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분석 코디네이터로 변신…“은퇴 속사정? 나를 원치 않는 것 같더라”
배우고 경험할 건 많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열정과 노력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손승락은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장에 나가 메이저리그 팜 시스템 1위를 자랑하는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캠프 코칭스태프들과 수시로 미팅을 가졌다. 저녁에는 타격, 투수, 데이터, AT(Athletic Training), 스트렝스, 바이오메카닉 등 파트별 담당자들을 한국 식당으로 초대해 한국식 BBQ를 대접하며 거리를 좁혀나갔다. 손승락은 “다저스에서 보고 배운 많은 걸 들고 KIA에 합류할 예정”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허구연 위원 소개로 다저스와 인연 맺어
손승락이 LA 다저스에서 연수를 받게 된 배경에는 허구연 해설위원이 존재한다. 손승락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던 허 위원은 손승락이 갑작스레 은퇴를 발표하자 손승락으로부터 영어 프로필을 전달받고 친분이 있는 다저스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손승락의 미국 연수를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허구연 선생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비자를 받고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1년 정도 연수를 계획했다가 갑자기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KIA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연수 기간이 줄어들었다. 2월 8일 애리조나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부터 다저스 캠프를 찾았는데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파트별 담당자들과 일대일 미팅을 통해 이곳의 시스템을 익혔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워야 하는 터라 매일 저녁 다저스 스태프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려고 노력했다. 한국식 BBQ 덕분인지 정말 많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데이터 분석과 호크아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뒀고 배움을 가졌다.”
손승락은 다저스 스태프들과 미팅할 때마다 자신이 마치 기자가 된 듯 다양한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들을 메모해뒀다가 미팅 자리가 주어지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던 것.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라 일부러 서둔 부분도 있다. 캠프 초반에는 마이너리그 캠프가 정식으로 시작되지 않은 탓에 조금은 여유 있게 스태프들과 미팅을 가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메이저리그 30개 팀들 중 팜 시스템 1위에 꼽히는 다저스가 유망주들과 마이너리그들을 어떤 방식과 시스템으로 육성시키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는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다저스 캠프에서 만난 KBO리그 출신 외인들
손승락이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다저스 캠프에 녹아 들 수 있었던 건 KBO리그를 경험한 선수들 덕분이다. 총괄 타격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카를로스 아수아헤는 롯데 자이언츠 출신이다. KIA 타이거즈 출신 브렛 필과 넥센(키움) 히어로즈 출신 대니 돈은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를 맡고 있다. 지난 시즌 SSG 랜더스에서 뛰었던 샘 가빌리오와 이전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앤디 번즈는 트리플 A 선수로 마이너리그 캠프에 합류했다. ‘한국 야구’라는 공통 요소로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었던 손승락은 일부러 식사 자리를 만들어 그들과 KBO리그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2019년 롯데 내야수로 활약한 카를로스 아수아헤한테 롯데 시절 성적이 저조했던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새로운 리그에 합류한 다음 자신의 루틴을 유지하기보다 팀 분위기에 맞춰가다 보니 루틴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부정확한 루틴은 타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첫 단추부터 잘못 꿴 부분이 좋지 못한 결과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2017, 201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던 앤디 번즈와 손승락의 재회는 호텔 복도였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던 두 사람은 앤디 번즈가 혼자 무거운 짐들을 방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손승락이 영어로 도움을 주려고 말을 꺼내자 앤디 번즈가 갑자기 한국어로 “한국 사람?”이라고 물었던 것. 서로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확인하곤 깜짝 놀라면서 반가워했다는 후문이다.
“앤디 번즈가 한국 생활이 많이 그립다고 말했다. 롯데에서 가장 야구를 재미있게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KIA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자신을 KIA에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하더라. 스카우트는 내 분야가 아니라 단장님께 말씀 드려 보겠다고 대답했다. 다저스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KBO 출신의 여러 외국인 선수들을 만나니 한국 야구가 이들한테 많이 오픈돼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갑작스런 은퇴 발표, 또 다른 이야기들
이젠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도 손승락이 갑작스레 은퇴를 발표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손승락은 지금까지 은퇴한 진짜 이유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은퇴 속사정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대신 에둘러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롯데에서) 나를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마무리 투수만 고집하지 않았다. 중간계투든 어디든 어린 후배들과 경쟁을 통해 내 자리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을 구단에 전달했는데 구단은 다른 방향으로 팀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다른 팀과 새로운 계약을 통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새로운 팀에 가서 새로운 로고에 정을 붙이며 야구할 수 있을까 싶더라.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 팀을 롯데 자이언츠로 남기고 싶어 깔끔하게 은퇴를 발표한 것이다.”
한동안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 적도 있었고, 야구를 잠시 외면하기도 했다. 그때 허구연 위원이 LA 다저스로 연수를 추진해줬던 것.
“다저스로 연수를 오게 된 건 엄청난 행운이다. 최고의 시설, 시스템과 좋은 성적을 내는 팀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면 할수록 대학 2학년과 4학년 때 메이저리그에서 오퍼가 있었을 때 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했나 하는 후회가 들더라. 만약 그때 미국에 왔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그 아쉬움을 다저스 연수를 통해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손승락에게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이후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만약 KIA에서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를 제안하지 않았다면 코치 연수 후 KBO리그 지도자 생활을 목표로 한 것인지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처음 꺼내는 이야기”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려 했던 건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처음엔 마이너리그에서 정식 코치가 돼 선수 생활 때 못해본 미국 야구를 지도자로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KIA 장정석 단장님께서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란 자리를 제안해주셨다. 평소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선 단장님의 그 제안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팀 전력 분석은 통계를 배운 이들의 몫인데 전력분석팀의 데이터가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선수들은 전력분석팀에 ‘너희가 야구 해봤어?’라는 반응이고, 데이터 팀에선 ‘너희가 이래서 야구를 제대로 못한다’라고 생각한다. 파트별 협업을 통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 중간 역할을 해주는 게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KIA에서 손승락한테 원한 건 호크아이와 데이터 분석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손승락은 그 이상의 배움을 들고 떠난다. 곧 다저스에서 연수를 마무리하고 귀국 예정인 그는 “부자가 돼 돌아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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