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경매 방식은 처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4세대(G) 롱텀에볼루션(LTE)을 서비스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대역인 터라 SK텔레콤과 KT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것이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6000억~7000억 원이라는 시장 평가액도 무의미해 보였다.
경매 회차가 늘어나고 날이 갈수록 논란은 더욱 커져갔다. ‘동시오름방식’과 자율 경쟁을 내건 방통위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상징적인 액수였던 1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도 많아졌다. 비판의 화살은 통신사를 빗겨나 방통위로 향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통신사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방통위에 대해 어설픈 제도 도입으로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고 이를 이용해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심산 아니냐는 의혹이 쇄도한 것이다.
그러던 차, 지난 8월 29일 KT 이석채 회장이 주파수 경매 참여를 포기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던 승부가 싱겁게(?) 결판났다. SK텔레콤이 1.8㎓ 대역을 9950억 원에 낙찰받았고 KT는 800메가헤르츠(㎒) 대역을 최저 경쟁가격인 2610억 원에 낙찰받았다.
이석채 회장은 29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주파수 경매 참여 중단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과연 이 주파수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꿈의 LTE 구현’이라는 우리의 욕심은 접더라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다른 부분에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 회장의 ‘결단’으로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의 경우 승자의 저주로 인한 통신비 인상,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염려됐다. 방통위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해 무리한 경쟁을 유발했고 시장과 업체의 사정은 고려치 않은 채 자기 배만 불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방통위의 외압설, 방통위와 이석채 KT 회장 간 빅딜설 등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SK텔레콤은 당장 9950억 원이라는 낙찰가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낙찰받은 직후 “우려스러울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인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0년간 분납하는 데다 통신사들이 한 해 쏟아 붓는 수조 원의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면 결코 큰 액수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8월 3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주파수 경매 가격이 일부에서는 많은 투자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으나 10년 분할해 납부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현금흐름상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주파수 할당 허가를 받으면 3개월 내에 낙찰가의 4분의 1을 일시불로 내고 나머지는 이용 기간 동안(10년) 분할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너무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탓에 이것이 자칫 통신비 인상으로 연결돼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SK텔레콤은 현재 하이닉스 인수전에도 뛰어든 상태여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할 형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4G LTE를 핑계로 자칫 지금보다 더 가혹한 요금제와 약정제 등이 실시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언제라도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면 인상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금처럼 주파수 경매 책임에 대한 비판이 통신사가 아닌 방통위에 조준돼 있다면 더욱 그렇다.
반대 의견도 있다. 이제는 통신사가 마음대로 통신비를 인상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워낙 정부 규제와 소비자들의 눈초리가 따가워 함부로 가격을 올려 받기는 힘들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오남석 방통위 전파기획관은 “현재 국내 통신사들이 요금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 의견에 힘을 보탰다.
▲ SK텔레콤 4G LTE 상용화 선포식. |
물론 방통위는 이런 지적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주파수 경매가 종료된 지난 29일 오남석 전파기획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주파수 경매는 주파수 분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인 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오히려 자화자찬했을 정도다. 경매가 한창일 때도 낙찰가가 1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을 방통위는 부인한 바 있다. ‘통신비는 찍어누르면서 주파수는 경매하느냐’는 질타가 쏟아졌고 선진국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낸 ‘동시오름방식’을 어설프게 시도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낙찰가는 방통위의 예상대로 1조 원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끝맺음이 시원치 않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이석채 회장의 갑작스러운 경매 포기부터 의문이다. 이석채 회장의 포기 소식이 처음 알려질 때만 해도 한편에서는 이 회장의 노림수로 해석하기도 했다. 비록 2G 서비스에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1.8㎓ 대역(20㎒ 폭)을 보유하고 있는 KT로서는 다시 1.8㎓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함께 경매로 나온 800㎒ 대역을 최저가에 낙찰받는 게 나았으며 이를 위해 KT와 이석채 회장이 무한경쟁이라는 ‘쇼’를 해왔다는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1.8㎓ 대역에다 다시 1.8㎓ 대역을 받아 넓히면 4G LTE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해 보인 탓에 800㎒라도 쉽게 받자는 속셈이었다는 관측이었다. 