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30% 안철수계 발탁 ‘의리’…도와준 사람들 집무실 초대 ‘소통’…친숙한 메뉴로 공개 점심 ‘소탈’
우선, 단일화 파트너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하고 안 위원장 측 인사들을 인수위에 다수 기용해 의리 정치를 실현 중이다. ‘윤석열의 전화 한 통’이 화제일 만큼 대선에서 도와준 사람들에 감사전화와 함께 집무실 초대까지 소통 정치도 열심이다. 국밥·짬뽕·김치찌개 등 서민메뉴를 놓고 공개 오찬을 하는 소탈 정치도 윤석열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의리 정치로 원팀 과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위원장 간 심야회동이 이뤄졌던 지난 3월 3일 새벽,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안 위원장은 윤 당선인에게 침착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이제껏 정치하면서 만든 단일화 각서와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결국 신뢰라 생각한다. 내게 어떻게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느냐.”
과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이듬해 대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도 단일화 파트너들로부터 씁쓸한 결과를 봐야했던 안 위원장 우려였다. 윤 당선인은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종이쪼가리 뭐가 필요하겠나. 나를 믿어라, 나도 안 후보를 믿겠다.”
합의문 따위는 필요 없고 내 얼굴이 신뢰라는 취지의 단답형 답이 돌아오자 안 위원장은 마침내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종이 쪼가리가 필요 없다던 윤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부터 안 위원장과 의리를 맨 앞에 두고 있다. 다수 인수위원장 후보군이 언론에 잡혔지만 윤 당선인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안 위원장을 낙점했다.
안 위원장 임명은 의리를 지키는 ‘신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윤 당선인에게 심어준 계기가 됐다고 풀이된다. 윤 당선인이 ‘공정한 수사를 하는 직진형 검사’ 이미지만 갖고 있었으나 안 위원장과 공동보조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추가로 ‘통 큰 통합형 리더’로서의 이미지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역대 인수위 최초로 당선인과 경쟁했던 대선 후보 출신 위원장이다. 윤 당선인이 강조해왔던 통합과 협치의 상징성과 직결되는 인선이 이뤄진 셈이다.
인수위 구성원 인선에서도 ‘통합’은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안 위원장 측 인사들이 상당수 합류했다. 안 위원장 최측근으로 불리며 단일화 협상에서 키맨 역할을 했던 이태규 의원이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으로 발탁됐다. 김도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사회복지문화분과 인수위원으로, 인수위 대변인에는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신용현 전 의원이 기용됐다.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수위원까지 더하면 인수위원 24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8명이 ‘안철수계’로 알려졌다. 구성원들을 통해 인수위의 지향점을 봐도 ‘과학기술 강국’을 기치로 내건 안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돼있다. 안 위원장이 후보 시절 그렸던 그림을 윤 당선인이 모두 수용한 모양새다.
특히 한국 최초 우주인에 도전했던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가 경제2분과 인수위원에 발탁된 것이 관심을 모았다. 김창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도 인수위에 합류했는데 전체적으로는 24명 위원 중 신용현 대변인을 포함, 이공계를 전공한 과학자 출신이 20%인 5명에 달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당선인의 ‘종이 쪼가리 필요 없다’는 발언이 결국 빈말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 분야 인재 추천은 윤 당선인이 ‘그 분야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안 위원장에게 철저하게 모두 맡기라’고 말했을 정도로 안 위원장을 예우했다. 이번 인수위 인선 과정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윤 당선인은 절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사람을 챙겨야 할 일도 있겠지만 인수위 구성에서 안 위원장을 철저히 배려했다.”
