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대표 측근들 모여들며 ‘대리운영’ 공고해지는 모양새…구단 “고형욱 단장이 영입 주도” 주장
강정호는 올해 KBO리그에서 뛸 수 없다. 팀 훈련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소속이던 2016년 12월 서울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낸 탓이다. 그 여파로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1년 실격과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받았다. 역대 음주운전 관련 징계 중 가장 무겁다. 따라서 키움은 올해가 아닌 내년 시즌 강정호를 그라운드에서 보기 위해 1년 먼저 선수 계약을 한 셈이다.
첫 시도가 아니다. 키움은 2020년 6월 한 차례 강정호의 복귀를 추진하다 여론의 거센 비판에 부딪혀 물러났다. 키움은 강정호를 포기한 듯했고, 강정호는 은퇴를 결심한 듯했다. 그러나 구단은 1년 8개월 만에 다시 강정호를 팀으로 불러들이면서 "이미 계약까지 끝난 상황이라 이번엔 물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 "고형욱 단장이 영입을 주도했다"며 이례적으로 특정인에게 책임을 지웠다. 고 단장도 전면에 나서 "40년 넘게 야구인으로 살아온 선배로서 강정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내가 대표이사께 말씀드렸고, 허락을 받아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단장이 주도한 일?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던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난 건 아니다. 오히려 징계를 마치고 야구장으로 돌아와 경기에 나서고 있는 선수가 더 많다. 다만 강정호의 복귀를 놓고 더 반발이 거센 이유는 그가 2009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음주운전을 했던 사실이 알려져서다. 특히 2016년 마지막 적발 때는 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하다 들통났다. 당시 공개된 폐쇄회로(CC) TV 영상에는 강정호가 만취 상태로 운전하던 차가 도로 한복판을 위험천만하게 질주하다 가드 레일을 들이받고 반대편 차선까지 침범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수준이다. 음주운전 적발만으로도 잘못인데, 그 내용과 후속 조치는 더 나빴다.
그런데도 키움은 다시 한 번 "팀이 어려울 때 중심을 잡아 준 선수라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해주고 싶었다"며 강정호 영입을 강행했다. 10년 프랜차이즈 스타 박병호(KT 위즈)는 다른 팀으로 보내놓고, 갑작스럽게 '옛 정'을 운운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키움 구단 최대 주주인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강정호를 유독 아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야구 관계자가 적지 않다. "강정호를 데려오는 것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의중일 것"이라는 의혹이 번지면서 비난은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야구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와 관계없이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일이다. 현 대표에게 제안한 뒤 조용히 진행했다"는 고 단장의 설명에 일제히 헛웃음을 지었다. 모두 입을 모아 "단장 선에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구단 일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며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도 다시 추진한 걸 보면, 고 단장 '위에 계신 분'의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키움은 KBO리그에서 유일한 자립형 야구기업이다. 구단이 운영을 잘못해도 책임을 묻는 모기업이 없다.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단 고유의 특성인데, 키움은 이를 자주 악용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물의를 계속 일으키고, 문제가 발생하면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일관한다. 그러다 거짓이 들통나면 입을 다물고 사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구단 내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구단 운영 전반을 좌우하던 이장석 전 대표가 가장 큰 물의를 일으켰다. 회삿돈 수십억 원을 빼돌려 마음대로 쓰다 2018년 12월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KBO는 이 전 대표의 실형이 확정되자 상벌위원회를 열고 KBO 규약 부칙 1호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따라 영구 실격 처분을 의결했다. 또 이장석 대표의 최측근 인사였던 남궁종환 전 부사장(징역 3년·집행유예 4년)에 대해서도 영구 실격을 결정했다. "구단 운영에서 불법적 행위로 사적 이익을 취해 물의를 일으켰고, KBO리그의 가치도 훼손했기에 책임을 물었다"는 게 중징계 사유다. KBO 고위 관계자는 당시 "두 사람은 향후 어떤 형태로든 리그 관계자로 참여할 수 없고 복권도 불가능하다. 앞으로 히어로즈 구단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구단은 물론 임직원까지 강력히 제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10월, 이장석 전 대표가 박준상 당시 대표를 통해 구단 운영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KBO는 그해 11월부터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이듬해 2월 말까지 4개월간 조사를 진행했다. 제보 내용과 각종 자료, 관련자 면담 등을 통해 이 전 대표가 직·간접적으로 구단 경영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다. 다만 이 전 대표를 직접 조사하는 게 불가능하고, 수사기관이 아닌 KBO가 구체적인 위반 행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히어로즈 구단이 엄격한 내부 통제 절차를 시행하지 못해 각종 의혹을 자초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구단에 벌금 2000만 원을 부과했다.
