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
기자가 한 결혼정보업체 사이트를 통해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비밀파티에 신청했더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회사 커플매니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비밀파티’ 신청 마감 기한이 7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벌써 끝났다는 것이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력 7년차 베테랑 커플매니저 박 아무개 씨는 “영세업체의 경우 없는 파티를 마치 있는 것처럼 소개해서 여성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연매출 200억~300억 원 규모의 비교적 큰 결혼전문업체도 매달 파티를 개최하기 쉽지 않은데, 소규모 업체가 일반파티도 아니고 노블레스급(상류층) 파티를 자주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씨는 이어 “상류층들만 참석하는 비밀파티가 분명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고급 파티, 그것도 비밀파티의 정보가 오픈돼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30대 미혼여성 증가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결혼정보업체의 치열한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노블레스와 결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상류층 비공개 파티에 초대합니다’ 등과 같은 그럴듯한 문구를 내세워 30대 여성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역시 ‘상류층’이라는 광고에 솔깃해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30대 초반 김 아무개 씨의 사례다. ‘31세, 서울소재 사립대학 졸업, 국내 유명 대기업 사원, 연봉 3000만 원, 서울 은평구 거주, 부모 자산 부동산 포함 4억….’ 김 씨의 프로필이다. 김 씨의 목표는 업체 도움을 받아 전문직에 종사하는 상류층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 씨는 “가입비 450만 원을 내면 준 상류층 남성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350만 원만 더 내면 상류층 남성을 만나게 도와주겠다”는 한 커플매니저 말에 평소 부모님 효도여행을 보내드리려고 모아뒀던 1000만 원 상당의 적금을 깼다. 결혼을 잘하는 게 곧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보다 가입비용이 많았지만 1년 동안 횟수에 상관없이 상류층 남성을 소개시켜준다는 조건에 김 씨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고 털어놨다.
업계에서 ‘준 상류층’이란 부모 재산이 10억~20억 정도에 본인은 전문직인 사람들을 말한다. ‘상류층’의 경우 부모 자산이 약 200억 이상, 본인 학벌은 SKY급(서울·고·연대)에 키 175㎝ 이상의 전문직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최근 김 씨처럼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상류층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20대 후반~30대 초중반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고객으로 가장해 직접 몇몇 상류층 전문 결혼정보업체에 문의해보니 “우리는 언론에 알려진 바와 달리 등급표가 없다. 적정 기준 조건이 되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고 가입비에 따라 상류층 남성도 소개받을 수 있다” “우리 업체는 성혼율 국내 1위다. 가입만 하면 결혼까지 책임지겠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고위층 자녀들이 가입돼 있다. 여긴 상류층 전문이다. 하지만 일정 가입비를 낸다면 고객님도 상류층을 만날 수 있다” 등의 ‘달콤한’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말처럼 30대 초반의 평범한 여성이 상류층과 결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간단해요. 결혼은 조건 교환입니다. 상류층은 상류층하고만 만나죠. 신데렐라는 없어진 지 오랩니다. 대부분의 상류층 비밀파티도 일반여성을 가입시켜서 돈 받아내려는 미끼상품일 뿐, 운이 좋아 그 파티에 참여한다고 해도 진짜 상류층은 거기에 없죠. 상류층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자리에 얼굴 팔리면서 일반 여성을 만나겠습니까.”
최근까지 상류층 전문 결혼업체에 매니저로 몸담았던 이 아무개 씨는 “신데렐라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일반여성 회원의 불만 제기를 방지하지 위해 가끔 상류층 남성회원에게 ‘일반여성을 만나 달라. 횟수엔 포함 안 시킬 테니 한 명만 어떻게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또한 “결혼정보업체는 남녀회원 비율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회원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도 덧붙였다.
이 씨에 따르면 중산층 정도만 되면 가입 가능한 일반등급의 경우 남녀회원비율은 3.5(남) 대 6.5(여)정도다. 그러나 노블레스급으로 올라가면 남녀비율 차는 2 대 8 수준으로 더 벌어진다. 이 씨는 “이런 구조에서 여성회원들이 좋은 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영세업체의 경우 전체회원 수가 1000여 명도 안 되는데 그중 700여 명이 여성회원이다”고 말했다.
비율상 남성회원 1명이 여성회원 7~8명을 만나야 되는 구조이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한 커플매니저는 “어떤 상류층 남성 회원이 두 번째로 소개받은 여성회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남성회원이 되도록이면 많은 수의 여성회원을 만나줘야 장사가 되기 때문에 ‘더 예쁜 분이 있다. 다른 여성을 한 번 더 만나보라’며 은근슬쩍 등 떠민 적도 많다”고 말했다.
