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오일쇼크 이상의 악성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분산과 증산에도 시간 걸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120달러는 물론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19 경기부양으로 인한 원유 수요는 급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원유소비량이 하루 평균 1억 60만 배럴로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며 탄소배출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최근 수년간 원유 생산시설의 증설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미 수요 우위인 상황에서 세계 3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제재로 국제 원유시장에서 배제된다면 공급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JP모간은 150달러가 되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4.1%에서 0.9%까지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율은 3%에서 7.2%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2차 오일쇼크가 몰고 왔던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악성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오일쇼크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된 것은 곡물 부족과 광물 전쟁까지 겹치면서다. 세계적 밀 산지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밀 값 급등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중남미 지역에서는 가뭄으로 콩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전기차와 전자기기 생산에 필요한 광물 경쟁도 치열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 광물 생산지다.
이밖에도 중남미와 중국 등이 보유한 희귀 광물을 무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 격차와 미국의 중국 갈등이 낳은 결과물이다. 식량에 공산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 가격까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건비 상승도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은 원가를 높인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던 시대도 코로나19로 막을 내리고 있다. 원가 상승은 가격으로 이어져 소비자에 전가된다. 부담이 커진 가계는 기업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이는 다시 원가를 높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리 상승은 민간의 이자부담뿐 아니라 국채 발행금리를 높여 정부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신흥국에서 국채 금리가 높아지면 대외지급부담이 커져 다시 환율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인플레이션 완화의 관건은 증산과 분산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숨통을 중국이 뚫어주고, 러시아의 빈자리는 미국의 셰일가스와 세계 4위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란이 메워주는 방법이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달러화로만 결제되는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다. 이미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에 자국산 천연가스를 대규모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경제 제재로 이란의 에너지 수출을 막았던 미국은 다시 핵 협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기존 가스관으로는 유럽 수요를 돌리기 부족하다. 양국 간 추가 가스관 건설이 진행 중이지만 완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란의 석유 생산시설은 오랜 경제 제재로 낡은 상태다. 이를 고치고, 생산능력을 높이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도 셰일가스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유럽 시장을 감당하려면 대규모 개발이 필요한데, 이는 ‘탄소배출 제로(0)’를 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 배치된다. 카타르 호주 등에서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나르려고 해도 LNG선이 대규모로 필요하다. 건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통화정책 변수도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긴축에 돌입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경제제재로 서방의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긴축 강도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가보다는 경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실제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 등 주요국 국채 금리는 전쟁 발발 후 뚜렷한 하락세다. 이미 3월 미국 연준의 공개시장회의(FOMC)에서 50bp 인상 기대가 소멸됐다. 올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횟수도 6~7회에서 4~5회로 조정됐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은 피하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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