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이전, 한은 총재 임명 등 놓고 공방 격화…민주당에선 ‘정치보복’ 우려 불안감, 윤 측 “갈등 해소 나설 것”
여당과 제1야당 대선 후보 간 역대 최소 격차의 득표율을 기록한 데다 양측이 사활을 걸고 있는 6월 지방선거까지 코앞에 두고 있어 ‘예정된 전쟁’이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종전선언은커녕 휴전도 쉽지 않아 보인다. 윤 당선인 측에선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기류도 읽힌다.
#자고 나면 충돌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 대립은 3월 16일 청와대 회동이 무산되면서 본격화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나겠다고 예고해놓은 뒤 회동이 불발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여서 파장은 컸다. 이에 대해 양측은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진 않았지만 공석인 감사원 감사위원 및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인사 문제를 놓고 극명한 이견이 나왔기 때문이란 말이 파다했다.
회동 무산 이후 냉전 상태는 계속됐다. 그러다 대형 폭탄이 터졌다. 윤 당선인 측이 대선 공약인 집무실 이전을 임기 시작 전 마무리 짓겠다고 밝히면서였다. 윤 당선인이 3월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으로의 이전을 공식화하자 냉전은 열전으로 비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반대 선봉에 선 데 이어 청와대까지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윤석열-문재인’ 전면전이 시작됐다.
3월 21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 뒤 청와대는 “새 정부 출범 전까지 국방부, 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 보좌기구,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강경 발언까지 내놨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예산 집행을 위한 예비비 지출 승인을 거부했다. 윤 당선인 측은 당초 용산 집무실 이전 비용을 496억 원으로 추산, 취임 전에 이 예산을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해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예비비 지출을 승인받으려 했지만 청와대 거부로 승인이 일단 무산됐다.
3월 22일엔 문 대통령 ‘워딩’이 직접 나왔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며 “안보에 조그마한 불안 요인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대해 분명한 거부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윤 당선인 측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를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대선 불복’ 프레임도 들고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협조하지 않아도 집무 시작을 용산이 아닌, 현 당선인 집무실이 있는 통의동 사무실에서 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용산 이전에 대해 배수진까지 쳤다.
신구권력 충돌은 한국은행 총재 임명을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문 대통령은 3월 24일 참모들에게 “답답해서 한 말씀 드린다”며 윤 당선인과의 회동 문제를 꺼내 들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 인사를 하고 덕담을 하고, 혹시 참고가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며 대통령과 당선인 만남의 성격을 ‘덕담을 하는 자리’로 규정했다. 회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이 ‘조건’을 내걸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문 대통령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하면서 ‘당선인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러자 윤 당선인은 기자들을 만나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원칙적으로 차기 정부와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 조치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문 대통령을 직격했다.
또 윤 당선인은 “당선인은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대금을 다 지불하고 명도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매도인에게 아무리 법률적 권한이 있더라도 들어와 살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서 본인이 사는 데 필요한 조치는 하지만 집을 고치거나 이런 건 잘 안 하지 않느냐”고 발언, 문 대통령이 인사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지금까지 이런 갈등은 없었다
과거에도 신구 권력이 부딪힌 적이 있기는 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 당선인은 전두환 대통령 기세에 눌려 인수·인계 단계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비밀리에 대통령직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의 시대를 준비했다. 사전에 알지 못했던 전두환 대통령 측은 이를 선긋기로 받아들였다. 결국 노 대통령 취임 이후 5공 청산을 두고 양측은 충돌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이 된 김영삼 당선인(YS)은 노태우 정부를 군부정권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문민정부 출범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김 당선인은 ‘정권인수위원회’를 만들어 노태우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고 ‘취임준비위원회’를 주장하며 맞섰다. 티격태격하던 양측은 이견을 절충,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명칭을 확정지었고 갈등을 봉합했다.
외환위기 상황이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인수위는 외환위기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강한 충돌 국면을 나타냈다. 인수위가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 등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와 관련해 정부 각 부처에 대해 과다한 자료 제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월권 논란’을 빚었다.
당시 충돌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하에서 김대중 당선인 인수위 측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목소리도 커 현 상황과 비교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중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제16대 노무현 당선인 인수위는 2003년, 당시 여당의 정권 재창출이었던 만큼 큰 갈등 없이 인수 업무를 진행했다.
제17대 인수위 때가 지금 상황과 가장 비슷하다. 이명박 당선인과 노무현 대통령, 양측이 강하게 날을 세운 것이다. 작고 유능한 정부를 내세운 이 당선인은 여러 정부 부처 폐지를 시도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비판하며 맞섰다. 노 대통령은 ‘정부 부처 칼질 시도’에 대해 직접 전면에 나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45개 법안을 고치는 일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폭적이고 전면적 개편”이라며 인수위의 점령군식 제도 개편 요구를 질타했다.
정부 부처 개편을 밀어붙인 이명박 당선인 시도는 노 대통령 측 입장에서는 노무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판단과도 연결돼있었다. 대선 역사상 가장 큰 득표율 차이로 여당 후보를 누른 이 당선인이었기에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고픈 정치적 욕망에 빠져있었고, 이 결과가 양측의 갈등으로 흘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퇴임을 2주 앞두고 어청수 신임 경찰청장을 임명하면서 인수위와 논의를 거쳤고 전면전은 피했다. 당시 청와대는 “차기 정부 출범 전 임기가 끝나는 인사는 인수위 의견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제18대 박근혜 인수위는 조용한 인수위 기조를 드러내면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양측은 큰 갈등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인수위 없이 바로 취임, 인수위 과정에서의 갈등 존재가 불가능했다.
#장기전으로 번질 수도
청와대와 윤 당선인 사이 갈등의 정점에는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분석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앞세워 윤 당선인이 앞으로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 실제 윤 당선인 주변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일부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윤 당선인 핵심 법조인맥으로 꼽히는 한 변호사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라임 금융사기 등 4개 사건의 진상 규명 필요성을 정리한 문건을 인수위에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임기 시작 전부터 사사건건 발목 잡기에 휘둘리면 거대 야당에 의해 5년 내내 휘둘릴 수 있다는 절박감에 강경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때문에 양측 충돌의 뇌관으로 관측되는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에 대한 양측 입장 조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비어있는 감사위원 두 자리를 윤 당선인 측 인사로 채울 경우, 감사원을 전임 정부에 대한 회초리로 활용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게다가 6월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쳐온 상황이어서 양보보다는 대결 국면이 선거에서만큼은 서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양측 모두 하고 있기에 갈등 국면 해소가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충돌과 갈등의 장기화 조짐까지 나오는 셈이다. 윤석열 당선인 측 한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윤 당선인이 취임 후에 검찰을 동원하거나 감사원까지 활용해 전임 정권을 압박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설 중의 소설이다. 양측 대결이 길어지면 국회 다수당이 민주당이라 취임 뒤 국정 수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어서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당선인이 취임 전 갈등 해소를 위한 전격적 행동에 조만간 나설 것으로 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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