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이전 미얀마 청년들은 꿈을 꾸고 있었다. 의사도, 사업가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쿠데타로 인해 학교는 문을 닫았고 모든 사회 활동은 멈춰 버렸다.
군부는 국영방송을 제외한 주요언론을 통제했고 인터넷을 끊으며 미얀마를 세계에서 고립시켰다. 군경의 총과 탱크가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로 나와 세손가락 경례를 시작한 미얀마의 청년들. 이제 그들의 꿈은 자신들이 누렸던 다시금 되찾을 '민주주의'가 되었다.
해직된 기자들이 '다큐플렉스' 팀에 영상을 보내오며 한국과 미얀마의 취재 연대가 시작됐다.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어렵게 인터넷에 접속, 한국 제작진에게 보내온 영상은 군부의 눈을 피해 찍은 목숨을 건 기록이었다. 영상 속에는 비록 거칠지만 쿠데타 이후 외신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얀마 각 도시의 적나라한 시위 현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각해진 코로나로 방치되는 죽음, 악화된 경제 상황들이 담겨져 있었다.
군부의 눈을 피해 숨죽여 보는 한국영화, 광주항쟁을 다룬 '택시 운전사'는 현재 미얀마 청년들이의 비공식 최대흥행 영화이다. 지난 날 군부의 폭압에 끝까지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은 미얀마 청년들의 희망이자 민주주의의 교과서가 되었다.
1980년 광주 청년들이 그랬듯 시위를 하다 연행되는 미얀마 청년들은 가혹한 조사와 고문에 목숨까지 잃고 있다. 군부의 의도에 따라 체포된 몽유와의 지도자 '웨이 모 나잉'이 고문당한 모습으로 공개됐지만 청년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문보다 군부 치하에서 계속 살아가는 일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그들. 죽음도 불사한 의지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쿠데타 이후 1년이 지나자 청년들은 국제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았다. 펜을 놓고 총대를 잡으며 스스로 시민군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보내온 지원금으로 목숨을 건 훈련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불과 1년 전만 해도 K-POP을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 졸업 후 미래를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시민군 중에는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없어 경찰서를 빠져나온 청년도 있었다. 그는 신변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지금의 선택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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