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방식 도입 ‘명낙대전’ 재연 우려…‘이낙연계’ 박광온 vs ‘이재명계’ 박홍근 양자대결 가능성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송영길 당지도부가 총 사퇴했다.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해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관리형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우기로 하면서 민주당은 원내대표 선거를 3월 25일 이전 조기에 진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3월 14일 선거를 관리할 선거관리위를 설치, 위원장에 4선 김영주 의원을 선임했다.
민주당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경선 대신 교황 선출 방식인 이른바 ‘콘클라베’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의 입후보 절차 없이 선거 당일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투표장에 모여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1명의 의원 이름을 비공개로 적어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형식을 절반인 87표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이러한 콘클라베 방식을 채택하는 데는 경선을 둘러싸고 계파 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비대위는 3월 13일 의원 전원에게 “세부방침이 정해질 때까지 공개적 출마표명이나 공약 등 메시지를 삼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따라 원내대표 출마를 희망하는 의원들이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약·비전 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정견 발표 등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콘클라베 방식에 대해 오히려 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가 대선 패배 후 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공개적인 논의의 장이 돼야 하는데, 후보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개혁성향의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당을 수습해야 하는데 원내대표 선거에서 계파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에게 분열로 비칠 수도 있다”면서도 “윤석열 정부에 대응하는 야당 민주당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원내대표 후보들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콘클라베 방식은 그런 후보들의 생각은 듣지 못하고 자칫 인기투표가 될 수 있다. 결국 계파 간 세 대결 양상만 뚜렷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당내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 역시 콘클라베 방식에 대해 원내대표 선관위에 “각 후보의 정책과 정견을 확인하고 선출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비대위에서는 경쟁 과열을 방지하고 있지만, 이미 물밑에서는 계파 간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 조기 선거가 공식화되자 자천타천 10명 가까운 의원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5선의 조정식, 4선 안규백, 3선 김경협 박광온 박완주 박홍근 이광재 이원욱 홍익표 의원 등이다. 조정식 박홍근 의원은 ‘이재명계’, 박광온 홍익표 의원은 ‘이낙연계’로 알려져 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안규백 이원욱 의원이고, 김경협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까운 ‘친문계’로 구분된다. 계파 간 대결 양상이 재연될 수 있는 구도다.
다만 조정식 의원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경선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송영길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3선의 박완주 의원도 본인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들 중 출마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후보군은 이원욱 의원과 박홍근 의원이다. 이 의원은 고심을 거듭하다가 3월 5일 자신의 SNS에 “하나 된 통합과 단결만이 강한 민주당을 만들 수 있다”고 적으며 출사표를 던졌다. 박 의원도 16일 열린 당내 최대 의원 연구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 전체회의에 참석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다른 후보군들은 공식적으로는 “막판 고심 중”이라고 말하며, 당내 여론을 살피는 중으로 알려졌다. 후보 등록 후 공개경쟁을 벌이는 기존 경선 선출 방식이 아닌 콘클라베 선거인 만큼,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정가에선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구도를 박광온 박홍근 의원 양자 대결로 흐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박광온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다. 또한 2015년 문재인 대통령 당대표 당시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친문 그룹과도 친분이 두텁다.
박홍근 의원은 과거 박원순계였지만, 이번 대선 경선에서 일찌감치 이재명 전 경기지사 지지를 선언하면서 캠프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이에 친이재명계와 구 박원순계, ‘더미래’ 등이 우군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예상보다 계파 간 신경전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전히 민주당 내 ‘친문계’가 주류라고 하지만 예전처럼 그들이 확실히 지지하는 원내대표 후보가 뚜렷하지 않다. 이낙연계는 당내 경선에서 패하며 힘을 다소 잃었고, 이재명계는 여전히 주류는 아니다. 당내 계파가 와해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계파색이 아니라 후보가 윤석열 정부와 관계설정에 어떤 태도로 임할지를 보고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새 원내지도부는 특검법이나 정치개혁법 등 문재인 정부 마지막 개혁입법을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172석의 거대 야당으로 국무총리 인준, 장관 인사청문회, 정부 조직 개편 등 여러 국정과제에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풀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는 셈이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 말 마지막 입법 과제를 속도감 있게 해결하려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의 협상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에 협조할 사항은 협조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한다. ‘퍼주기’와 ‘발목잡기’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이러한 능력을 갖췄는지 의원들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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