기자가 ‘그래도 횟수에 상관없이 결혼이 성사될 때까지 남자회원을 소개시켜준다는 업체도 있었다’고 하자 그는 “될 때까지 해준다는 말은 사기라는 건 업계 관계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전체회원 수가 2만 명이 넘는 업체에서도 성혼율이 20%밖에 안 되는데 회원수 1000여 명밖에 안 되는 영세업체에서 무슨 수로 일반 여성 회원에게 상류층 남성을 끊임없이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상류층들은 어떤 식으로 만남이 이뤄지고 ‘비밀파티’에 참석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재산이 100억대 이상이라는 상류층들은 결혼정보업체에서도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구체적으로는 법원장, 검사장, 1급 공무원, 유명대학병원장, 유명학교 법인장, 명문그룹 오너일가 자제 등으로 구성된다.
“사실 상류층 자제들은 결혼정보업체에 안 오죠. 자기들끼리 알아서 만남을 해결하거든요. 가끔 문의가 오면 저희 쪽에서 특별 출장 서비스를 가드립니다.” 상류층을 맡고 있는 한 매니저에 의하면 이들이 결혼정보업체에 원하는 것은 결혼 성사과정을 조용히 처리하는 ‘비밀 보장’이다. 때문에 상류층 결혼은 출장서비스를 통해 대상자 선별부터 비밀만남까지 모든 과정이 쥐 죽은 듯이 진행된다.
상류층 파티를 진행해본 적이 있다는 매니저 김 아무개 씨는 “성혼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게 업체와 ‘마담뚜’의 차이지만 상류층 결혼의 경우 업체라도 성혼비를 1000만~1억 원 정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류층 고객에 관해선 최상의 서비스를 하려고 한다”며 “때문에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더라도 일반 여성을 소개해주진 않는다. 한 마디로 ‘현대판 신데렐라’는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여성은 500만원, 남성은 공짜?
최근 2년 사이 결혼정보시장이 부쩍 커지면서 1000여 개의 결혼정보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는 결혼정보업체에 관심을 갖고 가입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업체 특유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회원규모, 가입비 등 객관적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혼란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일요신문>이 가입비 등 국내 주요 결혼정보업체에서 지정한 가입 시스템에 대해 알아봤다. 국내 한 유명 결혼전문업체의 기본적인 가입비는 250만 원선이다. 물론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비용이다. 국내 10대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일반남성의 경우 이보다 50만 원 저렴한 약 180만 원의 가입비만 내면 된다.
노블레스 등급일수록 가격은 백 단위로 더 뛴다. 여기서부터 남녀가 내는 비용 또한 대폭 달라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 남성은 약 38만~40만 원의 가입비만 내면 된다. 하지만 전문직 남성을 만나고자하는 여성은 500만~880만 원의 가입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전문직 남성에게 가입비를 받는 곳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른 영세업체에선 남성회원으로부터 가입비를 받는 곳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재밌는 사실은 아무리 재력이 좋고 전문직이라도 키160㎝ 이하거나 대머리인 남성은 가입이 안 된다고 한다. 여성회원들이 만남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40만 원대의 가입비마저도 단체 가입할 경우 대폭 할인되기 때문에 위의 ‘신체 기준’을 통과한 전문직 남성은 저렴한 비용으로 소위 ‘퀄리티’가 좋은 여성을 다수 만날 수 있다.
국내 상류층 결혼전문업체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거나 남성회원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등급에 따라 약 500만 원에서 900만 원대의 가입비를 내야 하는 여성과는 달리 전문직 남성은 대부분 무료 가입이 가능하다. 상류층이란 타이틀을 걸고 운영하는 업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남성의 대부분이 전문직이거나 집안 재력이 되는 이들이다. 시중에 이런 조건을 갖고 업체에 가입을 하려는 남성들이 워낙에 희귀하기 때문에 특별대접을 한다는 것이다.
가입비만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여성은 고액의 가입비를 내도 1년 동안만 남성을 소개받을 수 있지만 남성은 기간제한 없이 결혼이 성사될 때까지 소개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상류층 전문으로 유명한 한 매니저는 “우리 업체는 남성회원들에게도 100만 원의 회비를 받는다. 물론 무료가입도 가능하지만 100만 원만 더 내면 일반여성이 아니라 1000만 원 상당의 성혼 사례비를 책임질 수 있는 알짜배기 상류층 여성들만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깝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