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강도 불펜 투구로 시속 153km 찍어…“쫄지 않고 던지면 좋은 결과 나올 거라 믿어”
영하 1도의 추위와 90%의 강도. 최 감독과 코치진은 빨라야 시속 140㎞ 후반 정도의 구속을 예상했다. 고개를 끄덕인 문동주는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첨단 장비 '랩소도'가 그 공의 스피드를 측정했다. 잠시 후 계기판에 찍힌 숫자는 153. 전력 투구가 아닌데도 벌써 시속 153㎞가 나왔다. 최 감독이 재차 "힘을 다 쓰지 않은 게 맞느냐"고 묻자 문동주는 "전력으로 던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불펜 주변이 술렁였다. "외국인 투수가 한 명 더 온 것 같다"는 최 감독의 농담에 웃음도 터졌다. 문동주는 그저 "구단에서 난로로 불펜을 덥혀 주신 덕"이라며 쑥스러워했다.
#90% 힘으로도 시속 153㎞
지난해 최고 시속 156㎞를 던진 고교 특급 투수 문동주는 한화 입단 전부터 여러 모로 화제에 올랐다. 광주 동성고 내야수 김도영과 진흥고 투수 문동주의 '1차 지명 라이벌전'은 이미 야구계에서 유명한 스토리다. 둘 다 연고지 구단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 후보였고, KIA는 고심 끝에 김도영을 뽑았다. 지난해 최하위 팀이라 전국구 1차 지명이 가능했던 한화는 주저 없이 문동주를 대전으로 데려갔다. 이후 소속 팀뿐 아니라 국가대표 팀에서도 많은 공을 던진 문동주의 어깨를 서산에서 '특별관리' 했다.
실제로 문동주는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체계적으로 프로 첫 시즌을 준비해왔다. 지난해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23세 이하(U-23) 야구월드컵 이후 공을 던지지 않고 어깨를 쉬게 했다. 지난 1월 처음으로 캐치볼 거리부터 서서히 늘리는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을 잡았다.
첫 불펜 피칭은 2월 11일에 시작했다. 비닐로 만든 서산 실내 불펜에서 50~60%의 힘을 사용해 공 30개를 던졌다. 약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한 것이다. 문동주의 행보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쏠린 건 이때부터다. 한화는 이날 불펜 피칭의 목적을 "마운드에서의 투구 적응, 투구 폼의 밸런스와 리듬감을 엿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원호 감독과 2군 코치진은 문동주의 피칭이 끝난 뒤 저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는 후문이다.
최 감독은 "투구 공백기 후 마운드에서의 첫 피칭이었는데, 난사 없이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다. 투수들에게는 50~60%의 저강도 피칭이 더 까다롭기 마련인데 잘 소화해줬다"며 "밸런스, 리듬감, 손의 감각, 신체조절 능력 모두 '특급'이다. 신체 조건과 유연성이 모두 좋고, 성실함까지 갖췄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정진 2군 투수코치도 "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각보다 더 좋은 피칭을 해줬다. 코치들의 의견은 모두 같다. 비시즌부터 계속 봐왔는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고 편안해 보인다"며 "잘 배운 것도 있고, 타고난 부분도 큰 것 같다. 프로야구에서 최고가 되는 선수는 대부분 재능이 뛰어나기 마련인데, 문동주는 그 부분도 남다르다"고 했다.
박 코치는 또 "입단 때부터 주목을 받은 신인 선수가 1군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면 의기소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동주는 내색도 안 한다. 현재 상황에서 코치진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잘 따라주고 있다"며 "지금 몸 상태가 괜찮더라도 페이스를 더 올리지 말고 늦추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동주는 첫 피칭 후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 떨릴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되니 그렇게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무리하지 말고 내 공만 던지고 오자'라는 마음으로 감각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며 "던지다 보니 좋을 때의 피칭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팔이나 공 던지는 적응 훈련을 열심히 한 보람을 느꼈다"는 소감을 내놨다.
