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전 10연패 노린 이야마 유타 꺾고 1인자 등극…‘17년째 잠잠’ 일본 세계대회 활약 주인공 기대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46기 일본 기성전 도전7번기 최종 7국에서 도전자 이치리키 료 9단이 타이틀 보유자 이야마 유타 9단에 199수 만에 흑 불계승, 종합전적 4승 3패로 기성 쟁취에 성공했다. 한국과 중국은 보유하고 있는 타이틀의 개수나 연간 수입으로 랭킹을 결정하는 데 반해, 기전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 바둑계에서 랭킹1위 타이틀 기성의 이동은 1인자의 교체를 의미한다.
요미우리신문 주최의 기성전은 일본 1위 기전이다. 우승상금만 해도 4500만 엔(약 4억 6000만 원)으로 삼성화재배나 LG배 등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상금 3억 원보다 많다. 초대 기성 후지사와 슈코 9단이 “나는 1년에 네 판만 이기면 충분하다”고 했을 정도로 기성을 가지면 곧 1인자 대우를 받는다.
#이치리키 료는 누구?
1997년생인 이치리키는 한국 변상일 9단, 김명훈 8단, 중국의 커제 9단 등과 동갑이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1세 때 일본에서 ‘홍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홍맑은샘 프로를 찾아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프로 입단 무렵엔 송광복 9단을 사사했다. 2010년 13세 때 프로가 됐고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다. 2012년 신예기전 나카노배 우승을 시작으로 오카게배(2013년~2014년), 글로비스배(2014년) 등을 휩쓸었다.
그의 첫 스승 홍맑은샘 프로는 이치리키 료를 이렇게 회상한다.
“료는 다른 친구들보다 세계대회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달랐어요. 예전에 한국을 방문해 한일 교류전을 할 때도 지고 나서 운 사람은 료가 유일했습니다. 그때 축구도 지고, 달리기도 지고, 바둑도 지니까 아이가 많이 울었거든요. 한국에 언젠가는 이 빚을 갚아야 한다고 느낀 것 같아요. 최근 일본 신예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바둑 승부라는 것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식들이 강한 세대들이에요. 그래서인지 료는 복기를 빼놓지 않았고 특히 전투의 요체랄 수 있는 사활 공부에 매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풍은 일본에서 ‘닌자바둑’이라고 불린다. 닌자가 매복에 능하고 기습에 능하듯이 기회를 엿보다가 공격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에 강점이 있다.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바둑은 아니지만 난전에 강한 스타일. 때문에 제한시간이 긴 바둑보다는 NHK배나 용성전 같은 속기전에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얼마 전 끝난 농심배에서 일본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신진서 9단과 대결을 벌였을 때도 초반에 대세를 그르쳤지만, 중반 전투에서 역전하는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비록 신진서의 완력에 밀려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이치리키 료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프로기사로는 드물게 2016년 사립 명문인 와세다대학 사회학부에 입학했다. 그 사이 여러 토너먼트 기전을 우승하고 국제기전에도 일본 대표로 출전하면서도 모든 학기를 3점대 후반의 학점으로 졸업했다. 그리고는 졸업 후 바로 집안이 운영하는 가호쿠신보(河北新報) 편집부 기자로 입사한다. 가업을 물려받는 후계자 코스를 밟아나간 것.
일본 동북 센다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지역신문인 가호쿠신보는 이치리키 집안이 경영하는 신문사. 창업가 집안의 후손인 이치리키 료 9단은 현 이치리키 마사히코 사장의 외아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7대 기전 중 하나인 기성전(碁聖戰, 일본 최고의 타이틀인 棋聖과는 한자와 일본식 발음이 다른 기전)은 일본 전역 13개 신문사가 뭉친 ‘일본신문연맹’이 후원하는 대회인데 여기에 이치리키의 가호쿠신보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치리키가 2020년 첫 타이틀을 기성(碁聖)으로 장식해 일본 바둑계의 큰 화제가 됐다.
#대기록 직전 무너진 이야마 유타
한편 기성(棋聖) 10연패를 노리던 이야마 유타 9단은 대기록 달성 일보 직전 무산됐다. 2013년 장쉬 9단을 꺾고 기성에 오른 이야마는 2021년 고노 린 9단을 꺾고 9연패를 이뤘으나 강력한 도전자 이치리키의 도전을 뿌리치지 못하고 10연패가 좌절됐다.
국 후 이야마는 “힘을 비축해서 다음에 돌아올 수 있도록 다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성을 잃은 이야마는 명인, 본인방, 왕좌, 기성(碁聖) 등 일본 내 4관으로 내려앉았다. 또 지난해 1억 3384만 엔(약 13억 4000만 원)을 벌어들여 올랐던 세계 상금랭킹 1위 자리도 기성을 잃어 수성이 쉽지 않게 됐다. 참고로 2위는 10억 5900만 원의 신진서 9단.
이치리키 료로 일인자가 교체됐지만 일본 바둑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일본 기사의 세계대회 우승이 그것.
일본은 2005년 제9회 LG배 타이틀을 가져간 장쉬 9단 이후 아직까지 세계대회 우승 기록이 없다. 때문에 이치리키 료도 기성 쟁취 후 쉽게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다. 이치리키 료는 “내용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긴 바둑은 종이 한 장 차이였고 진 바둑은 큰 차이였다. 다만 승부 면에선 자신감이 생긴 것은 소득이다. 더 큰 무대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치리키 료와 이야마 유타는 곧장 이어지는 제14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다. 기성을 두고 혈투를 벌인 일본의 투톱은 과연 춘란배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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