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파일러’ 위해 소액 신용 공여, 신용점수 관리엔 불리 지적…“자체 신용평가모델 준비 중”
3월 모바일 금융결제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월 30만 원 한도 내에서 이용자에게 신용 공여를 해주는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출시한다. NHN 페이코도 연내 후불결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카카오페이는 월 15만 원 한도 내에서 버스·지하철 탑승 시 사용하는 후불 교통카드 서비스의 테스트를 끝내고 3월에 정식 출시한다.
네이버 파이낸셜은 지난해 4월부터 이미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파이낸셜은 네이버페이 가입을 1년 이상 유지한 만 19세 이상 사용자 중 자체 심사를 통과한 일부 ‘우량고객’에게 월 30만 원의 후불결제 한도를 부여하고 있다. 쿠팡은 2020년부터 자회사 쿠팡페이를 통해 직매입한 물건에 한해 외상판매의 개념으로 후불결제와 비슷한 ‘나중결제’ 서비스를 선보였다.
앞서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빅테크 업체들의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금융위와의 공감대 형성 없이 사업을 시작한 쿠팡을 제외하고 나머지 빅테크 업체들은 규제 샌드박스의 혜택을 입어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호주 등 해외에서는 이미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BNPL(선구매 후결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해외와 달리 국내 빅테크 기업들의 구체적인 후불결제 서비스 타깃은 금융이력이 부족해 신용카드 한도가 낮은 사회초년생들이나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주부 등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후불결제 서비스를 통해 장기적으로 고객들의 결제·상환 이력을 추적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가 해당 결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누가 상환을 얼마나 잘하는지 기초적인 데이터가 축적돼 신용이 세밀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후불결제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구축한 빅테크 기업들의 서비스가 여신사업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토스는 개인·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자체 신용평가사 ‘토스신용데이터’를 연내 출범할 예정이다. 페이코의 경우 3월에 자체 신용평가모형인 ‘피스코어(P-Score)’를 출시하고 이 모형을 바탕으로 기존 신용평가를 보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빅테크 기업의 후불결제 서비스는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단점도 있다. 이용자가 후불결제 서비스의 결제대금을 꼬박꼬박 갚아도 실제 신용점수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개인신용점수를 산정하는 기관은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평가정보(NICE) 등의 개인신용평가사(CB)다. 이 두 회사에서 평가하는 신용점수가 낮으면 같은 돈을 빌리더라도 신용점수가 높은 사람에 비해 더 높은 대출 이자를 감당하거나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 어렵다. 금융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들이 체크카드를 꾸준히 사용해 신용을 축적하거나 주기적으로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상환해 신용점수를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CB사 관계자는 “후불결제 업체들의 상환정보가 CB사에 제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해당 정보를 반영해 개인의 신용점수를 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모델링해서 신용평가회사에 공유할 방침”이라면서도 “단기간에 시스템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아직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는 업체들의 경우 말을 아끼고 있다. 3월에 후불결제 서비스를 출시하는 토스 관계자는 “아직 서비스가 나온 시점이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 CB사와 정보를 공유하고 연계할지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후불결제 서비스의 연내 출시를 준비하는 페이코 관계자 또한 “후불결제를 이용하고 대금을 상환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반영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팡의 나중결제는 신용 공여 사업과 무관한 외상 결제 개념이므로 CB사의 신용 점수 산정과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다.
결제대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신용점수를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가장 먼저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한 ‘네이버 쇼핑&페이’ 고객센터에 따르면 네이버의 후불결제 서비스 납부금액을 연체할 경우 ‘납부일로부터 5영업일 이상 연체 시에는 CB사에 연체정보가 제공되어 별도 관리될 수 있으며, CB사에 연체정보가 등록된 후에는 연체금액을 납부하여도 일정 기간 연체 기록이 보관’된다. 후불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취업준비생 A 씨는 “나중에라도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점수가 가장 중요한데 지금의 후불결제 서비스를 잘못 이용할 경우 마이너스만 될까 봐 꺼려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빅테크 업체들의 후불결제 서비스보다 카드사의 체크소액신용서비스가 더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카드사는 체크카드 이용실적이 있는 고객들을 자체 심사해 월 한도 20만~30만 원의 소액 신용 기능을 제공한다. 큰 틀에서 빅테크 업체들의 후불결제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이용자들이 신용 공여를 받아 꾸준히 잘 갚으면 CB사에서 평가하는 신용점수가 올라간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액이지만 신용 기능이 부과된 카드를 이용해 결제대금을 꼬박꼬박 갚는 구조라는 점에서 고객들이 금융이력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사회초년생인 B 씨는 “빅테크 업체들끼리 내 상환이력을 보고 신용평가 모델을 따로 만들어서 활용하는데 정작 신용점수는 오르지 않는다면 영원히 씬파일러로 살란 말처럼 느껴진다”며 “빅테크 업체들이 상환이력이 양호한 소비자들에게 따로 메리트를 주지 않는다면 기존 금융권에서 제공하는 체크소액서비스가 압도적으로 매력적이다”고 지적했다.
빅테크 업체들이 자체 신용평가 모델도 현재로서는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의 토스 관계자는“기존 신용평가사와 어떻게 다른지 말씀드릴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금융당국에 법인 예비허가 신청서 제출할 쯤에야 드릴 말씀이 생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앞서의 페이코 관계자 역시 3월에 나오는 피스코어를 두고 “아직 서비스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축적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추후에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CB사 관계자는 “이미 CB사들이 오랜 기간 전 금융권과 탄탄한 관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빅테크 업체들이 준비하는 새 신용평가모델들이 입지를 굳히려면 반드시 상당히 유효하고 차별화된 데이터를 활용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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