문동주는 이후에도 투구 수와 힘의 강도를 서서히 올리면서 다섯 차례 더 불펜 피칭으로 몸 상태와 구위를 점검했다. 이어 24일 진행된 90% 강도의 첫 불펜 피칭에서 시속 150㎞를 넘겨 기대감을 높인 것이다. 이전까지 진행된 여섯 차례 불펜 피칭에서는 따로 구속을 측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힘의 강도가 100%에 가깝게 올라간 점을 고려해 랩소도 장비로 스피드를 쟀다. 장소도 온실 불펜을 떠나 서산구장 1루 쪽 야외 불펜으로 옮겼다. 직구(20구) 외에 변화구 10개(커브 5개, 체인지업 3개, 스플리터 2개)도 처음으로 던졌다. 여러 모로 '진짜 문동주'를 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최 감독은 이날 문동주의 피칭이 끝난 후 칭찬의 강도도 함께 높였다. "힘을 90% 이상으로 올려 피칭한 첫날이었는데도 직구 최고 시속 153㎞, 평균 시속 150㎞가 나왔다. 체인지업 구속도 시속 140㎞를 웃돌았고, 변화구 중에 커브가 정말 좋았다"며 "전력으로 던진 건가 싶어 선수에게 체크해 봤는데, '정말 아니다'라고 하더라. 구속이 빠른데 제구도 좋고, 몸의 유연성이 남다르다. 진짜 '특급'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손색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동주는 투구 수를 45개, 60개로 각각 늘리면서 90% 강도의 불펜 피칭을 2회 더 진행한 뒤 100%의 힘으로 30구, 45구, 60구를 던지는 불펜 피칭 세 차례를 더 거치게 된다. 이후 2군 경기에 나서 실전 점검을 한 뒤 1군 시범경기 막바지에 첫선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 감독은 "90% 강도 피칭 때는 변화구를 추가했다면, 100% 전력 피칭 때는 퀵 모션(슬라이드 스텝)을 확인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불펜 피칭과 실전을 언제, 어디서 하게 될지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님과 상의한 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동주는 "정확히 몇 퍼센트의 강도였는지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느낌으로는 90% 이상의 세기로 던진 것 같다. 오랜만이라서 잘 던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몸을 낮추면서 "이번엔 '실전과 비슷하게 던지자'는 마음가짐으로 불펜에 들어갔다. 변화구도 던졌지만, 직구에 좀 더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문동주는 또 "처음으로 실전과 비슷하게 던졌는데, 몸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잘 준비한 게 헛되지 않도록 잘하고 싶다"며 "얼마 전 수베로 감독님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대전에서 던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확실히 동기 부여가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투수 전환 2년 만에 최고 유망주로
문동주가 올겨울 최고의 화제를 모으는 '특급 신인'이라면, 그를 향한 한화 구단과 팬들의 기대도 '특급'이다. 문동주는 올해 신인 선수 중 가장 많은 계약금 5억 원을 받았다. 한화는 고심 끝에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 '1'을 문동주의 유니폼 뒤에 새겼다. 팬들은 벌써 2006년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최고 신인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투수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스포트라이트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만큼 나를 좋게 보시고 응원하는 의미의 관심이지 않나. 오히려 더 힘이 된다"며 밝게 웃었다.
문동주는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광주는 야구 인기가 높은 도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워낙 좋아했다. 야구장에 많이 다니고, 동네 야구도 했다. 그러다 점점 선수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남다른 재능까지 발견했다. 처음엔 내야수, 그중에서도 3루수를 주로 맡았다.
