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접수 후 총선 승리 땐 대권 도전 날개…윤석열 기대치와 여권 권력구도가 등판 변곡점
3·9 대선에서 석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에 대한 등판 요구가 거세다. 이재명 고문의 가장 유력한 카드는 오는 8월 예정된 민주당 차기 당권 도전 후 22대 총선 출마다. ‘선 당권·후 대권’ 도전, 이른바 ‘문재인 모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 예선에서 이 고문과 맞붙었던 이낙연 전 대표도 이 모델을 따랐다. 여권 내부에선 이 고문이 사실상 당권 도전을 위한 몸풀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소 세 가지 길이 있다.” 포스트 대선 정국에서 이재명 고문이 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차기 당권 도전→대권 재수 △지방선거 등판→당권 도전→대권 재수 △5년 뒤 차기 대선 직행이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재명 비대위 카드는 불발됐지만, 패자인 이 고문 앞엔 여전히 정계은퇴 대신 복수의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고문도 대선 막판 선거유세 과정에서 “정치를 끝내기엔 너무 젊다”고 했다. 1964년생인 이 고문은 만 58세에 불과하다. 민주당 한 인사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등도 대선 이후 이 고문의 정치적 공간을 넓혀주고 있다”며 “역대 다른 패장들과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그간 자택(경기 성남 분당)에 머물던 이 고문이 외부에 포착된 것은 불의의 사고로 숨진 당원 빈소를 찾은 3월 16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외엔 주로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메시지만 전했다. 이 고문은 낙선 인사 중이던 3월 15∼16일 이틀간 민주당 소속 172명의 현역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부족했다” “나 때문에 졌다”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3월 10일과 14일에는 SNS를 통해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 “감사하다” 등을 남겼다. 3월 19일에는 이재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이 고문과 통화 사실을 알리며 “강성 지지자들이 당내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데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정계은퇴에 선을 그은 이 고문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존재감 제고에 나섰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 고문의 향후 행보 중 상수는 ‘차기 당권 도전’이 될 전망이다. 이 고문 측은 ‘등판론’에 대해 “백지상태”라고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문재인 모델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한 관계자는 “주변에서 당권 도전을 권유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 고문도 비상 상태인 당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당권 도전에 베팅하는 이들이 꼽은 실익은 ‘여의도 정치 검증’과 ‘비주류의 2년간 공백기 차단’이다. ‘0선 정치인’ 딱지는 대권 가도에서 이 고문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 전 당직자는 “이 고문이 민주당 당 대표가 된 뒤 치르는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대권 가도에 날개를 달 것”이라며 “비주류인 이 고문이 5년간 공백기를 갖는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이 고문이 차기 당권에 도전한다면, 경우의 수는 △대표 선출→총선 승리 △대표 선출→총선 패배 △낙선→총선 승리 △낙선→총선 패배 등이다. 이 중 최상은 ‘대표 선출→총선 승리’다. 이 경우 대권 급행열차 티켓은 이 고문 몫이다. 8월 전당대회 전후로 이재명계가 친문(친문재인)계를 제치고 최대 계파로 올라설 수도 있다. 21대 대선을 노리는 이 고문에겐 금상첨화인 셈이다. ‘낙선→총선 패배’의 시나리오도 밑질 것은 없다. “이재명이 없어서 진 것”이라는 ‘이재명 역할론이 재부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 뒤 차기 대선까지 3년간의 기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기의 시간도 충분하다.
‘대표 선출→총선 패배’ 땐 정치적 내상이 불가피하다.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은 ‘50 대 50’으로 줄어든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 고문이 자기 정치로 최대 계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낙선→총선 승리’다. ‘이재명 없는’ 민주당이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다음 대권에 이 고문 자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여의도 검증’은 한 번은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상대책위원회나 지방선거 등판보다는 이재명계를 만들 수 있는 ‘당권 도전’이 매력적이다.