여기엔 라이벌인 SK텔레콤이 핵심 주파수를 싼 가격에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전술’도 포함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석채 회장의 노림수보다는 방통위의 외압설, 방통위와 이 회장 간 빅딜설이 힘을 얻고 있다. 6000억~7000억 원이라는 시장 평가액과 달리 이 회장은 당초 1.8㎓ 대역의 적정 가치를 1조 5000억 원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이 회장은 1조 원이 넘지도 않았는데 포기해버렸다. 본인이 책정한 적정 가치보다 무려 5000억 원이나 적은 금액에서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운명이 걸렸다고 볼 수 있는 경매에서 갑작스레, 그것도 예상치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압력·빅딜설’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압력설의 내용은 경매가 과열되고 회차가 거듭되면서 입찰가가 1조 원을 넘을 듯하자 안 그래도 비판받고 있는 방통위가 시장 혼란과 비난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KT와 이석채 회장에게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또 그 대가로 KT가 보유 중이지만 2G 서비스에 묶여 있는 1.8㎓ 대역을 활용할 수 있도록 2G 서비스 강제 종료를 약속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약 그렇게 되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사이좋게 주파수 대역을 나눠 가지면서 통신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방통위도 여론의 비판을 면할 수 있다. 현재 KT는 그동안 여러 차례 미뤄진 2G 서비스를 9월 말에 종료하고 11월에 4G LTE 서비스를 개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8월 30일 “이번 주파수 경매와 관련하여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업자 외압 행사설, 빅딜설 등 각종 의혹이 파다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방통위가) 사업자들에게 1조 원을 넘기지 말라고 부당하게 개입하여 포기를 종용했다. 뭔가 대가를 약속했다는 것 등”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엄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KT 사장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통신 분야 전문가이자 국회의원이다. 무엇보다 KT 사장을 역임했다는 사실로 이 원내대표의 의혹 제기에 방점이 찍힌다.
공교롭게도 방통위는 주파수 경매가 끝나자마자 2G 서비스 종료에 대한 안건 심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단순히 그 사안에 그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연임 얘기도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언급했다. 이석채 회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최근 공기업 사장 자리가 속속 교체되는 가운데 이석채 회장의 자리도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석채 회장이 2009년 KT 사장으로 부임할 때 최시중 위원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이 있었다. KT는 지난해 말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을 전무로 영입하는 등 현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사들을 영입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여러 의혹들에 대해 방통위와 KT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구동성으로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꼴찌 탈출 못하면 그룹 치명타
2.1㎓ 대역 주파수를 아무런 경쟁 없이 최저가인 4455억 원에 일찌감치 차지한 LGU+(유플러스)와 이상철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벼울 듯싶다. 또 1조 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1.8㎓ 대역을 차지한 SK텔레콤이나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나 2G 서비스 강제 종료라는 부담을 안게 된 KT보다 한결 수월한 위치에서 4G LTE를 경쟁할 수 있게 됐다.
LG유플러스는 4G LTE에서 두 경쟁사보다 먼저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부터 4G LTE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비교광고를 통해 다른 경쟁사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두 경쟁사보다 마케팅과 시설 투자에 더 많은 비용을 쓸 수 있다는 것도 LG유플러스와 이상철 부회장으로서는 이점이다. 이 같은 이점을 안고 이 부회장은 자존심 회복을 노리고 있다. 만년 3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이상철 부회장 개인적으로는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 라이벌 이석채 KT 회장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꾸로 ‘업계 간 경쟁 활성화’를 이유로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3위에 계속 머무를 경우 그 상처는 매우 치명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LG전자를 비롯해 가뜩이나 LG그룹 계열사들이 험난한 길을 걷는 와중에 LG유플러스마저 지지부진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LG그룹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특히 스마트폰 사업에서 고전하며 침체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LG전자 위기가 LG유플러스로서는 꽤 곤혹스러운 일이다.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때 LG전자에 고급 스마트폰 단말기를 생산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부문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런 요구를 했다는 것은 LG의 두 계열사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증명하는 셈이다.
이 또한 뒤집어 보면 LG유플러스의 도약이 LG전자, 나아가 LG그룹 위기 극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2G와 3G에서 꼴찌를 면치 못한 LG유플러스가 이상철 부회장의 바람대로 4G에서 순위를 뒤바꿀 수 있을지 LG그룹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