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마지막 총장 믿고 맡겼을 텐데…윤 당선인 검찰 공약 적극 협조, 현 정부 겨눈 산업부 수사도 재개
검찰 수사도 하나둘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문재인 정부를 겨눈 수사들이었다는 점이다. 박범계 장관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는데, 법조계에서는 김오수 총장을 놓고 ‘숨겨왔던 본심’인지, ‘코드 맞추기’인지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 전까지 갈등각 세우지 않았던 김오수 총장
임명 전부터, 문재인 정부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한 뒤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 여권이 주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검찰 개혁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던 그가, 대선 이후 달라졌다.
두드러지게 드러난 자리는 인사위 보고였다. 대검은 3월 24일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업무보고에서 “윤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윤 당선인의 검찰 개혁 공약은 검찰의 독립성 강화 및 권한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예산편성권 독립 △검·경 간 책임수사제 도입 등을 검찰 제도개편안으로 내세웠는데 대검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예산편성권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인수위에 전달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현재 검찰에서는 전담수사부서나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은 일선 검찰청의 형사부서 말(末)부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검은 보고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인수위에 보고했다고 한다. 보고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에 김오수 총장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실제라면, 법무부에도 공유되는 보고 내용임에도 김오수 총장은 기존 여권의 검찰 개혁 방향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선택한 셈이다.
김오수 총장에 대해 ‘의외’라는 평이 나온 대목이다. 현 청와대와 가까운 법조계 인사는 “김오수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앉힌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법무부 차관도 역임할 수 있었고, 물러난 뒤에도 감사원 감사위원이나 금융감독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김오수 총장이 달라졌다고 봄직한 일들은 또 있다. 검찰의 수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특히 대검찰청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직접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동부지검이 고발장 접수 3년 만에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압수수색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관련 의혹들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던 기존 검찰의 수사 태도와는 백팔십도 바뀐 것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직접 수사가 크게 제한되면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정도의 사건은 모두 대검찰청의 지휘를 받고 있는 구조인데, 그동안 대검은 직접 수사를 제한한답시고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 ‘신중론’을 제시하며 압수수색을 하지 못하게 했었다고 들었다”며 “대선이 끝났으니 수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결과가 만일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수사 대상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 역시 “산업부 블랙리스트처럼 문재인 정부 시절 행정부를 겨눈 수사는 검찰총장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게 현재 구조”라고 덧붙였다.
#숨겨왔던 검사 본심? 임기 완주 위한 코드 맞추기?
기존 김오수 총장은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사건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등에서 수사를 지연하거나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의힘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이에 권성동 국회의원 등은 대선 후 김오수 총장의 거취를 언급하며 ‘사퇴’를 사실상 종용했지만 김 총장은 3월 16일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곧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는 김 총장을 지지하는 다수의 화환과 꽃바구니가 놓였다.
그런데 인수위 보고와 검찰의 잇따른 수사 개시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김오수 총장의 바뀐 스탠스를 놓고 ‘현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억눌러왔던 검사의 본심이 나온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장과 가까운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김 총장이 밖에서는 ‘친정권 검사’라고 비판을 받지만 사실 정치적인 판단보다는 검사, 법조인이라는 본인만의 철학이나 기준이 먼저인 사람”이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검찰 후배들이 원하고 본인도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특히 김 총장이 윤 당선인과 마찰을 빚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1년여 남은 검찰총장 임기를 다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앞선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김오수 총장은 취임 전후로 검사들의 목소리를 법무부나 정치권에 전달하기보다는, 위의 눈치를 보고 내부 검사들의 목소리를 자제시키는데 더 집중했다”며 “지금 김 총장의 행보를 놓고 지지하는 검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범계도 드러낸 불편한 심기
윤석열 당선인과 각을 세워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 당선인의 공약에 반기를 들었고, 이 때문에 법무부는 3월 24일 대검찰청과 같은 날 하려던 인수위 보고가 취소돼 29일 따로 진행해야 했다.
박 장관은 3월 28일 출근길에 만난 취재진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압수수색 실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동부지검에서 압수수색했다는 것을 보고 받고 ‘참 빠르네’라고 표현했다”며 달라진 검찰을 지적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 소속됐던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오수 총장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원지검장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앉히면 검찰의 수사는 얼마든지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윤석열 전 총장이 당선되면서 ‘검찰의 시간이 왔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총장도 자신만의 소신을 보여주려 하지 않겠나. 다만 그게 현 정부 입장에서는 검찰 개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배신당했다’고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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