중 3 때 처음으로 고민이 생겼다. 수비가 두려워졌다. 그는 "3루 수비를 나가면 공을 한 개도 못 처리했다. 느린 번트 타구도 못 잡을 정도로 갑자기 헤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 자책도 하고 오기도 생겼다"고 했다. 그래도 야구가 너무 좋았다. "야구를 못해서 힘들긴 했지만, '힘드니까 그만두자'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고교 진학 후 키가 12㎝ 자랐다. 그게 터닝 포인트였다. 1학년 때 인스트럭터로 만난 홍우태 현 울산공고 감독이 "넌 타자보다 투수에 재능이 더 많은 것 같다. 투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때마침 주변에서 '투구 폼이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하던 시점이다. 이전까지는 "힘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종종 나와 투수 훈련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야수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키가 크고 힘이 좋아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문동주는 망설임 없이 배트를 내려놓고 공을 잡았다.
롤 모델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였다. 한때 투타 겸업을 꿈꾸기도 했던 문동주는 잔동작이 많지 않은 오타니의 투구 폼을 오랫동안 따라했다. "오타니는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 아닌가. 나 자신도 군더더기 없는 폼으로 던지는 걸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따라해 보곤 했다. 항상 그런 폼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프로 지도자들도 감탄하는 문동주의 깔끔한 투구 폼이 탄생한 계기다.
운동 선수(해머 던지기) DNA를 물려 준 아버지도 아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아빠가 주말에 광주 집으로 오실 때마다, 집 앞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캐치볼을 했다. (공을) 던지는 원리도 조금씩 알려주셨다"며 "아빠니까 내가 부담 없이 편하게 흡수할 건 흡수하고, 거를 건 거르면서 배울 수 있었다. 아빠는 무거운 걸 멀리 던지기 위해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종목을 하셨는데, 그런 면에서 내가 도움을 받은 것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투수가 된 문동주는 2년 만에 프로야구 구단들의 1차 지명 후보에 오르는 고교야구 최고 투수로 올라섰다. "야구 실력뿐 아니라 인성이나 성실함도 남다르다"는 게 그를 지켜본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KIA의 선택을 받은 김도영과 데뷔 전부터 필연적인 라이벌 관계를 이루게 됐지만, 1차 지명 발표 직후 김도영에게 먼저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문동주는 "발표 후 10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곧 '오히려 내게 좋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면서 "만약 내가 뽑혔다면, 도영이도 먼저 축하해줬을 거다. 서로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라이벌도 '김도영' 한 명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올해 신인 지명을 받은 선수가 모두 내 라이벌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문동주의 최대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야구'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쭉 그랬다. 고교 시절엔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잠시 볼보이 경험도 했다. 그때 강백호(KT 위즈)의 배팅을 눈앞에서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까지 보던 배팅들과는 달랐다. 생전 처음 본 타구였다"며 "프로 무대에서 한 번쯤 맞붙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은 '야구' 중에서도 '다치지 않는 것'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떻게든 야구를 잘하고 싶은데, 다치면 아예 야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희망과 목표를 키워 온 그는 지금 그 꿈의 문턱에 서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다. 문동주는 "중장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는 스타일이다. 하루하루 그날의 훈련, 그날의 경기에 따라 목표를 세운다"며 "오늘 내가 캐치볼을 한다면, '지난 번엔 공이 많이 빠졌으니 오늘은 정확하게만 던져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오늘 하는 야구에 몰입해서 그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는 게 내 방식"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런 문동주도 홈 구장 마운드에 선 자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하다. 그는 "최대한 빨리 대전 마운드에 올라가는 게 내 목표다. 그곳에서 던져보면 프로 생활의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또 "처음으로 프로 마운드에 서더라도 긴장하지 않고, 원래 하던대로 공격적이고 나다운 투구를 하고 싶다. '쫄지 않고' 내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고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한화 구단은 문동주를 바라보며 원대한 꿈을 꾼다. 훗날 대전구장 외야에 있는 영구결번 리스트에 '1'을 걸어놓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오렌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배번이 '1번이었다. 그런데 프로에서 같은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시작하게 돼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며 "1번이 에이스의 상징이라는 걸 알고 있다. 1번이라는 숫자의 무게에 맞는 피칭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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