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 둥이’ 이대호 은퇴 투어 열려…‘슈퍼 루키’ 김도영·문동주 라이벌 스토리 흥미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2016년 두산 베어스의 우승 이후 매년 바뀌었다. 2017년 KIA 타이거즈,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2019년 두산, 2020년 NC 다이노스, 2021년 KT 위즈 순이다. 올해는 어느 팀이 왕좌에 오를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 어느 해보다 '우승 후보'가 많다는 평가다. 일단 개막 전 모의고사와 같은 시범경기에선 '엘롯기'로 불리는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가 공동 1위에 올랐다. 이 중 LG와 KIA는 우승에 도전할 만한 후보로 분류된다. 지난해 우승팀 KT와 정규시즌 2위 삼성 라이온즈, 에이스 김광현이 돌아온 SSG도 야구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꼽은 올해의 '강팀'이다.
#마지막 시즌 앞둔 이대호
스타플레이어는 인기 회복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존재다. 올해는 내로라하는 KBO리그 간판 스타들이 기념비적인 시즌을 보낸다. 대표적인 선수가 롯데 이대호(40)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에 태어난 그는 2017년의 이승엽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KBO리그 공식 은퇴 투어를 시작한다. 소속팀뿐 아니라 전 구단 선수와 팬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야구장을 떠날 수 있는 은퇴 투어는 프로야구 선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다.
이대호는 2001년 롯데의 2차 1라운드(전체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지난해까지 KBO리그 통산 1892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7, 351홈런, 2020안타, 1324타점을 기록했다. 그가 은퇴할 때쯤엔 이 기록에 올해 1년간 성적이 추가된다. 이대호는 특히 2010년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 타이틀을 싹쓸이해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그해 9경기 연속 홈런을 쳐 이 부문 세계 기록도 세웠다.
한국에서만 빛난 것도 아니다. 201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리그 정상급 타자로 활약했고, 2016년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년간 메이저리그(MLB) 무대도 경험했다. 또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15 프리미어12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중심타자 역할을 해냈다. 2017년 그가 롯데로 복귀하면서 받은 4년 150억 원은 최근 김광현(SSG·4년 151억 원)이 경신하기 전까지 KBO리그 역대 최고 금액 계약으로 남아 있었다.
이 정도 성적을 냈는데도 일부 팬은 이대호의 은퇴 투어 개최를 반대했다. 2019년부터 2년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판공비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점을 문제 삼아서다. 이대호도 이런 얘기가 다시 불거지자 부담을 느끼고 은퇴 투어를 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호가 KBO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최고 타자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KBO도 "이대호가 그동안 KBO리그와 국제대회에서 활약했던 공로를 존중해야 한다"며 리그 차원에서 은퇴 투어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올 시즌 9개 구단은 롯데와 치르는 마지막 홈 경기 때 이대호에게 줄 특별한 은퇴 선물을 준비한다.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앞둔 이대호는 3월 31일 열린 KBO 정규시즌 미디어데이에 롯데 구단 대표선수 자격으로 참석해 "올해는 개인의 목표가 전혀 없다. 다만 한 번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꼭 팀이 좋은 성적을 내서 그 자리에 서는 게 내 꿈"이라고 했다.
이대호와 부산 수영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함께 시작했던 친구 추신수(SSG)는 "대호는 어렸을 때 많은 시련을 함께 겪었던 친구다. 이대호라는 라이벌이 없었다면, MLB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런 경쟁자가 있어 참 행복했다. 박수를 받고 떠나는 게 참 부럽고 대단하다"는 소회를 전했다. 역시 1982년생 동갑내기인 오승환(삼성)은 "아직도 친구가 은퇴한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난다. 내가 은퇴할 때는 이대호가 야구장에 없겠지만, 그래도 내 은퇴식에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광현과 양현종 맞대결 언제쯤?
올해 KBO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는 단연 1988년생 동갑내기 왼손 특급 김광현과 양현종(KIA)의 맞대결이다. 국가대표 원투펀치였던 둘은 MLB 도전을 마치고 올해 나란히 친정팀에 복귀했다.
SSG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계약이 끝난 뒤 MLB에서 새 소속팀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MLB 노사합의 불발로 인한 직장폐쇄 기간이 너무 길어지자 미련을 버리고 SSG와 4년 151억 원에 사인했다. 지난해 0.5게임 차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SSG는 김광현의 복귀와 함께 단숨에 우승 후보로 올라섰다.
양현종은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 MLB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한 시즌을 보내다 올 시즌을 앞두고 KIA와 4년 103억 원에 FA 계약했다. 그는 올해 이강철 KT 감독이 보유한 역대 타이거즈(전신 해태 포함) 투수 최다승(152승)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9위였던 KIA도 국가대표 출신 FA 외야수 나성범을 영입한 직후 양현종까지 전력에 가세하면서 우승 후보로 발돋움했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시범경기에서 순조롭게 구위를 점검했다. 시범경기 평균자책점은 김광현이 1.80, 양현종이 1.42다. 직장 폐쇄 기간에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김광현은 오는 4월 8일 시작하는 홈 개막 시리즈부터 로테이션에 합류할 예정이다. 양현종은 2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모처럼 홈 팬들 앞에서 공을 던진다.
