싸움”이라며 “보수색이 짙어지는 윤 후보와는 달리, 실용주의파인 이 후보가 불리하지 않다”고 예상했다.
단일화 1차 데드라인은 투표용지 인쇄일(2월 28일) 전이다. 그 이후를 넘어가면 단일화 효과는 반감된다. 정치권 한 인사는 “기간이 늦거나 과정이 지지부진하면, 윤석열·안철수 후보 간 ‘형식적 단일화’는 가까스로 이뤄질 수 있어도 ‘아름다운 단일화’는 어렵다”며 “단일화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내용”이라고 했다. 윤안 갈라치기가 여권에 꽃놀이패인 것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윤안의 물리적 연대는 용인하더라도 ‘화학적 결합만은 막겠다’는 얘기다. 여당 한 의원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단일화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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