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 나온 지 보름 만에…정권 교체 앞둔 검찰의 생존 전략?
여러 사건이 고발돼 있어 파급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검에는 현재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이 대기 중이다. 해당 사건의 피고발인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이름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을 겨눈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친여권 인사들이 대거 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대법 확정 두 달 만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2019년 1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던 건이다. 김도읍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중부발전, 남동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4개 공기업의 사장이 백 전 장관 등 산업부 고위 관계자의 압박으로 일괄 사표를 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이인호 당시 차관, 산업부 운영지원과장, 혁신행정담당관 등도 고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3년이 넘도록 사건은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당시 주진우 부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이었고, 결국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기소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 과정에서 ‘강요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인데, 당시 수사 라인이었던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 부장검사 등이 모두 좌천성 인사를 받았다. 이들은 같은 해 7월 모두 검찰을 떠났다. 그 후, 비슷한 성격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진전 없이 멈춰 있었다.
2022년 3월 25일, 대선 결과가 나온 지 15일 만에 서울동부지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업부를 전격적으로 들이닥친 검찰은 3일 뒤 관련 의혹이 제기된 자회사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중부발전, 남동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등 4곳 외에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무역보험공사까지 수사 대상으로 꼽았다. 서울동부지검 측은 3년여 만에 수사가 진행된 것에 대해 “법리 검토를 위해 유사 사건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것은 지난 1월 27일. 선고가 난 뒤 두 달 만에 압수수색에 착수한 셈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1월 말 선고가 있었지만, 그 후 대선 정국이었기 때문에 검찰의 청와대 관련 수사는 선거 개입으로 비칠 여지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대선 뒤로 일정이 미뤄진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제기되는 ‘불편한’ 시선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신구 정권 교체를 앞두고 검찰의 살아남기 본능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을 떠나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한 주진우 전 부장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부지검의 최근 수사 개시는) 시기적으로 묘하다”며 “이미 3년 전에 언제든지 압수수색이 가능하도록 기록을 만들어 놨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나는) 당시 검찰 인사까지 2개월이 채 안 남은 시점이라 산업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며 “압수수색을 하면 마무리할 사람이 해야 하는데, 후임자 입장에서는 압수수색 범위 등 앞선 사람이 한 것을 받아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털어놨다.
하지만 주 전 부장검사의 후임자로 온 이정선 현 대구지검 형사2부장과 그 다음 후임자로 온 김남훈 현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장은 모두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들춰내지 않았다. 그렇게 사건은 캐비닛(수사할 수 있는 성격의 사건들을 지칭하는 법조계 용어) 안에 감춰져 있었다.
선거 결과에 따른 검찰의 태도 전환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부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자 “칼끝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며 “오늘은 앞으로 길게 이어질 ‘저강도 쿠데타’가 시작된 첫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25일 출근길에 산업부 압수수색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보고를 받고 ‘참 빠르네’라고 표현했다”며 에둘러 검찰의 태도 전환을 비판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만일 대선 결과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승리하지 않았다면 검찰이 정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김은경 전 장관의 경우 1심과 2심 모두 별 논란 없이 유죄를 받은 상태였고, ‘임기를 무시하고 사임을 강요했다’는 전 정권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그 전인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김기춘 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모두 유죄를 받았던 사건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단이 필요했다는 서울동부지검의 설명은 ‘정무적 판단을 숨기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산업부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앞으로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서울동부지검에는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사건’과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도 고발돼 있다. 해당 사건들의 피고발인에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때도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던 만큼, 서울동부지검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기소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당시 서울동부지검에 있었던 검찰 관계자는 “당시 대검찰청에서 청와대를 겨눈 수사에 부담감을 느끼고 수사팀에 ‘신중하게 수사하라’는 메시지로 수사 속도 및 강도를 지연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기소해 유죄까지 받은 수사팀은 좌천되고, 그 후 눈치를 보던 검사들이 정권이 바뀌는 것을 본 뒤에 움직이는 꼴”이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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