안 위원장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의리 지키기가 현실화됨으로써, 두 사람의 의리 정치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 위원장이 인수위원장에 이어 새 정부의 초대 총리를 맡을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관측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곧바로 지명된 바 있다. 안 대표 역시 대선 직전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행정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과학기술과 미래 비전의 능력을 입증 받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화든 대면이든 소통 정치
정치인이 아닌 어느 인사는 최근 저녁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려다 휴대전화가 자꾸 울려 발신자도 확인 안한 채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수화기 넘어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 깜작 놀랐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너무 고마웠다”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윤 당선인은 종이에 적힌 문장을 읽는 의례적인 당선 감사 인사가 아니라 정말 대화하는 듯 조곤조곤 얘기했고 “통의동으로 오시라”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시간 일정까지 잡아줬다. 통의동은 당선인 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을 뜻했다.
정치권 인사들도 전화를 거의 다 받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은 모두 당선인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조만간 만난다는 계획도 알렸다.
이철우 지사는 “최근 윤 당선인의 전화를 받았고, 당선인이 언제든 통의동으로 오시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 지사는 3월 18일 윤 당선인을 당선인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치에 입문한 뒤 윤 당선인은 이 지사를 사석에서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3선 의원 출신인 이 지사는 “사람을 만나보면 진정성이 있는 사람, 겉치레로 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윤 당선인은 전자에 속한다. 소통력이 굉장히 좋다”고 높은 점수를 줬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많이 껄끄러웠던 사람에게도 윤 당선인은 전화기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불협화음 끝에 선대위에서 중도하차했다. 해촉 과정에 김 전 위원장은 “그 정도 정치적 판단 능력이면 더 이상 나하고 뜻을 함께할 수 없다”며 윤 당선인을 작심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3월 15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대선이 끝난 뒤 윤 당선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전화 받았다.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을 도왔던 국민의힘 전직 의원의 설명이다.
“대통령이 좋을까, 당선인이 좋을까 하고 물어보면 내 경험으로는 당선인 쪽이다. 승리감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인 동시에 국민적 기대감으로 인해 비판보다는 칭송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전화기 들기도 쉽지 않고, 찾아오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대면 만남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윤 당선인이 이렇게 전화를 많이 걸고 만남을 많이 하고 있다면 내 경험으로는 아주 독특한 사례다.”
#서민 밥상으로 소탈 정치
윤 당선인의 오찬 메뉴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오찬에서 친숙한 메뉴를 골라 친근감과 소통 정치를 보이고 있다. 윤 당선인은 3월 14일 첫 공개 행보로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 꼬리곰탕을 먹었다. 60년이 넘은 노포에서 상인들과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전통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
3월 13일에는 경북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방문한 뒤 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곳은 화재 당시 소방관들에게 식사를 무료 제공한 식당으로, 윤 당선인이 직접 “매상을 올려주고 싶다”며 오찬 장소로 정했다. 3월 16일에는 서울 통의동 집무실 인근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켜 밥을 먹었다. 이날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이 예정돼있었는데, 회동이 취소되자 윤 당선인은 이 식당을 찾았다.
일반 시민들도 식당 내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중이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인수위 운영과 향후 국정 기조를 같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회의가 근처 김치찌개 식당으로 이어졌다”며 “국민이 있는 현장 속으로 가서 실제 눈을 맞추고 어루만지는 행보”라고 설명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윤 당선인은 대선 전부터 식사 정치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된다면 ‘혼밥(혼자 밥 먹기)’하지 않겠다” “국민 앞에 숨지 않겠다” “야당 인사, 언론인, 격려해야 할 국민과 필요하면 두 끼씩 먹더라도 밥 먹으면서 소통하겠다” 등을 공언한 바 있다.
소통과 동시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윤 당선인의 식사 정치 전략이다. 윤 당선인은 3월 17일에는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특별위원장, 박주선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과 함께 통의동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오찬을 했다. 동석한 김은혜 대변인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오찬 내내 샐러드에서 피자까지 원로들에게 직접 음식을 나눠줬다. 최근 윤 당선인과 만난 한 인사는 이렇게 전망했다.
“식사 메뉴는 물론, 차담 할 때 나오는 음료 종류까지 상대를 철저하게 챙기고 배려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소탈함이 정치적 동지뿐만 아니라 때로는 다퉈야 하는 정치적 상대자에 대한 포용의 무기로까지 활용된다면 안정된 정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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