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러시아를 흔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9)이다. 서방 세계가 푸틴의 자산을 동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우습게도 푸틴의 정확한 재산 규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러시아라는 국가와 기업은 흔들릴지언정 푸틴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낙 전세계에 꽁꽁 숨겨놓은 재산이 많은 까닭에 푸틴의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기업을 비롯해 고위 인사들에게 내린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조치가 푸틴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이런 의구심에 대해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은 이번 경제 제재의 목표가 푸틴을 빈곤층으로 만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푸틴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푸틴 측근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데 있다. 요컨대 측근들인 억만장자들에게 당장 전쟁을 그만두도록 푸틴을 설득시키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아무리 재정 압박에 시달린다고 해도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들이 푸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차치하고 우크라이나 철수를 감히 요청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푸틴의 재산이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측근들의 계좌로 몰래 흘러들어갔거나 가족들 명의로 된 호화 부동산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팩트체크 웹사이트인 ‘폴리그라프’는 이와 관련해 “푸틴의 정확한 재산 규모는 미국 국가정보국도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세계 억만장자 순위를 매기는 경제전문지 ‘포브스’ 역시 지난 20년 동안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헛수고였다. 심지어 이를 파헤치던 편집자 가운데 한 명은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을 조사하던 중 모스크바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현재 크렘린궁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푸틴의 연봉은 13만 1900달러(약 1억 6000만 원)며, 이 밖에 자동차 세 대, 트레일러 한 대, 77㎡ 너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개인 저택과 18㎡ 규모의 차고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크렘린궁 측은 “이 모든 자산은 러시아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2년 푸틴이 신고한 은행 잔고는 360만 루블(약 4500만 원)이었다.
물론 이게 푸틴의 전재산은 아니다. 푸틴의 억만장자 측근들이 더 부자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망명한 러시아 억만장자인 세르게이 푸가초프는 2015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푸틴은 러시아 연방에 속하는 모든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그의 순자산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또한 역사학자이자 프린스턴대학의 러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콧킨은 “러시아 전체가 푸틴의 돼지 저금통이다.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원하는 기업들에 연락할 수 있다. 때문에 러시아 밖에 돈을 숨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이자 푸틴의 정적인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 역시 푸틴이 가즈프롬과 수르구트네프테가스 등 러시아 석유 및 가스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그의 순자산이 700억 달러(85조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보다 더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웨덴 경제학자이자 조지타운대학 겸임교수이며 ‘러시아의 정실 자본주의’의 저자인 안데르스 아스룬드는 “아마도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푸틴의 동맹국, 측근, 친지들의 해외 피난처에 재산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푸틴의 자산이 1000억~1500억 달러(약 122조~183조 원) 혹은 그 이상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한때 러시아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했던 빌 브라우더는 한발 더 나아가 푸틴이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017년 미국 상원에서 그는 이와 같이 주장하면서 그의 총자산이 2000억 달러(약 244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푸틴은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는 물론이요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에 버금가는 부를 소유한 셈이다.
브라우더가 이런 계산을 도출한 까닭은 이렇다. 2003년 러시아 석유회사 유코스의 창업자이자 한때 러시아 최고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사기 및 탈세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자 당시 겁에 질린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에게 도움을 청했다. 요컨대 호도르코프스키처럼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에 대한 푸틴의 대답은 ‘50%’였다. 러시아 정부나 행정부를 위해 수익의 50%를 내놓는 게 아니라 개인인 푸틴에게 50%를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그들이 이제부터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은 푸틴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다.
당시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푸틴은 이때부터, 즉 호도르코프스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부터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브라우더는 상원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등 주요 산업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올리가르히들에게 보호 혹은 ‘크라이샤(지붕)’가 되어주는 마피아 두목 같았다. 푸틴은 새로 탄생한 자본가들에게 권력을 주었고, 그들은 푸틴에게 대가를 지불했다”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푸틴의 재산은 어디에 숨겨져 있는 걸까. 상당 부분은 다른 러시아 부호들처럼 측근이나 가족의 명의로 해외 계좌나 부동산 등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미경제연구소에 의해 발행된 2017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총 약 8000억 달러(약 980조 원)의 자산이 러시아 부호 명의로 해외에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은 유럽의 부동산에 투자되어 있으며, 브라우더는 “그들은 종종 자녀나 가까운 동료들의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푸틴 소유로 추정되는 해외 부동산 가운데는 프랑스 남부의 고급 빌라와 모나코의 고급 저택이 있다. 프랑스 빌라의 경우에는 전 부인 류드밀라 슈크레브네바 명의로 되어 있으며, 침실 네 개, 테라스가 있는 다이닝룸, 당구장, 야외 수영장, 음악공연장으로 구성돼 있다.
모나코 저택의 경우에는 처음 매입 당시 구매자의 신원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공식적인 구매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상장된 해외 기업인 브록빌 개발 주식회사였지만, 얼마 안 가 진짜 소유주가 밝혀졌다. 2003년 ‘가디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저택을 매입한 사람은 푸틴의 내연녀였던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크였다. 당시 매입가는 410만 달러(약 50억 원)였다.
청소부였던 크리보노기크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저택을 자력으로 매입했을 리는 만무할 터. 이에 사람들은 크리보노기크가 푸틴의 딸을 출산한 직후에 저택을 매입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푸틴의 자금력이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저택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이 저택은 푸틴의 어릴 적 친구이자 억만장자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소유하고 있다고 크렘린궁은 주장하지만, 실소유주는 푸틴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이 대저택을 가리켜 ‘푸틴의 비밀 궁전’이라고 부르면서 뇌물로 지어진 하나의 왕국이라고 맹비난했다.
