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직적인 집단 사기극도 연출했다. 그는 범죄참가자들을 모았다. 원조교제를 할 예쁘장한 여자아이를 구했다. 부모역할도 있었고 행패담당, 그리고 합의를 할 중재역까지 사기극 일당을 조직했다. 그는 병원장을 노렸다. 환자로 위장해 원장과 친해졌다. 어수룩한 원장을 유혹해서 욕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어느 날 병원입구에서 뒹굴며 소리치는 부모역할 담당의 행패로 범죄극이 시작됐다. 각자 배역을 맡은 대로 그 원장을 질식시켜 나갔다.
나는 그의 영혼에 들어있는 악마성을 본 느낌이 들었다. 총연출인 그는 법에도 걸리지 않았다. 직접 행위를 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솔직히 나는 그의 종말이 궁금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자살했다. 독방에서 목을 매단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심판자 역할을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허망한 죽음을 많이 목격했다. 명문대학 그리고 하버드에 유학한 좋은 집안 출신의 미남이 있었다. 그는 재벌가의 딸과 결혼해서 그룹의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장인을 증오하고 있었다. 평생 칭찬만 받아온 그를 위압하는 최초의 존재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피 흘리는 자존심은 회장인 장인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그는 자살을 기도했다. 한강에서 투신했는데도 그는 살아났다. 칼로 배를 갈랐는데도 죽지 않았다. 건물옥상에서 떨어져 머리가 터졌는데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가물거리는 마지막 의식도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수술하기 전에 내가 물어보았다. 이제는 살고 싶지 않으냐고. 그는 그렇다고 내게 신호를 보냈다. 증오로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불장난을 했던 것이다. 그때 하늘은 그의 생명을 가져가 버렸다. 자기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남의 생명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많은 범죄의 뒤에 깊이 뿌리박힌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감옥을 갔다가 한 죄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철창 밖으로 비가 내리더라는 것이다. 젖어가는 높은 교도소의 회색 담 아래서 잡초라도 보면서 잠시 흙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나 몇 미터 앞의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걸을 수 없는 게 감옥이더라는 것이다. 그는 구속을 안 동시에 작은 행복을 알았다.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낸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었다. 그에게 감옥은 영혼의 산을 올라가는 수도원이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든 산다. 감옥 철창 끝에 매달린 무색투명한 고드름 속에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다면 죽음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