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조일원화·사법제도 개혁 등 주요 현안을 앞두고 양승태 전 대법관이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다. 사진은 2009년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5부요인 간담회에 참석한 양승태 당시 중앙선관위원장. |
양 후보자는 정통 엘리트 법관 출신이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제주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 연구실장, 부산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원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2월 대법관으로 퇴임할 때까지 36년간 판사의 길을 걸어왔다. 또 지난 2009년부터 2년 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으며 공정한 선거관리에도 힘을 쏟아왔다.
이번에 양 후보자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데에는 탁월한 업무능력뿐 아니라 도덕성과 성품, 이념적 성향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양 후보자는 평소 판사직에 대한 소명의식과 자긍심이 대단했다. 2005년 대법관에 지명됐을 당시 그는 “법관으로 평생 살아왔다. 대법관이 된다고 해도 역시 법관(평판사)처럼 살 것”이라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법부’를 강조해 왔다. 대법관 퇴임사에서도 그는 “영국, 미국에서 판사가 존경을 받는 것은 이미 존경을 받는 사람한테 법관을 맡겼기 때문”이라며 “영미와 달리 젊은 나이에 법관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재판을 받는 이들한테 먼저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 그들의 존경과 신뢰부터 획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인용해 “판사 머리 위 천장에는 가느다란 한 가닥 말총에 매달린 칼이 있다. 그 가닥에 조그만 상처라도 생기면 칼은 언제든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서울대 동창회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법원이 나아갈 길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아무리 법에 실력이 있어도 재판 관계자로부터 ‘저 사람에게는 재판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판사가 존경을 받으려면 언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겸허한 태도를 가지는 게 첫걸음”이라 조언했다. 또 젊은 법관들에게 “힘들고 지루해도 법정에서 당사자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항상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풍부한 법원행정처 경험으로 ‘사법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양 후보자는 자타공인 사법부 최고의 실력자로 꼽힌다. 일선 판사로서 재판 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다년간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면서 사법행정 관료의 노하우까지 쌓았기 때문이다.
1998년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시절에는 외환위기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파산재판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용불량자 구제제도를 정립했다. 또 파산실무연구회를 조직해 파산사건 처리와 관련된 법률문제 정비 및 연구에 힘을 썼다. 당시 많은 도산기업들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정관리하는 등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에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의 사법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을 받았다.
양 후보자는 성향적으로는 보수적인 인물로 분류된다. 실제로 그는 2005년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기존 질서를 뒤엎고 전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 개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양 후보자로 인해 좌편향됐던 사법부가 다시 ‘우향우’로 선회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양 후보자가 내린 주요판결에서도 그의 보수적인 색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집회·시위, 공안사건에는 뚜렷한 보수성향을 드러내며 엄단했다. 그는 대법관 시절인 2009년 용산참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을 사망케 한 철거민에게 실형을 선고했고, 버스를 부순 시위대에게는 피해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확성기를 사용해 불법 시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용산동 재개발구역 세입자들의 상고심에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인정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지나친 소음으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줬다면 ‘폭행’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코스콤 비정규직 농성자들의 증권선물거래소 건물 로비 점거 농성 사건에서도 그는 노조원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었다.
공안사건에도 단호했다. 양 후보자는 2009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사건을 유죄로 인정했다. 2002년부터 이적단체 논란에 휩싸인 한청협에 대해 그는 ‘한청협은 진보단체들의 연합체’라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 지난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그는 다수의견을 통해 “반국가단체 활동을 목적으로 내걸지 않았더라도 실제 활동이 국가의 존립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면 이적단체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는 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양 후보자가 모든 사안에 있어 보수적인 색채를 보인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과 인권문제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그는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시절인 2001년 남녀평등의 원칙을 보장하는 취지로 남성 중심적인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했다. 다른 법원에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던 개명 신청도 대부분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위법한 체포에 항의하는 과정이라면 경찰관의 가슴을 밀치거나 팔을 잡아당겼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수형시설 내 개방형 화장실 사용으로 수치심을 느꼈다며 수형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양승태호 출범 이후 전원합의체는 보수적 색채가 가미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양 후보자는 오랜 시간 객관적인 잣대를 갖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온 인물이다. 대법원장 자리에 오른 후에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안에 맞게 원칙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원만한 대인관계는 양 후보자의 강점으로 꼽힌다. 강직하지만 온화한 성품인 양 후보자는 합리적인 리더십뿐 아니라 정확한 업무처리로 법조계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또 그는 직원들과의 등산을 통해 조직 화합에도 힘을 쏟아왔고, 매사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8월 18일 대법원장에 내정됐을 때도 그는 “다른 유능한 사람을 두고 지명돼 송구스럽다.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든다”는 소감을 밝혔다.
