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지난해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집권후반기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그 후 정부는 이익공유제, 국민연금의 대기업경영참여, MRO 개선, 일감몰아주기 과세 등 일련의 정책대안들을 쏟아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에 의해 제기된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민간 사이에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열띤 찬반논쟁이 있었고, 어느 정도 오해는 풀린 것처럼 보인다. 이익공유제에 이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대기업 오너들의 전횡을 견제하는 방안으로 국민연금의 대기업 경영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서 나온 것이 MRO 대책이다. 대기업들이 비품이나 집기 등 사소한 물품의 납품권을 친인척들에게 주는 대표적인 부당내부거래가 MRO 사업이다. 이번엔 임태희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 “MRO는 합법을 가장한 지하경제”라고 했다. 정부가 기업을 향해서 할 수 있는 말로서는 매우 심한 말이다. 지하경제의 대명사는 술 마약 도박 매춘 등과 관련된 산업을 기반으로 한 마피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있고 나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SK의 최태원 회장이 MRO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MRO 사업규모가 제일 큰 LG그룹을 비롯해 여타 재벌기업들도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나온 것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이다. 일감몰아주기는 대기업들의 대표적인 부당내부거래로 MRO도 그것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것만 바로잡혀도 공정사회는 가까워질 수 있다. 현재 대기업들은 IMF사태 전보다 더 많은 수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10대 기업의 경제력 비중도 그 때보다 더 커졌다. 새로 생긴 계열사는 대부분 모기업의 일감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 그중에는 기업의 대물림용으로 유효 적절히 활용된 회사도 많다.
그러나 계열관계를 통한 내부거래의 편리함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국가경제로는 과잉중복 투자에 따른 자원배분의 비효율이고, 산업의 전문화를 저해해 중소전문기업들을 어렵게 한다. 개별 기업에게는 동종교배에 따른 열성화, 즉 경쟁력 약화가 뒤따르고,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재벌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이다.
정부가 투자를 권장하는 마당이라 기업의 계열사 늘리기는 더 쉬워졌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이 계열사를 늘릴 때 중소기업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이익임을 아는 것이다. 콩을 수입하는 재벌이 두부장사와 콩나물 장사까지 해서는 안 되는 이치다.
정부가 이번엔 ‘공생발전’을 명분으로 어떤 대안들을 쏟아낼지 모르겠으나, 공정과 공생의 지향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공정사회용으로 내놓은 시책 중 소리만 요란했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된 것이 없다. ‘행차 뒤의 나팔’ 격이지만 ‘일감몰아주기 과세’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불쑥불쑥 찔러보기 식의 정책은 국민의 불신만 키운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