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청와대 나가면 규제 완화 기대”…용산 “집값 더 오를 것” “당장 출퇴근길 걱정”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과 이웃이었던 종로 주민들은 내심 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청운효자동에 거주하는 70대 주민 김 아무개 씨는 “‘대통령 옆집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종로를 떠난다니 시원섭섭하네”라면서도 “집회에서 해방된 것 하나는 좋다. 여기 맹학교가 있는데 단체들이 와서 집회를 해서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엄청 고생했다”고 말했다.
사직동에 거주하는 최 아무개 씨(48)는 “주민 입장에서는 교통 통제로 인한 불편함이 해소되니 좋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청와대 이전이나 개방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사람은 5년 뒤에 바뀌지만 청와대는 남는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청와대 자리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지 다음 대통령은 다를 수 있다. 이걸 한 사람이 두 달 만에 준비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옥인동·창성동·통의동 등 서촌 일대에서는 고도제한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보였다. 옥인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서촌은 일찍이 한옥정비에 나섰던 북촌만큼 한옥 보존이 잘 되지 않아 생각보다 주택이 많은 지역이다. 도시재생활성화 사업 지역이긴 했으나 노후 주택 개선 등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못 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해에는 주민들끼리 민간재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고도제한 등의 규제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청와대 이전 이슈로 주민들 사이에서 은근한 기대감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용산 주민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개발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초 국제업무지구 조성, 미군 부대 이전에 따른 용산공원 조성 등의 개발 호재가 있었는데 청와대까지 이전하면 부동산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특히 이런 기대는 국방부 청사와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는 용산구 주민들을 중심으로 나왔다. 이촌동의 심 아무개 씨(55)는 17일 “고도제한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국방부가 군사시설이기 때문에 용산 지역 일부는 이미 고도제한을 받고 있다. 그래도 국방부 청사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는 이미 고층 건물이 다 들어온 것으로 안다. 중요한 건 용산공원과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에 속도가 붙으면 용산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더 올라간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빙고동 주민 A 씨도 “국방부 청사와 거리가 있어서 서빙고동 주민들은 걱정보다 기대가 크다. 특히 용산공원 부지는 원래 임대주택을 개발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게 무산될 거라는 얘기에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호재라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국방부 청사 및 삼각지 정비사업 인근 주민들은 악재라고 평가했다. 국방부 청사에서 불과 500m 떨어진 용산파크자이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아무개 씨(34)는 당장 출퇴근길을 걱정했다. 김 씨는 “대통령이 오면 이 길로 자주 다닐 텐데 교통통제와 전파차단을 할지에 걱정이 크다. (대통령이) 몇 시에 오갈지 미리 알 수도 없으니 내가 피해서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전문가들은 종로의 규제 제한 완화도, 용산의 빠른 개발도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종로는 청와대 보안 목적뿐 아니라 국가지정문화재인 경복궁 등 문화재 보존과 자연경관 보호 등을 위한 규제들이 중첩 적용되고 있어 이전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청와대를 일부 또는 전면 개방할 경우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나 휴식터 역할로 쓰일 수 있어 주거 여건 개선에 따른 효과로 거래가 늘어날 순 있다”면서도 “고도제한 등 여러 규제는 여전해서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자연경관지구 안에서 건축하는 건축물의 높이는 3층 이하, 12m 이하여야 한다. 고도지구의 경우 서울시 도시관리계획에 따라 경복궁 주변은 15~20m의 높이 제한을 적용 받는다.
용산공원 완공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어렵다는 관측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으로부터 용산 기지를 반환받아 2027년까지 용산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협의 과정에서 환경오염 비용 등의 문제로 반환일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용산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집값을 좌우하는 건 교통과 학군이다. 결국 용산공원 조성 시기가 관건인데 완공까지 최소 5~7년이 걸린다고 하니 호재인지 악재인지는 중‧장기적으로 볼 문제”라고 했다.
서울시는 용산의 추가 고도제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면 고층 건물 개발은 이전보다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삼각맨션’이나 ‘한강로1가 특별계획구역’ 등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곳의 주민들은 불안한 상황이다. 1971년 지어진 삼각맨션은 한국전력 변전소 부지와 합쳐 용적률 400% 이하 주상복합 3개 동 35층, 업무시설 1개 동 150실을 염두에 두고 삼각맨션 특별계획 사업이 추진돼왔다. 현재 삼각맨션 특별계획구역은 준주거지역으로 고도제한 규정은 따로 없지만 현장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 들어올 경우 사업 진행에 제한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B 씨는 “용산에 이미 고층 건물 많으니 환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용산이라고 다 똑같이 개발된 것이 아니다. 여기처럼 고층 개발을 앞두고 있는 곳은 암담하다. 기존에도 착착 진행되던 사업이 아니라 새 정부의 용적률 완화를 기대하고 투표했는데, 오히려 사업 중단을 걱정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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