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 반군이 8월 24일(현지시각)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 딸 아이샤의 집에서 그녀의 얼굴을 형상화한 황금 인어 소파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
독재자들에게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가운데 하나라면 아마도 ‘지하벙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초호화 지하벙커를 건설했던 것으로 유명한 후세인의 경우, 대통령궁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비밀 거처를 마련했었다.
‘벙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호화 시설을 자랑했던 후세인의 벙커는 바그다드 지하 곳곳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으며, 무려 20개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80년대 초반 건설됐던 것으로 알려진 벙커는 ‘궁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1800㎡)와 호화 시설로 화제가 됐었다.
리비아 정세에 밝은 전문가들은 카다피의 지하벙커 역시 이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터널과 벙커가 트리폴리 시내 지하 곳곳에 미로처럼 얽혀 있으며, 그 길이만 수백 수천 마일에 달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또한 모두 방탄시설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으며, 위성으로 탐지되지 않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다.
구불구불한 터널들은 트리폴리를 비롯해 시외곽에 있는 카다피의 여러 저택이나 주요 건물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덕분에 카다피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도 비밀리에 트리폴리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실제 지난 5월, 트리폴리의 릭소스 호텔에 머물고 있던 몇몇 기자들은 당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카다피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듯 호텔의 한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분명히 호텔 정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그의 등장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 당시 카다피가 지하터널을 통해 이동했었던 게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기자들은 이번에도 역시 그가 지하터널을 이용해서 트리폴리를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나토 공습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바로 이 벙커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지난 1984년 건설했던 이 지하터널과 벙커의 용도는 당시 표면상으로는 ‘관개수로’였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유럽과 우리나라의 기술과 노동력을 사용해서 건설됐다. 총 150억 달러(약 16조 원)가 소요된 대규모 공사였던 이 사업의 목적은 사하라 암반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트리폴리와 벵가지 등 대도시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수로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관개수로’는 눈가림이며, 사실은 카다피의 은닉처이자 피난처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 측은 오래전부터 이 사업을 의심해왔으며, 분명히 이 터널이 군사 및 개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추측해왔었다.
가령 지하 182m 정도에 건설된 몇몇 터널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넓으며, 트리폴리 외곽에 위치한 공항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의 비밀 벙커와 관련해서 브라질의 유명 성형외과 전문의인 리아시르 히베이로는 “실제 카다피의 벙커에 초대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성형수술을 집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 1995년 카다피의 요청으로 리비아를 방문해 수술을 했었다”고 말하면서 당시 카다피의 지하벙커에서 그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 카다피가 여성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는 모습(왼쪽)과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한 모습. |
한편 카다피의 성형수술과 관련해서 히베이로 박사는 “카다피는 리비아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노인으로 여기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성형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 당시 카다피는 복부의 지방을 얼굴에 이식해서 주름살을 제거하는 수술과 머리카락 이식 수술을 받았다.
히베이로 박사가 일반적인 주름살 제거 수술을 권했지만 카다피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금방 알아챈다”며 거부했으며, 심지어 수술 시에도 전신마취보다는 국소마취를 요청했다. 이유인즉슨 혹시 자신이 잠든 사이에 반란이라도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수술 중 배가 고프다면서 잠시 쉬었다 할 것을 청했던 그는 천연덕스럽게 햄버거를 먹으면서 요기를 하기도 했다.
수술이 끝난 후 결과에 매우 만족해했던 그는 히베이로 박사에게 미국 달러와 스위스 프랑이 가득 든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얼마를 받았냐는 질문에 히베이로 박사는 “액수를 밝힐 순 없지만 당시 내가 브라질에서 받던 수술비용보다는 많은 액수였다”고 말했다.
또한 히베이로 박사는 “당시 카다피의 나이는 53세였지만 수술 후에는 45세처럼 보였다”고 말하면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복부 지방을 주입한 까닭에 효과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의 카다피의 모습에 대해 그는 “매우 좋지 않아 보인다. 피부는 퉁퉁 부어 있고 늘어졌으며,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
카다피가 자국의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고 굳이 멀리 브라질에서 전문의를 초청해서 수술을 받은 까닭은 그의 의심 많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웬만한 전문의들의 실력은 아예 믿지 못했으며, 행여 수술침대 위에서 죽진 않을까 몹시 두려워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히베이로 박사는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기 때문에 카다피에게 낙점(?)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그간 카다피가 보여준 괴기스런 행동은 수없이 많았다. 여자 경호원 부대를 거느리고 다닌다거나 미모의 간호사들을 지척에 두고 보살핌을 받는다거나 해외 순방 때마다 호텔에 묵지 않고 늘 베두인 텐트를 치고 묵는다거나 하는 습관들이 그것이다.
