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켐생명과학은 1999년 설립된 바이오업체로 주요 사업은 원료의약품 생산·판매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EC-18은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2상 시험을 마친 상태다.
김태엽 한양증권 연구원은 엔지켐생명과학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추진할 당시 “EC-18은 천연물 유래 합성신약으로 기존 1상을 통해 안전성 검증이 끝났으며 급성 폐손상 등의 치료효과를 기존에 이미 증명한 바 있다”며 “(코로나19는) 바이러스로 인한 급성호흡곤란이 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되므로 EC-18은 확실한 해결책이 될 개연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해 말 인도 자이더스카딜라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자이코브-디’의 생산·판매 권리도 사들였다. 이로써 엔지켐생명과학은 8개국(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아르헨티나,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에 5년간 자이코브-디를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자이코브-디는 아직 인도에서만 허가 받은 의약품이므로 수출을 위해서는 해당 8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자이코브-디로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수출 성과를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자이코브-디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엔지켐생명과학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에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해 10월 약 3000억 원(주당 5만 6900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지속되는 적자에 엔지켐생명과학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1685억 4000만 원(주당 3만 1800원)으로 유상증자액을 최종 확정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일반 공모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존 주주가 지분율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참여하지 않은 주주의 물량분은 일반 투자자로부터 청약을 받아 모집하는 방식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의 경우 기존 주주가 참여한 유상증자 규모는 382억 원이었으므로 나머지 약 1300억 원 규모의 주식은 청약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엔지켐생명과학의 유상증자 청약 경쟁률은 0.02 대 1에 불과해 흥행에 참패했다. 총 380만 9958주의 실권주가 발생했으며 현금으로 환산하면 약 1212억 원 규모다. 해당 실권주는 계약에 따라 주관사인 KB증권이 인수하게 됐다. 엔지켐생명과학은 1685억 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실제 모집한 자금은 500억 원도 되지 않은 것이다.
KB증권은 실권주를 인수하면서 졸지에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27.9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와 그 특수관계자의 엔지켐생명과학 지분율은 12.31%에 불과하다. 다만 KB증권은 엔지켐생명과학 경영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고, 지분 소유 목적도 ‘단순투자’로 공시했다.
하지만 제3자가 KB증권의 엔지켐생명과학 주식을 매입하면 순식간에 경영권이 뒤바뀔 수 있다. 이미 KB증권은 지난 3월 15일 트리니신기술조합과 포스라빌조합에 각각 51만 1945주(지분율 약 3.76%)씩 매각했고, 3월 18일에는 폴리스니조합에 17만 648주(약 1.25%)를 매각했다.
트리니신기술조합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KB증권도 해당 조합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같은 날 같은 수의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트리니신기술조합과 포스라빌조합은 서로 관계가 있을 것”이라며 “지분율이 5%가 넘으면 해당 주주에 대한 정보를 공시해야 할 의무가 생기므로 지분율이 5%가 넘지 않도록 여러 조합을 동원해 투자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현 경영진의 움직임도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오는 3월 31일 개최될 주주총회에 정관 변경을 안건으로 제시했다. 주요 내용은 이사를 해임할 때 기존 이사회에서 적대적 기업인수 또는 합병에 의한 해임이라고 결의하는 경우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5분의 4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적대적 인수 또는 합병으로 이사에서 해임될 경우에는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퇴직보상금(대표이사 200억 원, 사내이사 1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할 예정이다.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대로 정관이 변경되면 최대주주가 변경되더라도 30% 이하의 지분으로는 이사 해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사를 해임하더라도 막대한 퇴직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엔지켐생명과학의 현재 재무 상황으로는 퇴직보상금을 온전히 챙겨주기도 어렵다. 이번 엔지켐생명과학 주주총회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주주에게만 의결권이 부여된다. 따라서 KB증권, 트리니신기술조합 등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이 없으므로 엔지켐생명과학의 정관 변경을 제어할 수 없다.
추후 정관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상법에 따르면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 사안으로 주주총회에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만 한다. 하지만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 측은 아직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12% 이상을 갖고 있다. 정관 변경을 위해서는 소액주주를 설득하는 등 치열한 표대결을 거쳐야만 한다. 일요신문은 엔지켐생명과학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KB증권은 장기적으로 엔지켐생명과학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다. KB증권은 엔지켐생명과학 실권주를 주당 3만 1800원에 매입했지만 트리니신기술조합 등에게는 주당 2만 9300원에 매각했다. 이미 엔지켐생명과학 주식 거래로만 약 30억 원의 손해를 입은 셈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의 기업 가치가 상승하지 않으면 손해액은 더 늘어난다. 현 엔지켐생명과학 경영진은 수년째 적자를 거뒀고, EC-18이나 자이코브-디 관련 사업도 현재로서는 기약이 없다. KB증권으로서는 엔지켐생명과학 관련 대책이 필요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 KB증권 관계자는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매각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다각도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정관 변경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의결권이 없으므로 의견을 논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티웨이항공 유상증자, 제2의 엔지켐? 아니면 대박?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은 오는 5월 유상증자를 실시할 예정이다. 유상증자 규모는 1210억 원으로 이 중 300억 원을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910억 원은 운영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티웨이항공 유상증자의 주관사는 KB증권이 맡는다.
티웨이항공의 유상증자는 엔지켐생명과학과 마찬가지로 주주배정 후 일반공모로 진행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티웨이항공 주요주주인 티웨이홀딩스(지분율 40.92%)와 JKL파트너스(지분율 22.40%)가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JKL파트너스는 유상증자에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티웨이항공이 공개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JKL파트너스 부사장인 강민균 티웨이항공 이사는 “유상증자가 주주가치 제고를 고려한 최적의 자본 확충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티웨이홀딩스 역시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별도 기준 98억 원에 불과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기존 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실권주가 발생하면 일반 공모를 통해 주주를 모집해야 한다. 티웨이홀딩스나 JKL파트너스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실권주가 늘어나면 그만큼 공모 물량도 늘어난다. 안 그래도 티웨이항공의 최근 실적이 급감했는데 공모 물량까지 늘어나면 청약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아직 주요주주의 유상증자 참여는 결정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JKL파트너스 관계자도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티웨이항공의 향후 전망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박수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됐다”며 “여행 재개 기대감 소멸 및 유가·환율 등 대외변수 악화로 국내외 항공주들은 이전까지의 상승분 이상을 반납했다”고 전했다. 반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는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항공 관련 주식이 가장 주목받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시장에서도 티웨이항공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청약 참여율이 저조해 실권주가 발생하면 엔지켐생명과학의 사례처럼 KB증권이 실권주를 인수해야 한다. 수천억 원 규모의 거래인 만큼 KB증권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KB증권 관계자는 “유상증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