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도급 업체 간 ‘계약해지’ 문제로 갈등…재재하도급 직접고용 근로자들 “임금 체불” 피해 호소도
시공능력평가 37위인 신세계건설은 2020년 9월 ‘켄달스퀘어엘피오포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회사’와 광주오포물류센터 신축공사 중 각각 651억 원, 704억 원 규모의 건축공사(A1BL과 A3BL) 수주계약을 체결했다. 광주오포물류센터는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 산 64-125에 위치한 대형 물류센터로 오는 4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첨단산업·건설 자재·일반 물류센터의 복합적 조성을 목표로 해 사업이 시작됐을 당시 이곳은 지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광주오포물류센터 건축공사 수주계약을 맺은 신세계건설은 내·외장 공사를 발주해 종합건축자재기업인 벽산과 1차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또 벽산은 이를 A 사에, A 사는 무면허 시공업체인 B 사에 맡기면서 재하도급-재재하도급 관계가 형성됐다.
법적으로 우리나라는 종합건설사에 한해 한 차례 하도급을 할 수 있다. 하도급을 받은 전문 건설사는 모든 공사를 직접 수행해야 한다. 즉, 재하도급-재재하도급 구조는 건설산업기본법상 불법이다. 공사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적정한 시공과 안전을 더 철저히 담보해야 하므로 전문 건설업자가 시공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건설의 벽산으로의 1차 하도급은 이후 재하도급, 재재하도급으로 이어진 것이다.
신세계건설은 광주오포물류센터 공사와 관련해 재하도급-재재하도급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재재하도급 업체인 B 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신세계건설 감사팀에서 2021년 12월 4일 (우리) 사무실에 내방했다”고 말했다.
원도급자(종합건설사)가 재하도급과 재재하도급을 알면서 묵인한 경우 처벌은 가능하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예림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원청(원도급자)이 재하청(재하도급)과 재재하청(재재하도급)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했다면 이조차도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원도급자가 불법 재하도급을 지시하거나 공모한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묵인이나 과실의 경우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는다.
다단계 하도급 관행은 부실시공와 그로 인한 붕괴·사망 사고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조사에서도 불법 재하도급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드러났다. 2020년 9월 전남 순천에 개통됐던 ‘동천 출렁다리’도 개통 전 다리 바닥에 구멍이 뚫린 철판이 발견되면서 불법 재하도급이 확인됐다. 2018년 9월에는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벽과 기둥 일부가 무너져 내린 사고에서도 재하도급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토교통부가 광주 학동 참사 이후 지난해 11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공공 공사 현장 136곳에 대한 특별실태점검을 벌인 결과 46곳(34%)에서 불법 재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공공 공사의 경우 당국에서 수시로 실태를 점검하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 민간 공사의 경우 불법 재하도급이 없는 현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불법 재하도급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종합건설사인 원청에서 소규모 재하도급·재재하도급 업체까지 신경 쓰기는 사실상 힘들다. 실제 광주오포물류센터와 관련해 일부 재재하도급 업체 내에서 말썽과 잡음이 잦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원청인 신세계건설이 일일이 관리·감독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오포물류센터 공사 근로자들에 따르면 재재하도급 업체인 B 사는 직접 고용한 근로자들에게 임금체불 등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B 사에서 근무했다는 C 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아직까지도 수십만 원 정도 임금를 받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지난 17일 광주오포물류센터 공사현장에서도 비슷한 피해를 본 근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근로자는 “(B 사 측에서) 임금을 줬다고 하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며 “임금내역서를 보여 달라고 해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재재하도급업체인) B 사가 공사 자재·장비 업체들을 통해 (자재·장비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데 B 사가 자재비를 입금하지 않아 해당 업체들이 입금해달라고 독촉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광주오포물류센터에서는 재하도급 업체 간 갈등과 분쟁도 표출됐다. 재재하도급 업체 B 사와 재하도급 업체 A 사는 ‘계약해지’ 문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B 사 관계자는 “A 사가 한창 공사를 진행 중이던 때 유선상으로 공사 계약 해지 통보를 일방적으로 해왔다”고 호소했다. 반면 일부 A 사와 B 사가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는 주장도 있다.
재하도급 업체 간 갈등은 공사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재하도급 업체 간 갈등 역시 원청에서 세심하게 파악하거나 조정하기 힘든 부분이다.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벽산(협력사)과 정상 계약했다”며 “협력사 간 계약사항 외에는 (재재하도급 관련)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광주오포물류센터 원청인 신세계건설이 재하도급 업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다'고 항변할 수는 있으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재하도급과 재재하도급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 구조가 형성된 이상 재하도급 업체 내에서 잡음이 일어나리라는 점은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이 처음부터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재하도급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하도급 구조에 대해 상당 부분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지만 현장에서 실행되지 못해 문제”라며 “단순히 제도적인 측면을 강화하기보다 현장 실행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재하도급-재재하도급 관행을 고치기 위해 건설사들이 하도급 구조에 있는 업체들을 직영으로 관리해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직영으로 운영되면 (하도급 구조에 있는) 업체들도 건설사 이름을 걸고 공사를 실시하기에 그만큼 책임을 다해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건설업계 불법 다단계 하도급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설업계의 오래된 악습인 불법 하도급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며 “단계별 관리·감독 강화, 제도 이행력 확보를 위한 여건 조성, 상시감시체계구축 강화 등 관련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하도급 적발시 처벌대상을 원도급업체뿐 아니라 하수급업체와 불법행위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발주자 및 인허가권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며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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