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그림부터 시계방향으로 중국의 춘궁화, 동물과 교합하는 고대 인도 조각, 잉카 문명의 토기. |
고대 문명에서 뚜렷이 그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섹스 아트. 기원전 1000년경 이집트 문명에서는 신들의 섹스를 다룬 벽화나 조각 부조가 많다. 땅의 남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의 만남을 그린 벽화가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게브와 누트는 원래 형제이면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는데, 아버지인 공기의 신 ‘슈’에 의해 헤어진 후 각기 땅과 하늘로 갈라졌다는 신화에 근거한 작품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권 작품에는 인간 남녀의 자유분방한 섹스가 많이 등장한다. 미술사가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당시 사회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본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폼페이 화산 유적에서 발굴된 벽화다. 공중목욕탕 타일에 그려진 그림인데, 1980년대에 들어서야 발견됐다. 전라의 여성이 떡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아 무릎을 꿇은 남성에게 오럴섹스를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발굴되자 당시 역사가들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고. 그때까지 학계에서 로마는 남성우위 사회로만 인식됐기 때문이다.
잉카 문명에는 작은 토기 작품이 많다. 앉아서 자위를 하는 남성을 표현한 토기 등 자위가 주제인 작품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 항문섹스, 후배위 섹스 등 주제도 다양하다. 고대 문명권 중 가장 다양한 섹스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도 페루에서는 이런 토기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대부분이 신전이나 왕의 묘 등에서 발굴된다는 점이다. 왕이 죽었을 때 부장품으로 넣어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도 대범하게 성을 다룬 벽화나 부조가 많다. 신상조차도 모두 전라 차림이고, 대부분 포옹이나 성교를 하고 있다. 감히 어떻게 신상으로 섹스를 그리느냐고 불경스럽게 보기 일쑤인 현대인의 상식을 간단히 뛰어넘는 발상이다. 심지어 동물과의 섹스를 그린 조각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부부의 침실에서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지 가르치는 그림도 많다. 인도의 전설적 섹스 가이드북 <카마수트라>에는 “여러 동물이나 새가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면, 성생활을 몇 갑절은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말과 그림이 실려 있을 정도라고.
중국 춘화 ‘춘궁화(春宮畵)’. 미술사가들은 기원전 1100년 이전부터 춘궁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춘궁화가 남아 있지는 않으나 한나라의 유향이 쓴 <열녀전>에는 “황제와 애첩이 고대 춘궁화를 보면서 육욕을 불태웠다. 긴 밤 사랑의 향연은 식을 줄 몰랐다”는 기술이 나온다. 16세기 이후의 춘궁화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다.
일본의 춘화는 중국의 춘궁화가 수입되며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춘궁화에서는 남성의 성기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려진 데 비해, 일본 춘화의 성기는 과장되어 표현되어 일본의 남근숭배 사상이 중국보다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표현 주제도 대담하다. 불교가 풍미했던 12세기 가마쿠라 시대에도 승려와 비구니, 절을 찾은 여성이 셋이서 함께 성교를 나누는 그림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춘화 중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18세기에 그려진 단원 김홍도의 춘화다.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민중의 일상생활과 풍속을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편 가장 섹스 아트가 빈약한 곳은 서양 중세 유럽이다. 조각이나 춘화는커녕 벌거벗은 나신 한 장 그려진 그림이 없다. 육욕을 죄악시하는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섹스를 그리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컸던 탓. 하지만 어디에서나 에로스를 갈망하는 인간은 있는 법. 일부 상류귀족들은 의학서로 위장한 섹스 그림 교본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