건설비용만 약 14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가 소요된 이 궁전은 총 68만㎡ 부지에 세워졌으며, 건축 면적은 1만 7000㎡에 달한다. 이는 모나코의 39배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다. 사방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철통같은 경비가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도 없다. 저택의 상공은 현재 비행금지구역으로, 그리고 주변의 영해는 통제 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40명의 직원이 조경을 가꾸는 데만 연간 200만 달러(약 24억 원)가 지출된다.
이외에도 평소 푸틴이 착용하는 명품 시계나 요트, 항공기 등을 통해서도 재산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가령 푸틴은 종종 대통령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고급 명품 시계를 자랑하곤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6만 달러(약 7300만 원) 상당의 파텍 필립 시계와 50만 달러(약 6억 원)를 호가하는 랑에운트죄네 투보그라프 시계 등을 소유하고 있다.
1억 달러(약 1200억 원) 상당의 3층짜리 호화 요트인 ‘그레이스풀’호는 러시아 해군의 핵잠수함 제조사가 설계한 초대형 선박이다. 길이만 80m에 달하는 이 요트에는 댄스 플로어로 개조할 수 있는 15m 길이의 실내 수영장과 명품 그랜드 피아노인 ‘스타인웨이’가 구비돼 있기도 하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몇 주 전 ‘그레이스풀’호가 정박해 있던 독일을 떠나 갑자기 러시아로 향하는 모습이 목격되자 전문가들은 이 요트가 푸틴 소유라고 더욱 확신하고 있다.
아울러 푸틴은 자동차 700대, 항공기 58대, 헬리콥터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금으로 장식한 화장실이 있는 7억 1600만 달러(약 8700억 원)짜리 비행기인 ‘날아다니는 크렘린궁’도 있다.
문제는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이러한 자산들 가운데 어느 것도 푸틴과 직접 연결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당시 가했던 제재와 마찬가지로, 푸틴 측근인 올리가르히들을 겨냥한 제재만 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를테면 러시아 석유화학회사의 대주주인 키릴 샤말로프, 건설업계 거물인 보리스 로텐베르크, 러시아 6대 부호 가운데 한 명인 투자가 게나디 팀첸코 등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이 서방의 제재를 받아왔던 러시아의 부호들은 이에 대비해서 오랫동안 자산을 세계 각지의 해외 로펌이나 비밀 계좌에 꽁꽁 숨겨왔다. 때문에 해외 언론들은 현재 이들의 자산을 찾아내려면 마치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수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m 거리두기 회동은 뭐야? 푸틴 건강이상설 도는 까닭
‘푸틴은 과연 멀쩡한 걸까.’
최근 해외 언론들은 푸틴이 뇌질환을 앓고 있다는 의혹을 앞다퉈 전하면서 만일 이것이 사실일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미국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정보동맹 단체인 ‘파이브 아이즈’의 고위 관계자는 크렘린과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데는 생리적 요인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정이 있는 듯하다”라고 전했다.
점점 더 변덕스러워지는 행동, 퉁퉁 부은 얼굴, 터무니없이 과도한 거리두기 등 일련의 태도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익명의 한 보안 소식통은 “지난 5년 동안 푸틴의 의사결정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몇 주 전에 푸틴과 만났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4m 길이의 테이블에 앉아서 회담을 해야 했으며, 회담 후에는 “푸틴은 예전보다 더 고집스러웠으며, 더 고립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프랑스의 한 당국자도 회담 후에 “2년 전 만났을 때와는 어딘가 달랐다. 어떤 면에서는 ‘미친’ 상태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수년 동안 푸틴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도 최근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얼마 전 전화통화에서 푸틴이 평소와 달리 강경한 태도로 마치 낭독문을 읊듯이 혼잣말을 했다는 것이다. 니니스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으로 행동했다”면서 “그러나 물론 이는 의도된 행동일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폭스뉴스’에 출연해서 “나는 푸틴을 여러 차례 만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라이스는 “푸틴은 항상 계산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망상이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푸틴의 이상 상태에 대해 치매나 파킨슨병을 앓고 있거나, 또는 암 치료를 위해 장기적으로 복용한 스테로이드 탓에 ‘로이드 분노’가 발생해 뇌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영국 비밀정보국(MI6)의 전 국장인 리처드 디어러브 경은 푸틴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파킨슨병 때문일 수 있다고 추측하면서 “자제력 상실은 파킨슨병 환자들 500명 가운데 1명꼴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몇몇 신경과 의사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자제력 상실, 정신병은 매우 흔한 파킨슨병 증상이다”라고 의심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 상원의원 역시 푸틴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상원 정보위원회의 고위 공화당원으로서 그는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기밀 정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후에 루비오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푸틴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만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고 운을 떼면서 “푸틴은 늘 살인자였지만,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심각하다. 푸틴이 5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런가 하면 푸틴이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한 간호사의 틱톡 동영상도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푸틴이 다른 누군가에게 인사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이 담긴 이 동영상에 대해 그는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비틀거리면서 걷는다. 오른쪽 다리의 움직임과 경련으로 볼 때 아마 파킨슨병이나 뇌졸중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치매를 숨기는 데 매우 능숙하다. 하지만 결국엔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