2년 동안 카다피 곁을 지켰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개인 간호사인 옥사나 발린스카(24)에 따르면 “그는 우리 간호사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카다피를 러시아어로 ‘작은 아빠’라는 뜻인 ‘파픽’이라고 불렀으며, 모든 간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카다피의 정부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카다피의 애인은 아니었다. 그를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때는 단지 혈압을 잴 때뿐이었다”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또한 그녀는 카다피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에 불쾌해하면서 “그는 친한 친구인 베를루스코니 총리보다는 훨씬 사려 깊고 신중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발린스카는 카다피의 곁에서 그를 돌보면서 몇몇 기이한 습관들을 눈치챘다고도 말했다. 가령 악수 습관이 그랬다. 카다피는 새로 직원을 뽑거나 처음 사람을 만날 때면 꼭 악수를 청하곤 했는데 여기에는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악수를 통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간호사로 발탁됐던 그녀 역시 당시 카다피와 악수를 하고, 눈을 마주친 것이 면접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발린스카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다피는 자신의 측근을 뽑을 때면 늘 그런 식이었다. 악수 한 번으로 모든 걸 결정했다. 그는 대단한 심리학자였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카다피가 인심이 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월급 외에도 항상 현금 보너스를 두둑이 지급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24시간 대기를 해야 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등 일은 고됐지만 늘 경제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한번은 뉴욕으로 놀러간 간호사들에게 고급 부티크에서 옷을 사 입으라며 직접 현금 다발을 쥐어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밖에도 카다피는 매년 혁명기념일인 9월 1일이 되면 자신 곁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이탈리아제 황금 시계를 하나씩 선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계에는 카다피의 얼굴이 박혀 있었으며, 6~8년 동안 일한 사람들 가운데는 매년 이 선물을 모은 덕에 컬렉션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카다피는 아프리카 방문 때마다 자동차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창문 밖으로 돈다발을 뿌리는 습관이 있었다. 이는 굶주린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베푸는 그만의 호의이자 오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선심 쓰듯 돈을 뿌리던 그의 목에는 현재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상금(18억 원)이 걸려 있다. 화려한 날은 모두 지났고, 이제 남은 것은 심판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세계 각국에 은행·자동차·쇼핑센터 지분
현재 카다피 일가의 재산은 800억~1500억 달러(약 89조~17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두바이, 미국,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등 전 세계 35개국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재산은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오일 머니’다. 이렇게 석유를 팔아 번 돈은 비밀계좌에 유동자산으로 숨겨 놓았거나, 혹은 해외투자의 형태로 탈바꿈했다.
해외투자는 주로 2006년에 설립된 국부펀드인 ‘리비아투자공사(LIA)’를 통해 이뤄졌다. 총 700억 달러(약 78조 원) 규모인 이 펀드를 통해 그는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소유한 ‘피어슨미디어그룹’의 지분 3%를 매입했는가 하면, ‘로얄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지분 0.02%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던 카다피는 특히 이탈리아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가령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는가 하면,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의 지분도 2%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통신회사 ‘레텔리트’ 15%, 섬유회사 ‘올체세’ 22%, 국영방위산업체 ‘핀메카니카’ 2%, 이탈리아 최대 국영에너지회사 ‘에니’ 1%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또한 명문 축구클럽 ‘유벤투스’의 지분 7.5% 역시 카다피 소유다.
영국에서는 부동산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카다피 일가는 현재 영국 내 정제공장 세 곳과 함께 3000여 개의 주유소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밖에도 런던에 여러 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고급 전원주택가인 햄프스테드에 있는 저택은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이 2009년에 1500만 달러(약 160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옥스퍼드가의 대형 상가건물인 포트맨하우스, 웨스트엔드의 극장 및 쇼핑센터에도 수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외곽에도 사이프 명의의 고급 빌라 한 채가 있으며, 시립 동물원에는 사이프 개인 소유의 백호 한 마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미국의 투자은행에는 약 320억 달러(약 36조 6400억 원)의 유동성 자산을 예치해 놓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유럽연합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모두 카다피의 재산을 동결해 놓은 상태다. 동결 자산 규모는 미국 300억 달러(약 32조 원), 캐나다 24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 오스트리아 17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 영국 10억 달러(약 1조 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영국 엑세터대학의 중동정치 전문가인 팀 니블록 교수는 “카다피 일가는 온갖 종류의 형태로 재산을 세계 도처에 숨겨 놓았다. 따라서 이들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