전관예우가 판치는 법조계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퇴임 후 ‘순수한 야인’의 삶을 꿈꾸며 외국으로 건너가 트래킹에 몰두해온 그는 몇 번의 고사 끝에 대법원장직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자유인’으로 살아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미 측근에게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여행가는 것이 꿈”이라고 여러 번 말해온 터였다. 틀과 형식에 얽매인 법원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던 그는 실제로 특허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03년 오토바이 면허를 따는 파격을 보였다.
지난 2월 퇴임 전 그는 후배들에게 “대법관 6년은 징역살이나 마찬가지로 힘들었는데 내가 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대법원장을 하겠나. 하라고 해도 안할 것이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그는 퇴임 직후 대형 법무법인의 열렬한 러브콜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변호사개업도 하지 않았다. 소문난 등산 마니아인 그는 대법원장 유력 후보군이었지만 “남은 인생 중 최소한 10년은 좋아하는 걸 하며 살겠다”며 히말라야로 떠났다.
퇴임 후 한 달 뒤 대법원장 인사검증에 들어간 청와대에서 ‘자기검증 설문서’를 제출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관직에 미련 없다”며 연락을 끊었다.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를 등반하고 40여 일 만에 귀국한 그는 6월 초 또다시 미국으로 출국, 최근까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360㎞ 구간을 도는 존뮤어 트레킹에 몰두해왔다. 퇴임 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쓸 만한 자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부 전관들의 모습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오랜 공직생활 동안 잡음 없이 생활했던 양 후보자였지만 과거 청문회장에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05년 대법관 청문회 과정에서 그는 경기도 안성의 농지를 불법 매입한 의혹을 받았다. 당시 양 후보자는 “사별한 부인이 한 일이고, 토지 대금은 모두 부인 치료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문제의 농지는 사별한 부인이 박봉인 판사월급으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사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 후보자는 청문회 당시 그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 자체를 매우 불쾌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이번에 막판까지 대법원장 자리를 고사한 이유 중 하나가 사별한 부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청문회 자리에서 또 다시 전 부인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질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양 후보자는 1993년 첫 부인과 사별한 뒤 현재 부인과 재혼했다. 올 2월 퇴임 직전 신고한 재산은 32억 9000만여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장은 판사들에 대한 독립적인 인사권을 행사하고, 대법관 임명제청권과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에 대한 지명권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사법부 수장이 될 양 후보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선 그는 검찰, 행정부, 헌법재판소와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정립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법부를 정립해야 한다. 또 최근까지 정치권과 사법부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사법개혁 문제에 최선의 입장을 피력해야 하고, 법조일원화 및 로스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이념성향의 판결에 대한 시비에서도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국보법 및 과거사 재심 문제, 사형제와 간통죄, 대통령 사면권 행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현명하고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라는 녹록지 않은 암초와 산적한 사법 현안 해결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양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사돈, 그건 운명이에요”
김 전 원장은 대법원장 자리를 고사해 온 양 후보자의 마음을 움직인 인물로 전해진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오른 양 후보자가 연락을 끊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자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김 전 원장은 양 후보자에게 “관직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기 싫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더라. 운명적인 게 있으니까 마음을 좀 넓게 갖고 생각해보라”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자리를 네 번이나 거절하다 다섯 번째 수락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고, 사돈의 조언을 들은 양 후보자는 고심 끝에 후보자 지명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