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 수능 볼 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리그 2년 차 울버햄튼 입단, 그라스호퍼 임대 활약
#고교생 선수 정상빈의 시작
정상빈의 프로생활 시작은 2020년이었다. 수원 유스팀 입단 이후 성장해나가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 여름, 준프로 계약을 체결한다. 매탄고등학교가 아닌 '수원 삼성'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준프로 제도는 K리그에서 2018년부터 도입됐다. 학생 신분 선수들이 프로 경기와 학교 경기 출전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각 구단들의 유스팀에 대한 투자, 선수들의 성장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상빈은 제도 도입 초기, 혜택을 본 선수다. 그러나 시즌이 한창이던 여름, 준프로 계약을 체결했지만 정상빈은 리그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오히려 재학 중이던 매탄고등학교 경기에 나서며 기회를 엿봤다.
성인 선수로서 첫선을 보인 무대는 2020년 연말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였다.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챔피언스리그 일정이 한 장소(카타르)에서 한꺼번에 치러졌고 정상빈은 수원의 카타르 원정 명단에 포함됐다. 동기생들이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 정상빈은 카타르로 출국해 중국 명문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경기에 출전했고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리그 뒤흔든 스무 살 선수
준프로로 데뷔 시즌을 치른 이듬해 정상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시즌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막 첫 네 경기를 거른 정상빈은 K리그 5라운드 데뷔전에 선발로 나섰다.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차지한 정상빈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주가를 올렸다.
물꼬를 튼 정상빈의 활약은 거침이 없었다. 전반기에만 13경기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어린 선수로 떠올랐다. 골을 기록한 상대가 포항, 서울, 울산, 전북 등 모두 강팀이었기에 골의 가치는 더욱 높았다.
정상빈은 리그 데뷔 시즌이었음에도 시즌 말미까지 부상으로 이탈한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20세부터 수원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K리그에는 22세 이하 선수를 일정 숫자 이상 의무적으로 출전시켜야 하는 독특한 룰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정상빈은 이와 관계없이 실력으로 주전을 꿰찼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원에는 22세 룰을 채울 수 있는 어린 자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정상빈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A대표 데뷔전서 데뷔골
리그에서 맹활약에 힘입어 정상빈은 2021년 5월 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다소 보수적인 선수 선발을 즐기는 벤투 감독의 성향상 의외의 선택이었다.
당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치르던 대표팀에 선발된 정상빈은 교체로 경기장을 밟으며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U-17 대표팀에서 경기를 치른 이후 연령별 대표 선발을 건너뛰고 곧장 A매치를 뛴 것이다.
비록 약체 스리랑카를 상대했지만 정상빈은 득점자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후반 27분 공격수 김신욱과 교체돼 경기에 투입된 그는 교체 4분 만에 골을 기록했다. 리그에서와 마찬가지로 A대표팀에서도 데뷔전 데뷔골이었다. 이는 고종수, 손흥민, 최순호, 이천수 등에 이은 역대 A매치 최연소 득점 8위(19세 69일) 기록이기도 했다.
K리그에서 연착륙, A매치 데뷔까지 마친 정상빈은 2022시즌을 앞둔 시점 해외 무대의 러브콜을 받았다. 황희찬이 활약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울버햄튼이다.
프로 경력 약 1년의 어린 선수에게 프리미어리그는 큰 무대였다. 잉글랜드는 선수들에게 취업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곳이기도 하다. 울버햄튼 구단은 정상빈의 영입 이후 스위스 명문 그라스호퍼로 임대를 추진했다. 약 11억 원의 이적료를 발생시킨 이적 이후 곧장 정상빈은 그라스호퍼 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울버햄튼이 원하는 시기엔 언제든 다시 팀에 복귀시킬 수 있는 조항이 삽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울버햄튼과 그라스호퍼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울버햄튼의 구단주인 중국 푸싱그룹 회장 곽광창의 아내 제니 왕이 그라스호퍼 구단주를 맡고 있다. 정상빈을 영입해 그라스호퍼가 유럽 무대에서 적응과 성장, 취업비자 발급을 돕고 이후 울버햄튼이 그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라스호퍼의 카와베 하야오라는 일본인 선수도 정상빈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속돼 있다.
이적과 임대 과정을 1월 말 마친 정상빈은 스위스 내 비자 관련 문제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 지난 2월 20일이야 첫 경기를 치렀다. 후반전을 5분 남겨둔 경기 막판 투입됐지만 정상빈은 활발한 모습으로 이후를 기대케 했다. 처음으로 공을 잡은 장면에서 스텝오버 개인기(헛다리짚기)를 펼치며 상대 압박을 벗겨내고 좋은 패스를 선보였다. 적극적으로 전방 압박을 펼치며 상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라스호퍼는 정상빈 투입 이후 득점에 성공하며 2-2 동점을 만들어 패배를 면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정상빈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기량은 현재 스위스에서 충분히 통할 선수라고 본다. 스피드가 탁월하고 기술도 좋다. 부지런한 플레이 스타일도 어느 지도자든 좋아할 스타일"이라며 "관건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기에 낯선 해외생활에 잘 녹아들어야 한다. 대범한 면이 있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또 "첫 경기부터 투입 이후 팀에서 골이 터졌다. 선수의 성공에 행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조짐이 좋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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