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공 세워 당권 장악 후 차기 대권 노리는 장기레이스…이준석 대표 견제 넘어야 할 산
#단거리→장거리 정치로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독일로 가 50대 중반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1년여 전 안 위원장을 만나 물었더니 바쁠 때도 1주일에 40km를 뛴다고 했다. 늦게 마라톤을 배웠지만 풀코스 완주 기록이 즐비한 마라톤 마니아다.
안 위원장은 마라톤 시작 이후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정치행보는 철인 체력을 요구하는데, 마라톤 시작 이후 차를 타고 갈 때나 각종 회의·세미나 등에서 전혀 졸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에 6시간 정도 자는데, 마라톤을 하면서 체력이 좋아지는 동시에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일과시간 중 깨어있을 때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최근 안 위원장이 내린 정치적 결단을 보면 단거리 정치에서 본격적인 마라톤 정치로 전환된 것을 엿볼 수 있다. 쉽게 갈 수 있는 자리를 과감히 던지고 5년 뒤를 내다보고 달리는 것이다.
새 정부의 유력한 국무총리 후보였던 안철수 위원장은 3월 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수위원장 임무가 끝나면 새 정부의 국무총리를 맡지 않고 당으로 복귀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후보 단일화라는 결단을 내려준 안 위원장에 대해 “무조건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 강했다고 한다. 때문에 인수위원장 자리를 과감히 내줬고, 안 위원장이 총리직을 원한다면 공동정부 차원에서 총리직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 위원장도 정부 부처를 통할하는 행정 경험을 쌓으며 구체적인 성과를 낼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첫 총리로 직행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인수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를 할 마음을 한때 굳혔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묻혀갈 수밖에 없는 총리직의 한계에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터라, 임기 내내 힘겨운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안 위원장 측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안랩의 주식 백지신탁 문제도 고려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이 전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공직자인 국무총리가 3000만 원 이상 주식을 보유하면 임명 두 달 내에 주식을 직접 매각하거나, 수탁기관(증권사)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안 위원장은 안랩 지분 18.6%(186만 주)를 가진 최대주주로 자칫 주식 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안랩의 경영권 불안 요소가 나타날 수 있다. 안 위원장은 경제인들을 만날 때면 안랩을 일굴 당시 고생한 경험을 자주 얘기할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안 위원장은 국무총리직을 고사한 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절차를 마무리 짓고 통합 정당에서 당을 장악하는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내부에 뚜렷한 차기 대권 도전자가 없다는 점도 당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안 위원장은 총리직 고사 발표 전날 윤석열 당선인과 40분가량 독대한 자리에서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임을 재확인하면서 역할 분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라톤 레이스 전략은?
안 위원장은 5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인수위 업무를 잘 마무리하는 한편,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도 매듭지어야 한다. 일단 합당 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형국이어서 당으로 향하는 안 위원장의 출발이 좋다는 평가다.
양당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공천을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합당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당명·정강정책 개정부터 지도부 교체까지 함께 이뤄지는 ‘신설합당’이 아닌 ‘흡수합당’ 방식인 만큼 각 당의 합당 의결 절차도 복잡하지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국민의당은 거느린 식구가 많지 않아 합당을 해도 공천권 배분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도 합당 협상 전망을 밝게 만들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는 3월 31일 기자들을 만나 합당 실무 협의와 관련해 “크게 이견이 노출되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고 확인해줬다. 이 대표가 제시한 합당 데드라인은 4월 17일로, 그 이전에 합당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4월 17일은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공천 신청자를 대상으로 공직후보자 역량강화 시험(PPAT)을 진행하는 날이다.
양당 합당에 이은 통합공천이 이뤄지려면 공천 신청자들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만큼 국민의당 측 인사들도 이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입장이고, 안 위원장도 이 방침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3월 31일 국민의당 몫 공천관리위원으로 홍성필 정책위의장과 최조은 청년위원회 운영위원을 각각 임명했다. 시도별 공관위에도 국민의당 측 인사가 최대 2명씩 들어갈 예정이다. 이로써 사실상 ‘통합 공관위’ 구성 절차는 끝났다.
안 위원장은 인수위원장 임무가 끝나는 대로 지방선거 국면에서 전국을 돌며 선거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확실한 공’을 세워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 업적에다 선거 공신까지 되겠다는 전략이다.
안 위원장의 벤치마킹 모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아깝게 패했지만, 이후 당권을 장악한 뒤 차기 대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현직 대통령 기세에 눌려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차근차근 세력을 넓혀나가다 2011년 이른바 디도스(DDoS) 공격 사건을 계기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을 휘어잡았다.
디도스 공격 사건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던 2011년 10월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은 투표 방해 사건이다. 한나라당 일부 관계자가 사건의 배후라는 논란이 일면서 한나라당은 큰 위기에 몰렸다. 박근혜 의원은 이후 비대위원장으로 전권을 휘두르면서 ‘쇄신 엔진’을 작동, 이 전 대통령 세력을 무너뜨리며 당내 힘의 이동을 이뤄냈다.
안 위원장이 박근혜 모델을 따라갈 것으로 보이지만, 선택적 코스를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대통령과 날을 세우는 경쟁자 전략을 취했지만, 안 위원장은 윤석열 당선인과 ‘깐부’를 이루는 협조자 전략을 통해 당내 위치를 잡아간다는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초반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는가 하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무효화에도 강력 반발하며 저지에 직접 나섰다.
인수위에 참여 중인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인수위부터 함께한 안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 각을 세우는 전략을 쓰기는 힘들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응원하고 위기에서 보호하는 철저한 보완재 역할을 하며 당권에 이어 차기 대권을 바라본다는 시나리오를 안 위원장이 써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험난한 금메달의 길
안철수 위원장이 정부가 아닌 당으로 진로를 튼 이상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준석 대표는 무조건 넘어야 할 산이다. 두 사람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앙숙으로, 여러 차례 심한 대립각을 세워온 바 있다. 안 위원장은 당권을 접수하는 과정에서도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고 마라톤 전략을 쓸 것으로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굴러온 돌이라는 것을 잘 아는 안 위원장이 이 대표와 충돌하면서 급하게 달려드는 성급함을 보일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안 위원장은 3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당권이라는 게 이준석 대표 임기가 내년까지이니 지금 당장 그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고 발언, 자세를 한껏 낮추며 이 대표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뜻을 표시했다. 기자들이 ‘이 대표 임기가 끝나면 도전한다는 것이냐’고 재차 묻자 “1년 뒤면 한참 뒤다. 그리고 그동안에 여러 가지 많은 일들 생길 것 아닌가”라며 “그건 그 부근에 가서 판단할 생각이다. 원래 정치에서 그런 일들은 장기계획을 세운다고 그대로 되진 않는다”고 말을 아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당에서 선대위원장 등을 맡아 선거를 이끌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당의 선대위원장(인사)은 당대표의 결심이고 당대표의 몫이다. 인사권자가 판단할 몫이지 제가 하겠다고 손들어서 되는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이 몸을 낮추고 있지만 이 대표와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임박한 지방선거 공천권 지분 다툼은 쉽게 넘어간다 해도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향후 대선주자로 뛸 수 있는 이 대표와 충돌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벌써부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선대위원장 이런 역할을 기대한다면 당과의 일체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안 대표가 새누리당 계열 정당과의 인연은 별로 없었다”라며 안 위원장이 ‘굴러온 돌’임을 강조, 안 대표 앞길에 카펫을 깔아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였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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