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정보기관 종사자는 “과거엔 통화를 녹취해 증거를 남기는 행위는 일부 수사 기관들이 독점하고 있는 지극히 제한적인 일이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엔 특정 브랜드를 제외하면 버튼 하나 누르면 통화 녹음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했다. 그는 “통화 녹음과 일반 녹음이 대중화하면서 필연적으로 사회 곳곳에서 메가톤급 녹취록 이슈가 터진다”면서 “정치권의 경우엔 외부적인 공식 발표 이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녹취록이 증명하는 구조가 됐다. 녹취록 리스크는 항상 고려해야 할 이슈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녹취록 스캔들은 스마트폰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 원조 격이 되는 사건이 바로 초원복국 사건이다. 일요신문이 창간한 1992년, 제14대 대선이 펼쳐지기 사흘 전인 12월 15일 한 정치인이 발표한 녹취록 내용은 정치권에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 왔다. 녹취록 내용을 발표한 정치인은 김동길 당시 통일국민당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통일국민당은 호남·대전·인천·제주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했다. 전국구(현 비례대표)에선 7석을 얻어내며 일약 정치권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대선을 앞두고는 통일국민당 당원이 1200만 명 규모에 달할 정도로 조직이 커졌다. 여기다 통일국민당은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자당 내부 갈등의 틈을 파고들었다. 3당 합당 이후 불거진 민자당 내 ‘민정계·상도동계’ 갈등 아래서 일부 민정계 인사들을 흡수하며 세를 불렸다.
1990년대 정치권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호남을 공고하게 지키는 김대중 후보보다는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에서 강세를 보였던 김영삼 후보가 제3지대 정주영 후보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유행했던 흑색선전 구호 중 하나가 ‘정주영 찍으면 김대중 된다’라는 말이었다. 김영삼 후보가 제3후보 변수 없이 대선을 양강 구도로 끌고 싶어 했던 측면이 있었다. 반대로 정주영 후보는 영남에서 현대그룹 조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울산, 그리고 민정계 흡수로 지지세를 불린 TK 지역에서 김영삼 후보 표를 가져오고, 수도권에서 ‘현대그룹 조직력 대결집’을 이뤄낸다면 세 후보 지지세가 얽히고설키는 혼전 속에서 대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제14대 대선이 펼쳐지기 3일 전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은 대선 필승 전략인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할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게 바로 녹취록이었다. 김동길 당시 통일국민당 선대본부장은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국에서 도청한 녹취 파일 내용을 공개했다. 초원복국은 당시 부산 남천동 소재 민자당사 인근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이날 초원복국에 모인 인사 면면을 살펴보면, ‘부산 올스타’가 전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김영환 부산시장, 우명수 부산시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이규삼 안기부(현 국정원)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예하),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병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정치·법조·경제·정보계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 그때 대구 분들이 손 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 안 그렇습니까. (중략) 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 발전에 긍정적…. 경남, 부산이 508만인가 그런데 80% 투표하면 400만…. 그중에서 80% 얻는다 해도 320만인데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고…. (중략)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해….”
지역감정을 유발해야 한다는 취지 발언들을 녹취한 건 정몽준 당시 통일국민당 정책위의장 산하 선거운동원들이었다. 초원복국에 미리 설치한 비밀 녹음기가 부산 지역 최고위급 인사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셈이었다.
당시 민주당에서 활동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정치 중립을 요하는 부산 유력 인사들 사이에서 영남권 민심을 김영삼을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의도가 비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된 것은 상당한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였다”면서 “정말 통일국민당이 의도한 대로 영남 민심을 양분하여 ‘정주영 대망론’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카드였다. 더구나 녹취록 내용을 공개한 시기가 대선 사흘 전이었으니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대선이 흘러갈 것으로 봤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통일국민당의 마지막 카드는 유효하지 못했다. 통일국민당이 의도했던 ‘지역갈등 유발을 논의하는 은밀한 회의’로 미디어 초점이 맞춰지기보다 ‘불법 도청’에 더 강한 관심이 모아졌던 까닭이다. 통일국민당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초원복국 사건은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상 공격 대상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되레 유리한 흐름을 타게 됐다.

정주영 후보는 영남 지역 표를 나눠 갖지도 못하고, 기존 강세를 보이던 충청·강원 지역에서도 표를 잃었다는 평을 들었다. 초원복국 연고지인 부산에선 박찬종 신정당 대선 후보에 밀려 4위로 내려앉기도 했다. 대선을 사흘 앞두고 던진 승부수가 적중하지 못한 셈이었다.
1990년대 민자당과 신한국당에서 활동했던 한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라는 것이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사례였다”면서 “굉장한 악재가 될 수 있는 사건이 되레 영남권 민심을 결집시키는 것을 보고 정치엔 정말 정답이 없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제20대 대선에서도 영남과 호남의 표심이 극명하게 갈렸다”면서 “박정희-김대중 양강 구도였던 제7대 대선 당시 지역감정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뒤로 제14대 대선 당시 초원복국 사건이 다시 한 번 한국 정치 영호남 지역구도 불씨에 불을 당겼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영호남 지역구도는 유효한 모양새”라고 했다.
상도동계 출신 정치권 인사는 “당시로선 녹음기를 설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돈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었다”면서 “당시 제3지대에서 신선함을 줬지만, ‘금전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정주영식 불도저 정치에 브레이크를 걸게 된 핵심적인 사건이 초원복국 사건이었다”고 돌아봤다.

초원복국은 여전히 지역 맛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 대부분은 과거 벌어졌던 사건보다 복국의 맛에 초점을 맞췄다. 초원복국에서 만난 시민 김 아무개 씨는 “복국이 워낙 맛있어 이곳을 찾는다”면서 “최근에나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 초원복국 사건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초원복국에 과거 사건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어보려 했지만, 초원복국 측은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부산=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