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놓고 윤핵관 견제 등 권력다툼 양상…거대 야당 청문회 염두에 둔 인사
대선이 끝난 후 국민의힘에선 인수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러 인사들이 거론됐었다. 하지만 윤 당선인 선택은 선거 막판 단일화에 응해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였다. 단일화 협상 때 공동 정부 약속 파기를 우려하며 ‘문서화’를 요구했던 안 대표를 향해 ‘나만 믿으라’고 했던 윤 당선인이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안철수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유력한 국무총리 후보자로 떠올랐다. 단일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DJP연합 때도 고 김종필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 초대 총리로 임명됐고, 명실상부 공동정부 2인자로 통했다. 한덕수 후보자를 비롯해 정·재계의 3~4인이 총리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지만 안 위원장 무혈입성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그러자 윤 당선인 주변에서 안 위원장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안 위원장에게 지나치게 힘이 쏠리는 것을 우려하는 기류가 고개를 든 것이다. 윤 당선인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은 3월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국무총리로 하는 경우가 있었느냐”면서 “국무총리 생각이 있었다면 인수위원장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비록 청문회를 앞두고 물러났지만 총리 후보로 지명된 적이 있었다.
언론과 여의도 등에선 이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안 위원장 간 권력 다툼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안 위원장과 국민의당에선 불쾌감이 감지됐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3월 2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 위원장이 총리 시켜달라고 한 적 있느냐. 괜히 사람만 망신주고 있다”면서 “윤 당선인도 안 위원장 뜻에 따르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총리 인선이 권력 다툼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윤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자신을 도왔던 여러 원로들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전언이다. 대선 때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이준석 대표 등과의 내홍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윤 당선인으로선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조기에 수습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한 멘토 인사는 “윤 당선인이 직접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던 안 위원장은 3월 29일 윤 당선인에게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음날인 3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식화했다. 정가에선 안 위원장이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한 뒤,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윤 당선인 측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윤-안 밀약설’도 뒤를 이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안철수 위원장이 총리와 당권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평소 자신이 구상하던 정치 개혁을 위해선 결국 집권당 대표를 하는 게 낫다고 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합당 후 소수파 수장에 불과한 안 위원장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다. 윤 당선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 위원장은 총리직을 고사하면서 윤 당선인 부담도 덜어주고, 본인의 차기 행보를 위한 발판도 마련하게 됐다.”
안 위원장 뜻이 알려진 후 총리 인선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안 위원장 ‘대안’ 일순위였던 한덕수 후보자가 앞서 나갔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오르내렸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들에 대한 검증은 대부분 끝난 상태였고, 큰 흠결은 없었다. 안 위원장 변수가 사라진 상황에서 윤 당선인 결단만 남았었다”고 귀띔했다.
윤 당선인 측이 설명하는 총리 인선의 공통적인 기준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경험’과 ‘청문회 통과’다. 갑작스럽게 대선에 나와 대통령까지 당선된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와 별다른 친분은 없다고 한다. 윤 당선인 ‘경제교사’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학계 인사가 한 후보자를 천거했다고 알려진다.
앞서의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한 후보자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맡으며 ‘경제통’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부분을 높이 샀다. 윤 당선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후보자 고향이 전북 전주라는 점에서도 국민 통합을 위한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한 후보자가 민주당 인사들과도 접점이 많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윤 당선인 국정 운영 첫 시험대가 될 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거대 야당을 염두에 둔 카드가 한 지명자라는 얘기다. 한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 땐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을, 노무현 정부 땐 경제부총리에 이어 총리직에 올랐다.
한 후보자와 근무 경험이 많은 전직 고위 공무원은 “사석에서도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성향인지 아직도 모른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영어 잘하는, 일 잘하는 상사’로 통한다”면서 “아마 이런 부분이 그가 많은 정부를 거치면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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