이 전 대표는 만기보다 약 3개월 빠른 지난해 4월 가석방 허가를 받아 출소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대표가 다시 키움 구단 운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한동안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지만, 사실상 임시 구단주 역할을 하던 허민 이사회 의장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자 조금씩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새 대표도 이장석 사람
일단 키움은 이달 초 부장검사 출신 위재민 변호사(64)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위 대표는 서울 배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법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6기로 수료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뒤 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와 광주지검 부장검사, 외교부 주일대사관 법무협력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검찰에서 퇴임한 후에는 법무법인 동인과 선정에서 변호사로 근무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수익 창출에 사활을 거는 구단이 영업이나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 법률 전문가를 수장으로 영입하자 그 배경에 물음표가 붙었다. 일부에선 "'법망'을 능숙하게 피해 가는 '편법 운영'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수군댔다. 억측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의혹이었지만, 위 대표 취임 후 단 2주 만에 키움이 강정호와의 계약을 발표하면서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임 위 대표가 이 전 대표의 오랜 지인이란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위 대표는 이 전 대표가 2018년 키움 구단의 일부 주주들로부터 별개의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을 때 변호를 맡아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냈다. 또 이후에도 이 전 대표와 다수의 법률 자문 계약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의 법적 분쟁을 도왔던 인사가 공교롭게도 키움 구단의 새 대표로 취임한 것이다. 이 전 대표의 '그림자 경영'이 본격화됐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뿐만 아니다. 키움은 최근 KBO에 법무법인 산들의 임상수 변호사를 비등기 법무담당 이사로 등록해 더 큰 공분을 샀다. 임 변호사 역시 과거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사태 때 논란에 휩싸였던 핵심 인물이다. 당시 구단 자문 변호사였던 임 변호사는 KBO 특별조사위원회가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준상 당시 대표와 함께 '옥중 경영'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가 구단 직원과 대화 도중 "이장석 대표님께 여쭤봐야 한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한 녹취록도 세간에 공개됐다. 심지어 임 변호는 키움 구단에서 월 5000만 원이 넘는 법률 자문료를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단 고위 관계자는 "5000만 원은 직전 해 지출한 구단 법률 자문료의 두 배 수준"이라고 했다.
임상수 변호사는 이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자 2019년 말 법률자문 계약을 해지했다. 박준상 전 대표도 구단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KBO는 이 전 대표와 남궁 전 부사장의 영구실격 징계를 발표하면서 "임상수 변호사와 박준상 전 대표는 해당 사안에 관한 의혹을 촉발한 직접적인 관계자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KBO리그 소속 관계자가 아니므로 제재의 실효성이 없어 추후 어떠한 형태로든 KBO리그에 복귀할 때 이들에 대한 제재를 별도로 심의할 것"이라고 제재를 유보했다. 그런 임상수 변호사가 다시 키움의 법인 관련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키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신임 대표이사가 직접 (임 변호사를) 영입한 것으로 안다. 구단에 여러 문제가 있는데, 업무를 처음 맡는 변호사가 오면 어려움이 따라서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임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원칙적으로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히어로즈 구단의 최대 주주다. 올해 1월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기존의 67.56%에 2%포인트가량 확대했다. 여전히 구단의 운영 방향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신분이다. 강정호 영입 논란의 '총알받이'로 나선 고형욱 단장처럼, 과거 구단 대표로 재직할 때 그를 보좌했던 직원들도 아직 구단에 남아 있다. "리그에 관계자로 참여할 수 없다"는 KBO의 영구실격 징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오히려 이 전 대표의 측근들이 하나둘씩 다시 구단으로 모여들면서 '대리 운영' 구조만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허민 전 이사회 의장과 허홍 전 대표이사가 떠난 뒤로는 '이장석'의 영향력을 숨기려는 투명 장막조차 걷어버리고, 키움 구단 스스로 그 이름 석 자를 야구계에 다시 불러냈다. 예전보다 더 과감하고 뻔뻔한 행보다.
#KBO는 어떤 결정 내릴까
팬 사랑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프로스포츠는 이른바 '국민 정서법'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프로 선수들의 위상과 수입이 치솟는 만큼, 구단들과 선수들에게 예전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추세다. 강정호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2016년엔 KBO의 관련 징계 최고 수위가 1년 실격이었지만, 2018년부터는 최대 3년 실격으로 대폭 늘어났다. 2020년 상벌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은 강정호는 2016년 당시 규약으로 소급 적용을 받아 1년 실격에 그치는 천운을 누린 셈이다.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데, 키움 구단은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 속에 머물고 있다.
일단 강정호를 재영입하려는 키움의 무모한 시도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 결정하는 게 급선무다. KBO는 강정호의 임의탈퇴 해지 복귀 요청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선수 계약과 임의탈퇴 해지는 모두 총재 재가를 받아야 한다. 아직 둘 다 신청 상태로 남아 있다"며 "내부적으로 종합적인 검토를 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KBO 고위 관계자 역시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을 받고 있는 사안인 만큼, (임의탈퇴 관련 신청을 빠르게 승인하던)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두고 접근하고 있다"며 "여러 문제의 소지를 법률적 검토 등을 통해 신중하게 고려한 뒤 임의탈퇴 해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의탈퇴 해지 신청 후 KBO가 승인을 거부한 선수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그동안은 이런 사례가 없었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런 사례'가 생긴 이상, 결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허구연 KBO 신임 총재가 취임 직후 맞닥뜨린 '난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지도 관심거리다. 키움이 강정호를 복귀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1년 뒤에도 있다. 유기실격 선수는 실격기간 만료일 다음 날부터 복귀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총재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 야구규약 67조 '복귀허가' 조항에는 "총재는 선수가 제재를 받게 된 경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수의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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