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피고인이라고 하세요.”
재판장이 그 변호사에게 주의를 줬다.
“제가 비서관으로 모셨던 대통령이신데 도저히 그렇게는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담당 변호사가 울상이 되면서 재판장에게 말했다. 그는 전제군주의 충성된 신하였다. 20년쯤 세월이 흐르고 다른 대통령이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다. 대통령은 법정출석을 거부했다. 아랫것들의 맹랑한 짓에 휩쓸리기 싫은 것 같았다. 내 짐작일 뿐이다. 이어서 대통령 부하인 국정원장의 심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에게 예산을 지원한 게 뇌물인지 아닌지 따지는 법정이었다. 국정원장의 담당 변호사로서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어떤 인식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재판장은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안 나올걸요. 자기 재판도 출석하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말이죠.”
“자기 사건에서 안 나오는 건 자유지만 부하의 재판에서는 입장이 다르죠. 상관으로서 법정에 나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게 도리 아닐까요?”
따지는 글을 써서 대통령에게 보냈다. 얼마 후 만난 대통령의 측근이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지존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지존은 임금이라는 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있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어야 했다. 역사는 왕이 점점 낮아지고 국민이 올라가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피고인이 아니라 고소인이 된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뒤에서 국회의원 한 사람을 고소했다. 그 의원은 대통령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면서 공업용 미싱으로 그 입을 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의원의 변호인이었다. 이상했다. 현직 대통령인 그는 개인적으로 고소를 할 성품이 아니었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도, 고문을 한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인격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진짜 개인적으로 고소를 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장에게 증인신청을 했다.
“어떻게 대통령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까?”
재판장이 난색을 표명했다.
“왜 대통령은 법절차에서 예외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항의했다. 우리들의 인식 속에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왕이었다. 얼마 전 측근으로 있으면서 대통령을 지켜본 한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만 되면 주변에서 왕을 만들어요. 청와대라는 궁전에 살면서 대접을 받으면 대통령이 진짜 왕이 되어버리더라니까. 자신의 결정은 절대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비판을 증오하기도 하지. 역사 앞에서 5년은 정말 짧은 기간인데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리도 하지.”
그렇게 권력에 취하기 마련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보통사람으로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는 소박하고 겸손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외국의 어떤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사양하고 변두리에 있는 자기가 살던 허름한 집에서 살면서 집무실로 출퇴근을 했다. 사용하던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았다. 월급의 상당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다. 대통령의 부인은 오후면 거리로 나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더 존경하고 한 마음으로 뭉쳤다. 대통령이 보통 사람이 되어야 우리 민주주의도 꽃을 피우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