김광현과 양현종이 나란히 KBO리그로 돌아온 뒤부터 야구팬들은 향후 두 투수가 광주 혹은 인천에서 선발 투수로 맞대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시범경기 때 둘의 등판 날짜가 겹치자 김광현의 선발 등판 일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양현종이 로테이션상 8일 인천 SSG전에 나설 공산이 커서 더 그렇다.
김광현은 이와 관련해 "팬들은 맞대결을 원하시겠지만, 내가 그 경기에 맞추려고 무리하다 다치는 것보다 하루이틀 늦더라도 몸 상태에 맞게 준비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현종이를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다. 로테이션을 돌다 보면 언젠가 KIA전에서 맞붙을 수 있다. 좋은 성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야구팬을 다시 한 번 불러 모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미디어데이 종료 후 인터뷰에선 "홈 개막 시리즈 8~10일 중 나는 몸 상태를 9일로 맞추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4월 중 맞대결은 무산됐음을 내비쳤다.
#특급 신인 즐비
올 시즌은 유독 대형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특급 신인이 많다. KIA 내야수 김도영이 단연 선두주자다. 데뷔하기 전부터 이미 웬만한 프로 주전 선수들보다 더 유명해졌다. 김도영의 별명은 '제2의 이종범'이다.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 빠른 발, 안정적인 수비, 강한 어깨에 타고난 야구 센스까지 갖춰서다. KIA가 시속 155㎞ 강속구를 던지는 문동주(한화 이글스)를 포기하고 1차 지명했을 정도로 특급 재능을 인정받는다.
건강 문제로 스프링캠프 막바지에야 1군에 합류했는데도 올해 시범경기 타율 0.432로 1위에 올랐다. 10개 구단 타자 중 유일한 4할대다. 소속팀 KIA는 물론이고, 다른 팀 감독과 선배 선수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내야수 출신인 김종국 KIA 감독은 "공격·수비·주루 모두 뛰어난 데다 단단한 멘탈과 마인드까지 갖췄다. 경기 감각만 조금 더 올라오면 슈퍼스타가 될 것 같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문동주는 KIA 1차 지명에서 김도영에게 밀렸지만, 한화로 가면서 올해 입단한 신인 중 최고 계약금인 5억 원을 받았다. 입단 후 불펜 피칭에선 힘을 다 쓰지 않고도 최고 시속 155㎞ 직구를 던져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한화 캠프에서 함께 훈련 중이던 메이저리거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도 감탄사를 터뜨렸을 정도다. 옆구리 손상으로 시범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4월 말 혹은 5월 초 1군 마운드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실전에 한 번도 투입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야구팬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도영과의 필연적인 라이벌 스토리도 흥미를 잡아끄는 요소다.
김도영과 문동주 외에도 올 시즌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시작하는 새 얼굴도 많다. KT 투수 박영현은 지난해 고교야구 최동원상 수상자다. 1차 지명으로 입단하기 전부터 "KT 마무리 투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첫 3경기에서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았고, 타자 9명 중 5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마지막 등판이던 지난 21일 한화전에서 1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경기 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일주일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이강철 KT 감독은 "몸쪽 투구가 좋고, 마운드에서 표정 변화 없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투수"라며 올 시즌 활약을 기대했다.
LG의 '중고 신인' 송찬의도 시범경기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2018년 입단 후 1군 기록이 하나도 없던 그가 홈런 1위(6개), 장타율 1위(0.795), 타점 공동 2위(10점)에 올랐다. 특히 MLB 90승 투수인 이반 노바(SSG)와 김광현을 상대로 깜짝 홈런을 때려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키움 히어로즈 노운현은 2차 4라운드에서 전체 32순위로 호명됐지만, 시범경기에서 앞 순위 지명 동기들보다 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30㎞로 무척 느린데, 투구 폼이 특이해 수월하게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언더핸드 투구폼으로 던지면서도 팔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해 공을 놓는 위치가 매번 다른 게 특징이다.
롯데 조세진은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4순위)에서 외야수 중 가장 먼저 이름이 불렸다. 장타력이 뛰어난데 어깨도 좋고 발도 느리지 않아 '제2의 손아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 이재현은 고교 시절 KIA 김도영에 이은 '전국 넘버 2 유격수'로 꼽혔다. 당시 투수로도 시속 140㎞ 이상을 던졌을 정도로 어깨가 강하다.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였던 박진만 삼성 2군 감독도 수비력을 인정했다.
SSG 1차 지명 투수 윤태현은 키 190㎝의 장신인데 언더핸드 유형이다. 그가 시범경기에 등판한 뒤 심판들이 "저 투수 공이 아주 좋은데 누구냐"고 주위에 물었다는 후문이다. 최고 구속은 시속 140㎞대 중반이지만, '볼끝'과 직구 움직임이 특히 좋다는 평가다. NC 김시훈은 2018년 1차 지명으로 NC에 입단했지만, 2년간 1군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하고 현역 입대했다. 지난해 8월 복귀해 올해 처음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했고, 시범경기에서 4경기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했다. 꿈에 그리던 창원 NC파크 등판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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