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결심을 하셨습니까?”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하고 놀랐다. 70대 노 의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으실지 정하셨느냐 말입니다. 저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같은 의사라고 해서 안철수 후보를 찍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두 당 중의 하나를 찍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선택을 강요당하는 두 상품은 마음에 안 들고 똑똑한 사람은 찍어도 안 될 것 같고 해서 저도 결정을 못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두 정당에서 미리미리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았으니 이런 사태가 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두 정당을 놓고 오엑스문제를 풀듯이 투표를 해야 하는 게 현실 아닌가요?”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가진 중도층의 대화 내용이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 측근이던 원로 정치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하루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만났더니 운동권 출신들이 찾아왔는데 이 친구들이 정치가 아니라 거래를 하려는 냄새를 풍긴다고 얘기하는 거야. 그래서 그런지 김대중 대통령은 그들을 쓰지 않았어. 그들이 권력 주변에 포진한 건 노무현 대통령 때야. 당이 건전해지려면 새롭고 참신한 인물로 수혈을 해야 하는데 대통령 주변에 진을 친 운동권 출신 친구들이 아주 배타적인 거야. 똑똑해 보이면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민주당에 인물이 없게 된 거지.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보수의 늙다리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느라고 사람을 제대로 뽑아 들이지 않았고 말이야. 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가 됐지.”
지금의 선거판을 보면 넷플릭스의 인기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두 패로 나뉜 사람들이 허공에서 목숨 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진 쪽은 깊은 바닥으로 추락해 죽는다. 그와 비슷하게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당파성을 가진 국민들이 둘로 나뉘어 싸움을 하는 느낌이다.
자기편이 당선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모양이다. 정말 그럴까. 국가라는 거대한 배가 임시직 공무원인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침몰당할 만큼 허약한 것일까. 아닐 것 같다. 나 같은 노년의 중도층은 무심한 관객의 입장이다. 후보 진영들의 공포 마케팅을 믿지 않는다. 누구를 찍는 게 나라를 위해서 좋을까라는 생각이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대통령 후보들은 돌을 떡이라도 만들어서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한다.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듯 국가도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국가의 본질은 그 국민의 정신이다. 좋은 정신만 있으면 그 나라는 쇠망하지 않는다. 나라에 어두움이 깔릴 때 정신적인 빛이 필요하다.
대통령 후보 중 누가 그런 빛이 될 수 있을까. 이재명 후보의 사진을 보면 자기는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영리한 사람 같다. 그러나 그 영리함이 먼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후보의 얼굴은 정권교체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 정권교체가 되면 그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것일까. 그런 게 있었을까 궁금하다.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속에서 반대로 대통령 후보들의 긍정적인 면을 알아보았다.
윤석열 후보가 상관으로 모셨던 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윤 후보는 리더십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가 공부를 못했다면 아마 조폭의 두목을 했을 거라고 표현했다. 고시가 바로 앞인데도 기차를 타고 지방에 사는 후배의 결혼식에 가는 품성이라고 했다. 운도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싸우는 짧은 기간 동안 시대의 바람이 그의 연을 공중 높이 날아오르게 했다.
다음은 이재명 후보가 사법연수원생 시절 그의 지도판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이재명에게 법관이 되라고 덕담을 했더니 정치로 나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재명은 오랫동안 시장과 도지사를 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권력의지의 화신 같다. 그를 공중에 띄운 날개는 이카로스의 그것처럼 허약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제 운은 누구의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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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