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 내용 확인 등 위법 소지에 사측 “안내만 했을 뿐”…부적격 이사 후보 논란엔 “이사회에서 적합 판단”
KT가 주총을 앞두고, 직원들이 가진 주식 의결권을 위임하라고 강요했다는 내부 고발이 곳곳에서 나왔다. KT 직원 A 씨는 “지난 21일 오후 갑자기 회사에서 우리사주 주식뿐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KT 주식 전체에 대해 의결권 위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며 “미동의하거나 회사가 정한 안건에 반대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저를 비롯한 다수 직원들이 찬성으로 표기하고 위임장을 썼다”고 말했다. ‘제40기 정기주주총회 관련 긴급 요청사항’이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모든 안건에 찬성 기표한 위임장 작성 예시와 각 의안에 대한 ‘찬성/반대/기권 의사표시를 명확히 기재하라’는 가이드라인이 함께 딸려왔다.
내부 직원들은 한 목소리로 회사가 강도 높게 위임장 제출을 압박했다고 전했다. KT 직원 B 씨는 “팀별로 위임장 제출 현황을 집계해 오후 6시마다 상부에 보고해야 했다”며 “사측은 휴가자 등 기간 안에 제출 못하는 직원들에게는 사유를 보고하게 했고 재택 중인 직원들에게는 위임장 작성 때문에 잠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KT 직원 C 씨는 “팀장이 공개된 장소에서 작성예시를 주면서 그대로 하라고 하길래 눈치가 보여 찬성에 표시하고 넘겨줬다”고 증언했다. 일각에서는 사전에 진행한 전자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을 철회하거나 전자투표시스템 최종제출화면 내역을 캡처해서 제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측이 우리사주조합 의결권뿐만 아니라 개인 주식과 관련한 의결권까지 위임을 촉구했다는 점이다. 즉 주주의결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사측에서는 ‘21년 12월 31일 기준 보유한 주식 전체’에 대한 의결권을 위임하라고 공지했다. 사측이 위임 여부와 찬반 여부까지 실명으로 취합해서 관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회사가 준비한 안건에 반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앞서의 직원들의 주장이다.
두 번째는 상법상 사전투표인 전자투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 행위라는 점이다. 상법 제368조의4(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의 행사) 6항에 따르면 전자투표와 관련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상법 시행령 제13조 제5항을 살펴보면 전자투표를 운영하는 기관은 주주총회에서 개표가 있을 때까지 전자투표의 결과를 누설하면 안 된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래 인터넷에서 투표한 후 주총에서 철회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상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며 “사전투표 내용이 알려지면 실제 주총장에서 회사의 안건에 찬성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어 누설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KT새노조 관계자는 “이번처럼 조직적으로 위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전례 없는 이상 행동”이라며 “주총에서 논란이 많은 부적격 이사 선임을 강행해 올해 임기 마지막 해인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KT 사측은 “직원들에게 주주로서 권리 행사를 위해 의결권 위임을 안내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총 안건으로는 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변경의 건, 이사 선임의 건 등 총 6개의 안건이 상정돼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안건은 이사 선임에 관한 건이다. KT는 3월 11일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내면서 사내이사 후보로는 박종욱 안전보건총괄 대표이사(경영기획부문장 겸직)를 재선임하고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신규 선임한다고 밝혔다. 사외이사 후보로는 유희열 KT 사외이사(이사장)를 재선임하고 김용헌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와 홍 벤자민 라이나생명보험 이사회 의장을 신규 선임하기로 했다.
특히 박종욱 이사 후보를 두고는 뒷말이 나온다. KT 전·현직 임원들은 2014~2017년까지 회사 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이를 되팔아 현금화하는 방식의 이른바 ‘상품권깡’으로 100여 명의 국회의원을 ‘쪼개기 후원’해 논란이 됐다. 황창규 전 KT 회장과 구현모 현 대표이사가 이 문제로 기소됐다. 여기에 박종욱 후보도 연루됐다는 사실은 박 이사 후보가 지난해 11월 약식 기소돼 올해 1월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횡령 혐의로 1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박 후보는 현재 정식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KT는 이 문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조사를 받았다. 총 350만 달러(약 42억 원)의 과태료와 280만 달러(약 34억 원)의 추징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을 재선임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회사 안팎으로 비판이 일었다.
주주총회 소집공고에서 유희열 의장은 “박종욱 후보자의 이슈 사항에 관해서도 충분한 법적 검토와 리뷰가 있었으며, 후보자의 역량과 성과, 향후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측면에서의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적의 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KT 한 관계자는 “구현모 대표가 처음 뽑혔을 때도 피의자가 CEO인 게 말이 되냐는 논란이 터지니까 이사회에서는 범죄사실이 인정되면 사임하는 조건으로 뽑는 것이고 후보들한테도 모두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며 “정식재판까지 갔는데도 혐의 당사자들이 물러나기는커녕 연임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이사회의 견제능력과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부적격 인사로 지적되는 인물은 박종욱 후보뿐만이 아니다. 사외이사 후보들도 논란의 대상이다. 경제개혁연대(경개연)는 지난 3월 15일 발표한 설명서에서 홍 벤자민 후보와 김용헌 후보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경개연은 2018년 홍 벤자민 후보가 라이나생명보험 대표이사로서 구현모 대표와 직접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KT의 거래 회사인 라이나생명에서 2020년 말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한 데다 현재는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 중인 점을 비판했다. 김용헌 후보 역시 소속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최근 3년간 KT와 자문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는 점에서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각 후보의 자격은 이사회에서 충분히 검토를 한 끝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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