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플랫폼·K팝 팬덤 확장으로 신규 시장 활짝…중국 투자사들 한국 작품들에 눈독
친미반중 성향으로 알려진 윤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사드 추가 배치 및 쿼드 가입 등을 주장하며 한국의 안보 강화와 동시에 중국 견제에 대한 강경 입장을 밝혀왔다. 당선 이후에도 이러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중국 내 관영 언론들이 일제히 눈에 띄는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미국 ‘블룸버그’도 3월 9일 씨티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새로 출범하는 한국 정부가 유세기간 밝혔던 (친미반중) 외교안보 정책을 이행한다면 중국이 한한령을 다시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2016년과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 관광 등 서비스 산업과 함께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의 수출입 금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6년 동안 지속돼 온 한한령의 빗장은 지난해 12월 초를 기점으로 조금씩 풀려가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의 한중회담에서 양국 간 문화 교류의 확대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나문희·이희준 주연의 영화 ‘오! 문희’가 중국 현지에서 개봉됐다.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개봉한 한국 영화는 2015년 전지현·하정우 주연의 ‘암살’이었으니 6년 만의 개봉이다. 또한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도 6년 만인 올해 1월 중국 내 정식 드라마 방영 플랫폼을 통해 방영됐다. 코믹한 가족 영화 ‘오! 문희’와 '대장금'으로 중국 내에서도 유명한 이영애의 드라마로 중국 대중들의 접근 허들을 낮추면서, 순차적인 한국 작품들의 진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모이던 차였다.
이런 훈풍을 기대했던 국내 엔터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제2의 한한령’ 가능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6년보다 더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반대로 “어차피 중국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시장”이라며 현 상황이 새로운 변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이전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왔다. 중국에 크게 의지했던 이전과는 달리 6년 동안 한국 연예계가 다른 시장을 발굴해 냈고, 아시아 지역에 한정되지 않은 영향력과 존재감이 ‘제2의 한한령’을 넘어서는 더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엔터계 관계자들은 크게 K 팝 영역과 영화, 드라마를 아우르는 K 콘텐츠 영역 두 분야로 구분해 해외 시장 진출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중국의 연예계에 처해진 조치와 맞물려 봤을 때 중국 시장에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파악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K 팝의 경우는 지난해 9월부터 중국 당국이 자국 가요계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전면 제작·방영 금지, 팬클럽 활동 금지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온 것과 맞물린다. 당시 중국은 자국 팬 110만 명 이상이 가입한 방탄소년단(BTS) 지민의 팬클럽 웨이보(중국 SNS) 계정을 정지시키는가 하면 ‘예쁜 남자’(娘炮·닝파오) 아이돌의 활동을 정책적으로 금지시키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더욱이 K 팝 그룹을 포함해 가수들의 음반을 대량 구매하는 일도 중국 당국의 ‘금지 목록’에 들어갔다. 한한령이 풀린다고 해도 자국 연예계에 적용되고 있는 이런 정책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가수들의 중국 활동은 한한령 이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3~4세대 아이돌은 중국 시장을 벗어나 다양한 해외 팬덤을 만족시킬 자체 콘텐츠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 영화, 드라마도 중국이 아닌 일본, 대만, 홍콩 등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 미국과 유럽 등 확장된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특히 2021년부터 넷플릭스를 위시한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한국 콘텐츠의 약진으로 제작과 수출 모두 청신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콘텐츠가 비단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시청률 상위권에 오르면서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 OTT 플랫폼 홍보 관계자는 “제작진이나 배우들의 유명세와 몸값 상승도 그렇지만 한국 작품에 대한 해외 시청자들의 관심이 보장되면서 작품 제작에 해외 투자의 길도 이전보다 많이 열린 상태”라고 귀띔했다. 다만 넷플릭스의 경우 자체 제작 작품의 수익 분배가 제작진에겐 이뤄지지 않는다는 한계로 불공정 문제가 지적돼 온 바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OTT 플랫폼이 가진 해외 시장 접근성과 작품 홍보 측면에서 볼 때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OTT 행을 결정하게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한편으로, 한국 작품들의 성장세와 맞물려 중국 투자사들이 한국 제작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도 한한령 이전과는 달라진 부분이다. 실례로 ‘중국의 넷플릭스’를 표방한 중국 OTT 서비스 플랫폼 아이치이(iQIYI)는 다른 해외 OTT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한국 작품의 제작·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혜리·장기용 주연의 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2021)와 이동욱·위하준 주연의 ‘배드 앤 크레이지’(2022) 등 두 작품은 아이치이 오리지널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자체 제작이 아니어도 한국 드라마의 해외 인기에 편승한 PPL 광고 투자 등으로 중국 역시 한한령을 넘어 국내 연예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왔다. 한 엔터사 관계자는 “중국이 한한령으로 한국 연예 콘텐츠 진출을 제한하긴 했어도 이미 중국 대중들은 은밀한 루트를 통해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 예능을 늘 최신작으로 감상해 왔다”며 “2010년대 초중반과 지금은 우리 콘텐츠가 가진 위상과 존재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전처럼 무작정 당하기보단 곧바로 대체 루트를 찾는 식으로 대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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