지방선거 등판론도 끊이지 않는다. 당 내부엔 이 후보가 6·1 지방선거 국면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비롯한 전격 등판을 택해, 대선 시즌 2를 내걸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호중 비대위가 아닌 ‘이재명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도 이 고문을 놓고 서울시장 또는 경기도지사 출마설 등에 군불을 지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최소 선거유세엔 나설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패한 이 고문이 민주당 계열 대선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1614만 7738표·47.83%)를 한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며 “지역 정가에서도 이 후보의 조기 등판을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경우 이 고문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차기 당권 도전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목표로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고문의 조기 등판 가능성은 낮다. 당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윤석열 당선인 취임 한 달 만에 지방선거가 열리는데, 또 패하기라도 한다면 책임론이 확산할 수도 있다”고 일축했다. 다른 의원도 “윤호중 비대위가 있는데 전직 대선 후보 체제로 지방선거에 나선다면, 양측이 충돌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무질서한 당의 모습을 노출이라도 한다면 지방선거 악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은 이재명 역할론에 대해 “승리 기여 방안을 찾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이 고문 측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고문도 향후 거취와 관련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 공개 행보는 삼간 채 두문불출할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역시 사법 리스크다. 당 안팎에선 “곳곳에 사법 리스크가 있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하겠느냐”라는 의문이 나온다. 이 고문 측근들이 이재명 비대위설을 일축했던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았다. 대선 직후 검경은 대장동 의혹과 이 고문 부인 김혜경 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국회에선 여야가 대장동 특별검사제(특검)을 고리로 연일 으르렁거리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 고문 등판을 가늠할 ‘변곡점’이다. 여야 인사들은 윤 당선인 국정 기대치와 여권 내부 권력구도 등을 꼽았다. 윤 당선인 기대치가 저점을 향해 갈수록 ‘이재명 역할론’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기대치와 이재명 등판론은 반비례 관계다. 정치권 한 인사는 “양측은 시소게임의 운명”이라고 했다.
현 상황은 이 고문에게 유리해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3월 14∼18일까지 조사(미디어헤럴드 의뢰, 이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국정수행 기대치는 49.2%로, 절반을 밑돌았다. 윤 당선인에 대한 국정수행 기대치 긍·부정 격차는 한 주 만에 7.9%포인트(11.5%포인트→3.6%포인트) 줄어들었다. 같은 달 23일 공개된 리얼미터 현안 조사(의뢰처 동일, 22일 조사)에선 응답자의 53.7%가 윤 당선인의 1호 지시사항인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비율은 44.6%에 그쳤다. 여당 한 인사조차 “허니문 기간에 50% 지지도 못 받는 것은 의외”라고 했다.
새 원내대표 선거 이후 여권 내부 권력구도 역시 이재명 역할론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원내 사령탑 새판 짜기를 한 여권이 당내 혁신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이 고문 등판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 안팎에선 “친문계와 86그룹(80년대 학번·60년생)이 또 당을 좌지우지한다면, 국민들이 용납하겠냐”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에선 MZ세대(1980년 초반∼2000년 중반 출생자) 다수가 8월 당권 도전 준비에 들어갔다. 출마 준비를 하는 한 MZ세대는 “위기는 곧 기회”라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 민주당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여권의 최대 악재는 ‘졌잘싸 딜레마’다. 대선 개표 전 최악의 시나리오가 엄습했던 민주당은 이 고문이 0.73%포인트 차로 석패하자, “지방선거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기류가 한층 뚜렷해졌다. 경우에 따라 인적 쇄신을 비롯한 정치혁신 작업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선 직후 ‘원조 친노(친노무현)’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청와대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콕 집어 “출당시켜야 한다”고 인적 청산론을 꺼냈지만, 당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탈계파인 이상민 의원은 통합 차원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을 꺼냈다가 문자 폭탄을 맞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여의도 일각에선 “여당발 쇄신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당 복수 인사들은 “86그룹 의원들의 추가적인 정계은퇴 움직임은 없다”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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